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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ug 16. 2023

나이가 들면 화 낼 생각을 마라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많이 본 장면입니다. 남편은 뒷짐지고 앞장서서 걸어가고, 아내는 머리에 뭔가 이고 아이 손을 잡고 따라갑니다. 남편이 저쯤 앞서서 가다가 가끔 돌아봅니다. 아내와 아이가 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또 걸어갑니다. 어린 제 마음에 앞장서서 가시는 남편이 부인의 짐을 들어주면 안 되나, 남의 눈을 의식한다면 아이 손이라도 잡고 가면 안 되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하면서 바라본 적이 꽤 있었지요. 인근 마을 5일장에 가는 날에 자주 보던 풍경이었지요.


우리 마을 경북 달성군 논공면 위천1리 우나리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5일장은 논공면 소재지 금포리 속칭 '돌끼장'이 3일과 8일, 강건너 고령군 성산면 득성 5일장이 2일과 7일 그리고 정확하진 않을 수 있지만 달성군 현풍면 5일장이 1일과 6일인 것 같습니다. 돌끼장과 득성장은 맞는 것 같은데 현풍장날은 확실하진 않네요. 혹시 현풍면 출신 작가님 계시면 알려주세요. ㅎㅎ.


시장에 가는 날이면 각자 집에서 짐을 챙겨 나서는데, 동구밖까지 꽤 걸어야 합니다. 우리집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시장에 가시는 일이 정말 드물었고, 어머니 가시는 날엔 학교에서 일찍 마치고 합류하여 도왔습니다. 새벽에 아버지께서 들에 가셔서 열무단을 짚으로 곱게 묶어 리어카에 차곡 차곡 실어놓으면 어머니와 함께 시장을 가는데, 학교 가는 길이라 고개를 오르 내릴 때 친구들이 여럿 달려 들어 리어카를 밀고 잡아주었지요. 어머니는 좀 뒤에 떨어져서 따라오셨습니다.


그렇게 돌끼장에 도착하면 어머니께서 아이들 고생했다고 붕어빵을 사서 주면 우리 동네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오일 장 서는 날에는 학교로 바로 걸어가지 않고 우리집 앞에 대기하여 리어카를 밀고 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홀로 면사무소까지 일을 보셨지요. 마을 이장을 10여 년 하시다 보니 어머니랑 둘이서 어딜 외출할 경우가 별로 없었습니다. 대구에 무슨 볼일이 있어 가실 때도 두 분이 나란히 가신 기억은 잘 없네요.


어쨌든 제 어릴 적 우리 마을에서는 남자는 저쯤 앞서서 뒷짐지고 부인은 머리에 짐을 인 채 아이 손잡고 걸어가는 풍경이 늘 보는 장면이었습니다. 또 그렇게 가는 것이 자연스월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제 마음엔 의아했을 뿐이지요. 그중 한 어른의 생전 삶에서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이분도 어디 외출할 때 뒷짐 지고 저만큼 앞서가다 잠시 서서 아지매를 기다리고 계셨던 분입이다. 단지 다른 이들처럼 빨리 오라고 재촉하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고 그냥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서 있었던 것이 달랐지요.


그리고 이분은 제가 아버지 심부름으로 찾아가면 늘 잔잔한 미소와 함께 부드러운 음성으로 저를 반겨 주셨습니다. 제 기억에 그분 살아 계실 때 목소리를 높이거나 화를 내신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술을 한 잔 드셔도 구석진 곳에 앉아서 조용 조용 조그만 음성으로 말씀을 하시거나 다른 이들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잔잔히 바라보기만 하셨습니다. 입가엔 늘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언제 돌아가셨는지 모르지만 도회지 생활 중에 어쩌다 고향 마을 방문하여 오래 전에 돌아가신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그 어른 이야기를 곧장 해주셨지요.


