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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ug 21. 2023

그리움으로

석양이 서녘 하늘로 곱게 넘어갑니다. 바다는 참으로 잔잔하고 청량한 바람을 그려 냅니다. 가만히 바라보니 오늘따라 석양이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요즘따라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도 기승을 부리던 여름 기운이 조금씩 약해지는 듯합니다. 조금 있으면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가을이 성큼 곁에 오겠지요.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일요일 저녁 아파트 거실 너머 저녁 바다를 바라보면서 제 삶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지난 삶을 떠올립니다. 별다른 일 없이 대부분은 그저 평탄하게 지나온 세월이지만 곳곳에 온갖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젊은 날 왜 그리 조바심 내며 종종 살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때는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청춘 때는 인생 목표를 가급적 크게 잡아야 한다고들 어른들이 말했지요. 그래야 실제 현실에서 어느 정도 조정이 되어도 내세울 만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했었지요. 우린 그 말을 믿고 나름 거창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조금이라도 사소한 목표를 세운 사람을 손가락질하면서 놀리기도 하고. 참 철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제 과거를 돌이켜 본들 어쩔 수 없음에 안타까움도 생기지만, 그래도 지금 이만큼 와서 자신의 삶을 한번 돌아보고 반성할 기회를 갖는 것 또한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낮에는 황농문 교수의 <몰입>이란 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몰입'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실천 방안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 책을 한참 읽다가 가만 생각해 보니 이건 우리 세대가 아니라 아주 젊은 세대, 아니면 중고 학생들에게 적용될 법한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지금 이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고 이렇게 일주일 이상 아무 것도 생각지 않고 그냥 몰입하라니 책을 읽을수록 점차 거부감이 생기더군요.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결혼하여 손주 세대가 나오면 적용해야 할 내용이란 생각이 문득 들어 책을 그만 덮어 버렸습니다.


학창 시절에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황교수는 중학교 시절부터 스스로 그런 생각의 필요성을 체험한 것 같은데, 그보다 살짝 후 세대인 저는 왜 그리 못 했을까 싶었습니다. 하기야 황교수는 카이스트 출신 서울대학교 교수이니 저같은 평범한 서생이 어떻게 따라갈 수 있였겠습니까만. 그렇게 3분의 1정도 읽다가 보니 석양이 노을에 발갛게 물들고 있더군요. 안방에선 아내와 딸 아이는 여전히 TV를 보면서 깔깔거리고. 나이가 들어 보니 주변의 세세한 풍경까지 눈에 들어옵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쳐 버릴 물상들이 이젠 왜 그리 상세하게 눈에 보이는지요. 건강 유지 목적으로 만 보를 걸으면 길가에 있는 온갖 식물들의 덩굴이 허공에 손을 쭉 내미는 듯한 모습도 보게 됩니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불안하게 내밀고 있는 식물의 덩굴이 괜히 짠하게 보입니다. 저렇게 살아보겠다고 애를 쓰는 것 같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참으로 세세하게 보입니다. 활기차게 걷는가 하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위태위태하게 한 걸음씩 내디는 사람도 보입니다. 가족들과 시끌벅적하게 떠들면서 가는가 하면, 너무나도 외롭게 홀로 쓸쓸히 걸어가는 사람도 보입니다. 산행을 하다 왔는지, 스무 명 정도 무리가 기세도 드높게 지나갑니다. 인간의 여러 군상도 이젠 제대로 보입니다. 노년엔 세상살이에 너무 민감하지 않게 대충 대충 살아가면서 안 보고 안 듣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던데, 막상 나이가 들어보니 훨씬 많은 것이 보이고 들어오네요.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젊은 세대들의 단점이 쉽사리 발견되고, 또 그것을 참지 못해 자신도 모르게 잔소리를 하는가 봅니다. 정작 젊은 세대들은 그 말을 들을 생각도 없고, 오히려 거부반응만 보이는데도 말이지요. '꼰대'란 말은 그 자체가 세대 갈등의 상징이 된 것 같습니다. ㅎㅎ.


어린 시절 고향 마을 가운데 넓은 마당이 있었습니다. 그 마당도 개인 소유긴 하지만 동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았던 공간입니다. 요즘 가보니까 생각보다 넓지 않아 보이는데, 당시엔 정말 넓게 보였습니다. 저녁밥을 먹고 숟가락을 놓자마자 그곳으로 달려갑니다. 많은 아이들이 이미 몰려와서 여러 가지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전기가 없었지만 달이 환하게 떠서 낮처럼 밝아 있습니다. 특히 가을날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는 밤엔 아이들로 꽉 찼습니다. 닭싸움, 비사치기, 공기놀이, 줄넘기 등 남녀로 나뉘어 참으로 즐겁게 뛰어놀았습니다. 아지매 아재들은 약간 높은 곳에 둘러앉아 우리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담소를 나누면서 잔잔한 미소를 띤 아지매들 표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밤이 깊어가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갑니다. 저도 그렇게 집에 가면 어머니께서 마루에 앉아 기다리고 계십니다.


"잘 놀다 왔나. 다친 데는 없고. 아~들하고 기마전도 했다메. 조심해야 한데이. 높은 데 올라타고 있다가 널찌면 큰일 난다. 그래 얼른 씻고 자라. 내일 또 학교 가야 카이끼네."


