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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ug 17. 2023

나이가 들면 문밖을 나서기도 어렵다

세상사 무엇이든 간단하게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아주 단순하게 보이지만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 과정이 참으로 복잡다단하고, 원인과 결과가 전개되는 과정 또한 간단한 것이 결코 없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아주 오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옵니다. 정말 반갑지요. 둘이서 아주 반갑게 손을 잡고 누가 먼저랄 것이 없이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술 한 잔 가운데 놓고 근황을 주고 받다가 서로 계산겠다고 시루는 장면 생각해 볼까요.


그런데 그 친구가 나이가 들어도 환한 미소를 띠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이 간단한 것일까요. 우선 그 친구도 나도 건강해야 이렇게 길에서 만날 수 있지요. 그리고 둘의 삶 모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할 것이고요. 지난 날 둘 사이가 원만했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 친구가 어떻게 태어나 나를 만나고 또 어떤 삶을 살았을까도 있을 것이고, 나 또한 부모님에서 나와 세상에 첫걸음한 이래 지금까지 긴긴 세월 정말 다양한 삶의 현장을 경험했을 테지요.


두 사람의 지금 현재 가정 생활도 비교적 원만해야 길에서 만나 미소를 띨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당장 땟거리도 마련하지 못할 지극히 어려운 경제사정이라면 외출은 꿈조차 꿀 수 없을 테지요. '지공거사'란 말 들어 보았지요. 지하철 공짜니 첫 역에서 올라타 종점까지 왕복하며 소일하는 노년세대를 말하지요. 그런 분이라면 누군가를 만나 환한 미소를 지을 여유가 적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 내 수중에 돈이라도 제대로 없으면 참으로 오랜만에 그 옛날 벗을 만날지라도 기꺼이 벗의 손을 잡고 가까운 식당에라도 가서 밥 한 끼 함께 할 여유가 없을 테지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시간, 공간은 그렇게 생각보다 다양한 의미를, 켜켜이 쌓인 인연을, 복잡다기한 계기를 품고 있답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오랜 친구와 미소를 나누는데도 생의 그 많은 사연들이 들어 있답니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려면 노후 세대는 건강에 깊이 유의해야 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웃음이 번질 수 있도록, 언제 어디선가 만날 옛 벗과도 기꺼이 마주 앉아 인생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우선 건강해야 합니다. 노후 세대에게 쇠약한 시간을 필연적으로 봉착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놓고 그냥 대충 방치하면서 살아가는 삶은 그야말로 고통, 불행의 시작인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젊은 세대들과 만남이 있었는데, 그중에 노인 복지 관련 일을 하시는 분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냥 나이만 먹고 하루 하루 살아가는 인생은 그 자체가 고통일 수 있습니다. 골목길 한번 생각해 보시면 그곳 평상에 수많은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하루 종일 멍하니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다가 저녁 무렵이면 맛도 없는 저녁밥을 혼자 먹고 TV를 켠 채 그냥 주무시는 그런 노후 삶은 우리가 미리 예방하고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있던 어느 분께서 이렇게 답합니다.


"아이고 그런 말 마세요. 그래도 골목길 평상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은 그나마 행복한 것이예요. 대문간을 나서지 못하고, 문지방을 넘어설 수 없어 방안에 그냥 방치된 채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또 얼마나 많나요. 그리고 전국의 그 많은 요양병원에서 꼼짝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그런 노인들에 비하면 골목길 할머니들은 자신의 의지로 외출할 수 있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그렇게 웃을 수나 있으니까요."


세상 일이 단순한 것이 없나 봅니다. 골목에서 평상에 둘러앉아 하루 종이 멍하니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분 말씀을 듣고 보니 또 그렇게 생각할 일만은 아닌가 봅니다. 세상사 간단하고, 단순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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