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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ug 17. 2023

아들에게 호통은 쳤지만

마을 예술 PD가 되어 고립감 해소를 위한 '예술가 똑똑똑' 프로그램을 실행을 위해 독거노인 댁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림책쓰기 예술가와 해당주민을 매칭하고 앞으로 일정한 시간에 걸쳐 두 사람이 함께 그림책 또는 색칠 관련 활동을 하는데 첫 만남이라 향후 진행 계획을 공유하고 해당주민의 현재 상황하기 위해 첫날은 해당 주민의 말씀을 듣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합니다.


고립감을 진하게 느끼는 독거노인으로선 외부에서 믿을 만한 누군가가 방문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껏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할 데도 없고 들어줄 사람도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지역 문화도시센터에서 공공 프로그램을 실행하면서 사전에 몇 번이나 상호 확인하여 해당 주민이 믿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전개하니 해당 주민도 믿고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지난 날 삶을 담담하게 들려 주십니다.


83세로 홀로 사시면서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여 적으나마 월 수입도 확보하고 오가면서 몸을 움직일 수 있어서 지금 현재의 삶이 자신의 인생 중 가장 행복하고 즐겁다는 그분의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젊은 날에 홀로 되셔서 7남매를 키우면서 고생한 이야기는 듣는 우리도, 말씀하시는 그분도 가슴이 그냥 울컥해집니다. 그분은 간간이 못 배운 것을 정말 많이 한탄하였습니다.

경북의 어느 시골에서 태어나 나름대로 부유한 집안인데도 여자란 이유로 학교를 보내주지 않은 친정 아버지에 대한 깊은 원망을 여과없이 드러내셨습니다.


글자를 몰라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는 말씀을 제대로 잇지도 못하십니다.  그리고 지나온 삶에 대한 깊은 회한을 들려 주십니다. 아들은 뭔가 일이 잘 안 되어 이 노모께서 그 어려운 살림에 매월 쌀 한 가마씩 큰아들 댁에 보낸 모양입니다. 노모도 죽을 지경이었는데, 말입니다.


"내가 그랬지요. 나도 진짜 힘들지만, 그래도 내 아들이 힘들다는데 우짜겠습니꺼. 어떻게든 아들 식구들이 살도록 내가 쌀이라도 한 가마씩 보낸 기 몇 년 되었심더. 작년 에 도저히 안 되서 이제 못 보내겠다고 했지요. 큰아들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더군요. 그런데 말이요. 작년 여름에 그래도 그때까지 보내던 쌀을 못 보내는 에미 마음이 오죽 했겠는교. 어쩌다가 집안 혼사가 있어서 간 김에  큰아들 집에도 갔단 말이오. 그런데 가보이 아파트에 살기에 정말 기가 찼심더. 이게 우째 된 기고.


그렇게 어렵다 카면서 내한테 쌀 한 가마씩 받아 묵든 아들 부부가 그렇게도 원망스러웠다 아인교. 저도 모르게 고함이 팍 나왔뿠다 아인교. 진짜 가슴이 가슴이 터질라 카데예. 나는 요 쪼만한 방 한 구석에서 성치도 않은 두 다리로 노인일자리 월급도 얼마 안 되는 거, 노령연금도 좀 보태가 겨우 겨우 견뎌내고 있는데, 그래가지고 쌀 한 가마씩 어렵게 보냈는데 아들 놈이랑 며느리가 왜 그리 원망시럽던지 말이요. 뭐 전세라 카대요. 도시의 아파트 전세는 또 돈이 적은교? 꼴도 보기 싫어 그냥 뒤도 안 보고 그냥 왔다 아입니꺼? 자식 키워봐야 뭐하겠노 하는 원망만 가지고 내려와 버렸뿠다 아입니꺼?"


