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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ug 21. 2023

단상(斷想)

일본 오이타 현 큐슈올레 분고오노코스 출발 아사지 연못 단지 이케

스물 네 살! 대학을 갓 졸업하고 이곳 학교에 오신 젊디 젊은 아니 어린 여자 미술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야 막 퇴직하고 기껏해야 시간 강사이니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데, 새로 오신 선생님들과 전담 선생님들이 깍듯하게 인사를 하며 반겨주네요. 가끔은 제가 살면서 이런 복(福)을 받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지금 상황이 그냥 고맙기만 합니다.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이 노후를 지낼 것 같은데, 이렇게 일 주일에 이틀이라도 이곳으로 출근하여 젊은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음에 정말 고맙게 느낍니다. 학교가 시내에 있어서 출근 후 주차를 한 다음에 이곳을 근거지로 도보로 반경 웬만한 곳은 볼일 보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점심 식사를 하고 나면 곧장 학교를 벗어나 시내 이곳 저곳을 구경합니다. 


2학기 첫날이라 젊은 선생님들 드시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몇 잔을 사서 돌렸습니다. 젊은 선생님들이 '시간강사'에게 얻어 먹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아니지 연금만 해도 우리 월급보다 많을 걸 등등 싱거운 농담을 건네면서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모습들이 참 예쁘게 보입니다. 실제로 여기에서 받는 시간강사 수당은 가급적 제가 아닌 타인에게 쓸 생각입니다. 가끔은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봉투에 넣어 전하기도 하지요. 아직은 건강해서 그런지 몰라도 특별히 돈 쓸 곳도 없습니다. 예전 직장에서 동료들이 퇴직하면 부인에게 용돈 타쓰는 것이 아주 불편하고, 자존심 상하니 퇴직 전에 미리 딴 주머니를 차라, 소위 비자금을 만들어 두어라고 충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딴 주머니 찰 생각도 없다. 집사람이 3남매를 키운다고 알게 모르게 돈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데, 나까지 딴 주머니 찰 생각해 가면서까지 퇴직 후를 준비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마음 변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흘러가면 지금보다 노쇠해져 병원 신세를 많이 지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요. 아내도 가끔 '당신 용돈 필요하지 않나요?'라고 물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그것을 액면 그대로 믿을 생각이 없습니다. 가정 살림에 돈은 언제나 부족하지요. 더욱이 30대 성인 세 사람 우리집 3남매에게 아직도 지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많아서 돈 들어갈 일이 많을 텐데 말이지요. 우리집 아이들은 실질적인 독립을 아직도 못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아무래도 우리 부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저와 아내가 더 조급해집니다. 정작 아이들은 별 표정이 없습니다. 희한한 일이지요. 우리 신혼 때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었습니다. 초임 시절에 시골에서 생활하는데 월세를 제대로 내기도 어려운 지경을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어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끔 이곳 학교 아이들과 편안하게 마주 앉아 그들의 미래 삶을 놓고 면담을 합니다. 미래 무엇을 하며 살 거냐고 물으면 아무 생각이 없다는 답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특별히 뭘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래서 무엇을 준비할까 하는 계획도 있을 리가 만무 합니다. 저도 고교 시절에 그렇게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하루 하루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하루 하루를 허비하지 말고 제일 좋아하는 영역 관련 책을 많이 읽기를 권합니다. 대부분 학생들은 제 충고를 그냥 흘려 보내지만 그래도 한두 명은 제 말을 새겨듣고 책을 사든가 도서관에서 빌려 와 읽는 것을 보고 감동 받았습니다. 잘 한다고 칭찬하니까, 하루 만에 한 권을 다 읽어냈다고 자랑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집에서 부모님이 놀라더랍니다. 어떻게 책을 읽을 생각을 다하느냐고. 원하면 몇 권이라도 사줄 테니 앞으로 꾸준히 하면 좋겠다고 격려도 하시면서. 


제가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가면 학교 도서관에 정말 자주 갈 것 같습니다.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에 파묻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유명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며 진짜 실력, 역량을 쌓으려면 독서가 필수이기 때문이지요. 훗날 우리 아이들이 결혼하여 손자 손녀들이 태어나면 제 차에 태워 도서관까지 꾸준히 모셔 갈 생각입니다. 물론 그 아이들이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이제 제가 퇴직하여 노년 세대가 되니까 주위 사람들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적은 세대들이 되었습니다. 가끔은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분이 알고 보니 저보다 연하라는 것을 듣고 놀란 적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 얼굴이 동안이거나 나이가 적게 보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거울을 보면서 대개 스스로 '못나지 않았다'거나 '늙지 않았다'라고 여긴답니다.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강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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