마당에 있던 펌프에 마중물을 넣고 몇 번 펌프질하면 물이 시원하게 나옵니다. 세숫대야에 놓고 열심히 세수를 하면 어머니께서 색이 바랜 하얀 앞치마를 훌쩍 들어올려 제 얼굴을 닦아 주시고, 코까지 닦아 주셨습니다. 다른 집도 다 그렇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물 펌프 근처를 말끔히 정리하시는 것을 보면서 저는 풀쩍 뛰어 마루에 오릅니다. 신발을 신으면 발에 물이 묻을까 그랬지요. 그러면 어머니께서,


"아이구 야~야, 니 그라다가 미끌어지면 큰일 난다이. 마루에도 걸레가 있으니 살살 올라가서 닦고 방에 들어가믄 될 낀데 위험쿠로 그란다이."


라고 걱정어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작은 방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제가 책상 위에서 책을 보는 모습이었지요. 어떨 때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척했고, 또 어떨 때는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노는 바람에 그날 해야 할 공부를 놓쳐서 조금이라도 책을 보다가 자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께선 일찍 자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건 진심이 아닐 것이라도 지레 짐작하고 책상 위에 앉아 있습니다. 좀 있으면 어머니께서 제가 좋아하는 사과를 두어 개 깎아서 가져오십니다. 가만히 문을 열고 들어와 방바닥 한쪽에 앉아 벽에 살짝 기댄 채 저를 말없이 바라보십니다. 제가 그랬지요.


"엄마, 엄마는 자도 된다. 내가 아~들하고 논다고 그만 공부 안 한 기 있다. 책 조금 보다가 자께. 엄마는 가서 자도 된다."


그러면 어머니께서,


"낮에 아지매들이 잠깐 우리집에 놀러왔다가 마루에서 그카대. 우리 동네 아~들 그리 많은데 공부는 이집 둘째밖에 안 한다고. 이집 살림도 크게 좋지도 않은데, 우째 그리 공부를 열심히 하는고. 나중에 정말 큰 사람 될끼다고 니를 그래 칭찬하대. 야~야, 나도 그말 믿는다. 그라고 나도 니 나중에 잘 되는 거 꼭 한 번 보고 싶다. 우째 니만 책을 보는지 모르지만, 난 니가 참 대단하다. 한번도 내한테 불평불만도 안 하고, 학교까지 그렇게 멀리 왔다 갔다 카다가도 다른 집 아~들은 일 안 할라고 학교에서 핑계 대가~ 천천히 오는데, 니는 집에 일 도울라꼬 그렇게 빨리 집까지 달려온다 아이가. 나는 잠 안 자도 니만 보만 괘안타 아이가."


라고 말씀하셨시요. 어머니께서도 살아 생전 저에게 단 한번도 '공부해'란 말씀 안 하셨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조금만 잘 하면 칭찬은 수십 배 크게 해주셨습니다. 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껴주시며 격려와 칭찬을 원도 한도 없이 해주셨습니다. 늘 허름한 옷을 입고 계셨고, 들에서 농삿일을 하시느라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시커멓기만 하셨습니다. 무능, 무책임한 아버지가 가사 일에 전혀 신경쓰지 않으니 어머니께서 여자 혼자 몸으로 그야말로 쌔까 빠지게 일을 해도 한계가 있었지만, 외삼촌과 이모들께서 알게 모르게 어머니를 많이 도와 주셔서 버텨 낼 수 있었을 겁니다. 아버지는 외가에서는 완전히 내놓은 사람 대접을 받아 외삼촌과 충돌도 많이 했지요. 이제 이 세상에 안 계시니 모두 그립습니다. 돌아가신 모든 분들과 나누었던 대화들이 참으로 그립습니다.


중학교 때는 좀 커서 그랬는지 몰라도 달밤에 동네를 벗어나 들판 길게 난 들길을 따라 하염없이 홀로 걸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낙동강 둑에 올라섭니다. 달밤이라곤 하지만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두려움도 조금 밀려 옵니다. 달밤에 강물을 바라보면 푸르기보다 조금은 검게 보입니다. 그때 사람들이 말했지요. 밤에는 강물 근처로 가지 마라, 처녀 물귀신이 갑자기 나타가 물 한 가운데로 끌어간다. 그카다가 죽는데이 등등. 실제로 낙동강변 둑길에서 강물 쪽으로 한참 바라보면 꼭 처녀 귀신이 나타나서 물 위를 걸어올 듯한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급하게 돌아서면 이제부터는 동네 어귀까지 서둘러 걸어야 합니다. 아니면 달려 가야지요. 그러면 꼭 처녀 귀신이 날아와서 저를  덮칠 것 같아 자꾸만 뒤를 돌아봅니다. 마을 동구밖에 도착하면 마을 형님들이 두 셋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다가 저를 보고 반겨주면 그제서야 안심하게 됩니다.  그런 기억도 나네요.


요즘 시골 고향 마을을 찾아가면 70대 중후반을 넘어가는 형님. 형수님들이 회관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젠 그분들도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학교를 다녀오다 동네에서 만나면 세상에서 제일 보기 좋은 환한 미소로 저를 반겨주시고 칭찬해 주시던 형님, 형수님들이 80를 바라보는 진짜 노인이 되어 버렸지요. 그렇게나 장대했던 당신들의 젊은 모습은 어디로 다 사라져 버렸는지, 형수님들은 그야말로 정말 고왔던 새색씨 시절의 얼굴은 어딜 갔는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지요. 그래도 저를 알아보고 반겨주시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건강하셔서 좀더 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고향마을을 찾아가서 만날 얼굴이 있을 테니까요. 좀더 시간이 지나 아는 얼굴이 모두 사라지면 그때는 제 순서가 될 것이지요.


석양을 바라보면서 진짜 기적이라도 일어나 어머니와 마주 앉아 저 석양을 조용히 함께 바라보는 꿈을 꾸어봅니다. 지난 날 세상살이 모든 것이 그냥 그리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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