80대 초반 독거 노인이 기거하는 공간치고는 깨끗합니다. 마당엔 꽃도 상당히 많이 심어져 있고요. 마당도 깨끗합니다. 그리고 막내 딸이 사준 색깔 그리기 책을 10권이나 다 그렸답니다. 그래서 그린 책을 펼쳐 보니 그림이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더군요. 그래도 베껴 그리기도 만만찮고 색깔도 원래 그림과 달리 할머니께서 고민 고민하여 아주 창의적으로 그려냈습니다. 선을 넘어가지 않게 정교하게 색칠한 것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당신이 코로나 기간 동안 정성껏 그린 색깔 책을 차례 차례로 보여 주시는데 수준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복지관 젊은 선생님께서 모범 사례로 전시회하자고 제안했지만 아직은 쑥스러워 동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같이 가신 예술가님께서 살갑게 권하시니까. 전시회에 한번 보내볼까 하시며 살짝 웃으십니다.


홀수 주엔 노인일자리 사업 일하러 가시고, 가시지 않은 날엔 하루 종일 집안 청소에 그림색깔 채색을 하십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성경을 읽고요. 마당에 꽃화분을 정리하니 하루가 정말 심심할 겨를이 없다고 하십니다. 진짜 지금 이 순간이 당신의 생 중에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고 누누이 강조하십니다. 환한 미소를 띤 모습이 일품이셨습니다. 아들의 삶은 좀 아쉽지만 그래도 딸들의 삶이 비교적 평탄하여 다행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색칠 활동에 관하여 자랑을 많이 하셨지요. 막내 딸이 그림책을 완성할 때마다 잊지 않고 새로 사서 보내 주고 하여 10권까지 온 모양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할머니 집에까지 와서 색칠한 부분의 잘한 점을 일일이 찾아 크게 칭찬해주더랍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도 가져오고, 용도도 꽤 많이 전해주었지요. 요즘 드문 새댁입니다. 할머니 식탁 위에 그 딸이 직접 제작한, 가족 사진 달력이 놓여 있네요. 할머니께서 틈틈히 그 달력을 보다가 어떨 때는 하루 종일 그 달력을 바라보기도 했답니다.


1시간 이상 당신의 말씀만 하시다가 좀 미안하셨는지, 냉커피를 만들어 주십니다. 당신의 인생 이야기만 해서 영 부끄럽게 되었다고 죄송해 하셨지만, 오늘 첫 면담의 최고 목적은 바로 해당 주민의 현재 생활 상태 파악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더니 그제서야 미안한 마을을 조금씩 풀어놓으십니다. 그렇게 대화를 대충 마무리하려는데, 할머니께서 한 마디 하셨지요.


"있다 아인교? 얼마 전에 갑자기 큰아들이 전화를 걸어와서 돈을 좀 도와줄 수 있냐고 말하대요. 딸 학원비라 카대예. 내가 돈 빌려 가면서 학원 보내는 거도 또 뭐고. 우와 내가 환장하겠더라꼬요. 정말 미치겠더라꼬요. 그래서 좀 심한 말로 돈도 없으니 이런 전화 이제 그만 해라. 해도 해도 진짜 너무 한 거 아이냐고 큰아들에게 막 퍼부었심더. 그러자 큰아들도 전화를 끊었지요. 선생님들 그럴 때 에미 마음 어떤지 아십니까. 다시 국민은행에 가서 결국 보내줬다 아인교. 큰아들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 에미한테 이렇게 어렵게 사는 내한테 전화한 큰아들 마음은 오죽 하겠능교 싶더라고요. 그래서 보내줬지 뭐. 부모는 다 그런기라요."


평생 어머니 마음을 힘들게 한 큰아들이 다시 돈을 요구했을 때는 마구 큰소리쳤지만 막상 그렇게 그렇게 하고 나니 내 마음이 진짜 괴로워 우셨다는 할머니 말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래도 손녀가 카이스트  합격한 사실을 얼마나 자랑하시던지. 할머니와 면담을 마치고 손을 꼭 잡았습니다. 노후 세대들과 만날 때 그분들 말씀을 잘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을 꼭 잡아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렇게 찾아와 주어 당신의 말씀을 긴 시간 들어주셔서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십니다. 마당에 내려섭니다. 화분에 가득한 꽃들이 우리를 배웅하는 듯합니다. 할머니께서 어쨌든 요즘이 당신의 삶에 가장 행복하고 즐거우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큰아들과의 애틋한 사연도 물론 가슴아프지만 그래도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 본원의 사랑이라 여기고 돌아왔습니다.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도 학교 문턱에 가보시지 못하고 글자도 모르셨기에 할머니 말씀이 더 더욱 가슴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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