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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Sep 02. 2023

나이가 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 가득하게 살아가기

매주 토요일 오전엔 아내를 차에 태워 시내 병원 정기 물리 치료를 받고 옵니다. 코로나 2차 접종 후유증을 겪은 것이 벌써 만 3년이 되어 갑니다. 처음보다 한결 좋아졌습니다. 오전 내 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오면 큰아들이 풍성한 육수에다 맛이 탁월한 국수를 정성껏 끓여서 거의 정기적으로 토요일 점심식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아들도 주말 숙박 아르바이트하는 곳이 좀 바쁜지 토요일에도 근무하러 가는 날이 많아서 토요일 국수를 구경한 지 꽤 되였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에 큰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야~야, 요샌 큰아들이 해주는 토요일 국수가 없어서 아쉽네. 그렇다고 주말에도 바쁘게 일하니까 어떻게 말도 옷하고 그렇네." 라고 했더니,


이번 주말  즉 오늘 토요일에 반드시 준비하겠노라고 하더군요. 어제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시내 게스트하우스에서 3박 4일간 숙박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예전처럼 토요일에 집에 있기 곤란한 상황이지요. 그런데 오늘은 잠깐 집에 왔다가 우리 부부를 위해 국수를 내놓았네요. 그런데 저에게 사정이 생겼습니다. 제가 지도한 졸업생이 참으로 오랜만에 내려와 점심 식사를 함께 하자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시내 나갔습니다. 아내 병원 치료 후 곧장 전복 죽 가게에 가서 죽을 주문한 것을 받고 집에 내려놓고 급하게 카센터에 차를 맡겼습니다. 뒷 바퀴에 못이 박혔는지 펑크가 났더군요. 그렇게 차를 맡기고 정신없이 시내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에 가니 졸업생은 벌써부터 와 있었습니다. 스무 살 고 3 졸업 당시 시내 남포동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거의 30년 만에 마주 앉았네요.


당시 서울대학교 입학 시험에서 불합격하여 낙담한 이 졸업생을 시내 남포동에서 만나 식사를 사주면서 긴 긴 인생에 1년은 지극히 짧다 그러니 실망하지 말고 다시 한번 도전해서 합격하라고 격려했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부터 고3까지 1등을 한 번도 안 놓친 그야말로 최우수 학생이었지만 딱 한 번 대학 입시에서 실패하였으니 어린 마음에 실망과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재래시장에서 참기름 장사를 하면서 아들의 성공을 빌었던 학생의 어머니가 전화 통화에서 들려준 울음은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고3 아직도 졸업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소주 한 잔을 건네면서 다시 한 번 도전하라고 권유하고 아이는 반드시 합격하겠노라고 약속했지요. 그렇게 서울로 가서 '종로학원' 재수종합반에 등록하여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하여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과에 합격하였습니다. 워낙 실력이 뛰어난 아이라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합격 결과는 하늘만 안다는 입시 업계의 오랜 관행에서 합격이란 글자가 보일 때까지 본인도 장담할 수 없었지요.


그렇게 인연이 되어 지금껏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자주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작년 겨울 굴지의 회자 NVIDIA 한국 지사 대표 CEO로 취임했다는 소식을 직접 들었을 때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젠 정확하게 50세가 된 참으로 연부역강한 졸업생이 NVIDIA  미국 본사 회장을 비롯하여 전세계 각국 지사 CEO들과 영어로 화상회의를 수시로 한다는 것부터 그의 탁월한 활동 내역을 들으면서 오늘 점심 식사 내내 진짜 기뻤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숱한 사연들도 들었습니다. 힘든 날도 많았지요. 대학원에서 인공지능을 전공하였을 때 당시는 별로 인기 전공이 아니었던 터러 주위에서 매우 불쌍하게 바라보았던 모양입니다. 그런 난관을 뚫고 AI나 챗 GPT 시대에 특화된 공부를 장기간 해온 것이 큰 열매를 맺었네요. 잠깐 식사를 하면서 이 졸업생의 긴긴 삶의 시간들을 모두 오롯이 들을 수 없었지만, 이렇게 성공하여 나를 찾아와 주어 고맙고, 훌륭한 인재가 되었으니 자랑스러워 고맙고, 우리 나라 최고의 연구자 출신 CEO가 되어 고맙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내일 싱가포르로 장기간 출장을 가기에 오늘 서울로 일찍 올라가서 준비해야 하는 졸업생과 아쉽게 헤어졌습니다.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기 빈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습니다. 고교 시절 정직하고 성실하며 우직하게 공부만 하던 아이가 이제 50 知天命이 되었으니, 그것도 최고의 인재가 되고 CEO까지 이루었으니 괜히 제가 즐거워지더군요. 그렇게 헤어지고 시내버스를 타고 카센터에 가서 차를 찾았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 큰아들이 마침 우산을 쓰고 지나갑니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큰소리로 큰아들을 불렀습니다. 아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오더니 우산을 씌어줍니다.


"엄마하고 동생 국수 해주고 가는 모양이네. 내가 괜히 쓸데없이 국수 타령해서 00이가 불필요하게 집에 왔다 가는구나. 미안타."


"아이고 아닙니다. 저도 국수 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꺼도 식탁에 해놓았으니 좀 있다 편하게 드십시오. 현관까지 우산 씌어드릴까요?"


둘이서 우산을 나란히 받쳐 들고 걸어갑니다. 참 오랜만에 나란히 걸어가네요. 최근에 운동을 열심히 하여 10kg 정도 감량했다는데, 그 영향일까요. 몸매가 날씬합니다. 아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저와 아내에게 싫은 소리 한 번도 없었습니다. 부모 말이라면 하늘처럼 받들어주는 큰아들이라 이젠 오히려 우리가 부담을 느낄 정도로 고맙고 미안하지요. 동생들 말이라면 뭐든 들어주려 하고, 가족을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하는 장남DNA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옆 얼굴을 슬쩍 보니 큰아들도 이제 나이 기운이 느껴지네요. 우산이 작은 탓인지 아이 저쪽 어깨는 조끔 젖었습니다. 근무처에서도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록 명문대학 출신이 아닌 지방의 아주 평범한 대학을 졸업한 큰아들이지만우리 부부에겐 세상 최고의 자식입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고맙기만 한 오늘입니다. 늦여름 비도 편안하게 내립니다. 이젠 이렇게 내리는 비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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