"야~야, 저 위에 대밭집 아재 있제, 그 어른 느그들한테 잘 하재. 동네 사람들한테도 절대 소리 내지 않고 조용 조용 이야기한데이. 아무리 바빠도 서둘지 않고 찬찬히 일처리하고, 식구들한테 절대 뭐라 한 적이 없다 안 카나. 아지매한테 살짜기 한번 물어 본 적이 있는데, 집에서도 진짜 그렇게 하신단다. 아~들 한테도 단 한번도 그 흔한 "이 새끼, 저 새끼"도 안 하고 살았다 안 카나. 니도 나중에 크거든 그 아재처럼 점잖아이 크야 한데이."


아버지가 이장을 하시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뭔가 책잡힐 일이 있었던 그해도 그 어른이 밤늦게 저희 집에 찾아오셨지요. 아버지께선 동네 사람들이 뭐라고 따져 들면 같이 논쟁을 하거나 흥분도 하셨습니다. 당연히 마을이 떠나가도록 큰소리도 치고요. 우리 자식 입장에서 아버지 편을 들 수밖에 없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아버지의 혀물이 맞았던 것이지요. 단지 자식된 도리로 아버지의 잘못을 언급하기가 곤란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 어른이 집에 오시니까 아버지도 갑자기 조용해집니다. 그렇게 기세가 드높던 아버지께서 그 어른하고 마루에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눌 때 정말 조심하시더군요. 그리고 그 어른께서,


"동장요 요새 일 본다고 고생이 많지요. 마을 사람들이 동장 마음을 잘 몰라주고 그라이 참 섭섭하지요. 그래도 사람들은 우리 마을 챙겨주는 동장 마음 잘 알고 있으니 너무 그리 섭섭하이 생각지 마소. 몇 사람이 와서 따진다고 동장이 그렇게 큰소리로 대거리하면 속사정 모르는 사람들은 동장이 무슨 잘못이 있는 갑다 생각할 끼요. 그러이 화가 나더라도 일일이 성내지 말고 차분하게 들어주면서 선은 이렇고 후는 저렇다 설명하면 안 되겠능교? 내가 동장 핀이 되어 줄 터이니 동장이 먼저 성격을 누그러뜨이야 한다 아인교. 내가 밤늦게 와서 씰데없는 간섭하는 거 같아 참 미안키도 하지만, 그래도 우짜능교 평소 동장 고생하는 거 다 알고 있는 내가 이렇게 말해줘야 될 것 같아서 안 왔는교?"


당시는 이장보다 동장이란 말을 많이 했지요. 물론 나중에 행정구역 명칭이 시골의 경우 '동'에서 '리'로 바뀌면서 이장이란 말이 일반화되었지만 말입니다. 낮에 그렇게 기세 높게 사람들과 언쟁을 하던 아버지께서 그 어른 말씀에 일체 토를 안 달고 가만히 듣고만 계셨습니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그 다음날부터 저자세가 되어 마을 사람들의 말을 깊이 들어주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과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더군요. 그 어른께서 나중에 마을 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그리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 화낼 생각을 마라. 수명을 단축한다. 화를 내면 내 몸이 가장 상하고, 식구들 상처입는다. 그라고 주위 사람들 모두 아파진다. 특히 나이가 든 노인네가 큰소리치면서 화를 내면 속에 있는 오장 육부가 동시에 상한다 말이요. 그래서 나이가 든 노인네들은 화낼 일 찾지 말고, 그냥 젊은이들 세상 지켜만 보고 도와줄 생각을 해야지."


언젠가 TV에서 의사 한분께서 "화를 내면 스트레스가 동반되고 스트래스를 겪으면 내장이 순간 충격을 받아 기능이 일시 정지가 됩니다.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화를 내는 것은 누구나 정말 불필요한 행위입니다. "


그렇게 생각해 보니 주위 사람들 중에 비교적 건강하고 편안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의 공통 특징이 보이네요. 잔잔한 미소, 조용한 음성, 느리고 여유있는 말씀, 항상 좋게 좋게 세상을 생각하는 것 등 말이지요. 그래서 누가 그랬던가요.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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