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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Sep 18. 2023

나이가 들면 가끔은 혼자의 시간을 누리세요

시냇물 수양버들이 시냇물 따라 가는 들판 석양길을 홀로 걸어가면서

조금 있으면 가을 들판은 누런 곡식이 가득하겠지지요. 그때엔 혼자서 저렇게 호젓한 시골 들판을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석양이 저녁 하늘 저쪽으로 넘어갈 때 즈음 줄지어 선 수양버들도, 부드럽게 흘러가는 시냇물도 나란히 걸어갑니다. 나이가 들면 반드시 한번 걸어가면서 생각에 잠겨 보면 좋겠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있는 처남에게 안부 확인 겸하여 전화를 했더니 아직은 황금 들판이 아니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남자 둘이서 통화하면 할 말도 참 없습니다. 잘 있었나, 예 매형은 요?, 나야 잘 있지 처남댁은?, 예 건강해요. 누나 건강은 어떤가요? 이게 통화의 전부입니다. 통화보다 서로 웃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끊었습니다. 행여 전화를 걸면 처남이 뭔가 놀랄까 봐 우리 둘은 미리 약속해 두었습니다.


"있제, 누나에게 긴급한 일이 생기면 문자로 할게. 대신 전화 통화는 그냥 안부 전화 또는 물어볼 게 있어서 한 것이라고 편하게 생각해."


이렇게 약속한 뒤 전화를 걸면 처남도 놀라지 않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받을 수 있겠지요. 작년에 보내 준 쌀 몇 가마를 올해는 다 먹지도 않고 남았다는 말도 주고 받았습니다. 제가 처음 처가에 갔을 때 고등학생이던 처남이 벌써 50을 넘어 53세라니 안 믿어져서 몇 번이나 확인하였습니다. 이젠 같이 늙어가니 말투도 장난기가 조금 섞인 듯합니다. 처남이 늘 그렇게 말합니다.


"매형, 도시에서 늘 바쁘게 생활하다가 조금이라도 지치면 여기 와서 며칠 간이라도 쉬시고 가세요. 누나 건강이 회복되어 같이 오시면 진짜 좋긴 하지만 아직은 무리하면 안 되니 혼자라도 불편케 생각지 마시고 부담없이 오세요. 알았죠?"


저도 마음 같아선 내일 당장 차를 운행하여 처가로 달려가고 싶지만, 주위 사정이 여의치 않아 마음뿐이네요. 장인 장모님 살아 계실 때 매해 평균 다섯 번은 처가를 다녀왔는데, 두 분 돌아가시고 나선 발걸음하는 것이 매우 뜸해지고, 아내 건강 상태가 좋지 않게 된 이후는 거의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 혼자 어른 두 분이 계시지 않은 처남댁을 가는 것이 그리 썩 편하지는 않더군요.


오래 전 장모님 장인 어른 살아 계실 때, 처가에 가면 특히 가을 황금 들판이 출렁일 때 들판 길게 난 길을 홀로 걸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아내와 아이들 3남매는 처가에서 장모님과 둘러 앉아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장인 어른께서는 읍내 장터에 가셔서 소고기를 몇 근이나 끊어 오셨지요. 저 혼자 들판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던 순간에 제 주변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등등을 떠올렸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홀로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던 시절이 정말 좋은 추억입니다. 아내가 처가를 나와 제가 걷고 있는 들길을 걸어와서 합류하여 둘이 다시 나란히 걸으며 대화를 나누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당시는 그런 행복한 시간이 오래 오래 지속될 줄 알았습니다. 처가 농사가 바쁜 철이 되면 사위 여섯 명 중 저만 따로 전화해서 토요일, 일요일 그렇게 이틀간 처가 농사를 도왔지요. 왜 저만 불렀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엥간히 바쁘고 급했으면 저를 불렀을까만 생각했었지요. 콤바인으로 벼를 베고 마대 자루에 자동으로 담아 놓으면 그 곁으로 처남이 운전하는 경운기에 옮겨 실었지요. 어떨 때는 경운기는 저 혼자 천천히 갑니다. 비라도 살랑 살랑 내리면 처남과 제 마음이 급해집니다. 당시 하루 종일에 120 마대 자루를 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날씨가 맑아서 작업을 시작했는데, 보슬비가 내리니 둘이 마음이 급해지고, 쉬는 시간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게 처남과 둘이 진짜 바쁘게 일했었지요. 당시 정신없이 바쁜 시간에도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담소도 하긴 했지요. 그후로 처남을 만나면 늘 그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지금도 시간을 내어 저렇게 석양이 내리는 오후 늦게 황금들판 사이로 난 들길을 걸으면서 추억에 잠기고, 사색도 해보고 싶습니다. 풍성하게 익어가는 가을 들판 사이로 시냇물도 부드럽게 흘러가고, 수양버들 잎새엔 석양에 물든 저녁놀 조각 조각이 맻혀 평화롭기 그지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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