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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Sep 20. 2023

사회적 지위 때문에 비굴해지면

새벽에 일어나 채근담을 읽으면서

새벽에 일어나 잠깐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와 시원한 물 한 잔 마신 뒤 인생철학서로 유명한 홍자성의 <채근담(菜根譚)> 전집을 펼쳤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제11장으로 곧장 갑니다.  




黎口賢腸者 多氷淸玉潔  명아주를 먹고 비름나물로 속을 채우는 사람 가운데는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고결한 사람이 많다. 


袞衣玉食者 甘婢膝奴顔 호사스런 의복과 사치스런 식사를 하는 자는 노비처럼 무릎꿇고 아첨하기를 감수한다.


蓋志以澹泊明 而節徒肥甘喪也. 뜻이란 담박함으로써 밝아지고, 절개는 기름지고 달콤한 맛 때문에 잃기 때문이다. 


갑자기 위 구절이 가슴에 깊이 와 닿습니다. 저야 평생 벼슬살이 경험이 없지만, 젊은 시절 누구에 못지않게 야망이 있고 출세하고픈 마음이 정말 강했지요.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도 고민하면서 실제 남들 모르게 고시 공부한다고 그 어려운 육법전서를 접하기도 했습니다. 출세하여 남들 위에 군림하고 싶었던 시절이 분명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욕망이나 야망을 쉽게 포기하고 평탄한 삶을 정말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고시에 실패한 자기 위로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스스로는 삶의 야망을 쉽게 포기하고선 가르치는 아이들에겐 꿈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강요하면서 이런 이중적인 자세나 위선을 행하다니 갑자기 미안하고 부끄러워집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저는 여러 가지 가정 사정으로 제 꿈을 포기했지만, 남의 귀한 집 아이들은 그 꿈을 이루게 하고 싶었던 게지요. 


위 구절 중에 명아주나 비름은 맛난 채소가 아닙니다. 둘 다 황무지에 나는 잡초로, 흉년이 들면 구황식물(求荒植物)로써 식용합니다. 


부와 지위, 명예에 얽애여 비굴하게 살아가는 자세를 비판한 것으로 보면 되겠지요. 물론 여기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맹위를 떨치는 부(富) 같은 경우 고개를 숙여가면서까지 축적해야 인생이 더욱 행복할 수 있다고 보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지위도 그럴 것이겠지요. 물론 명예는 그렇게 비굴한 자세를 취해선 획득하기 어렵지만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 보니 그렇게 추구한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욕심이 심하면 탐욕이 되기 싶고, 비굴한 자세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기 쉽더군요. 우리 주위에 그런 일이 허다하지 않던가요. 나이가 들면 세상 욕심은 저만치 버리고 담담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와 경쟁하여 뭔가 얻겠노라고 하는 자세는 그리 아름답지 못합니다. 


갑자기 윤선도 시조가 떠오르네요. <산중신곡(山中新曲)> 중 만흥(漫興) 두 번째 시조입니다. 


보리밥 풋나물을 알맞춰 먹은 후에

바위 끝 물가에 슬카지 노니노라

그 남은 여남은 일이야 불을 줄이 있으랴


풀이하자면


간소하게 보리밥 풋나물로 알맞게 먹은 다음에 바윗머리나 물가의 경치 좋은 데를 두루 돌아 다니며 나는 놀고 있노라. 이렇듯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 휩싸여 지내고 있으니, 그 밖의 다른 일들이야 무엇을 부러워할 까닭이 있겠는가?

  



큰 욕심 부리지 말고 그냥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괜히 사회적 지위를 추구한답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는 자세는 그리 보기 좋지 않지요. 한 자리 차지하고 싶어서 여기 저기 손벌리고 다니는 노년 세대를 보면 편안하던가요. 그냥 보리밥 풋나물 같은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인생이 좋지 않을까요. 저의 착각일까요. 


P.S


혹자는 말합니다. 윤선도가 풋나물 밥을 먹으면서 검소한 생활했노라곤 하지만 지금도 해남 윤씨 종가의 부동산이 수십 만 평이나 될 정도니 고산 당시도 만만찮은 지역 부호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부자들이 보리밥이나 풋나물이니 하면서 검소한 척하지만 그건 우리와는 딴판인 별세계 사는 사람들의 여유요 취미에 불과하다. 우린들 수십 억, 수백 억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한때 굶은들 배가 고프랴고 말입니다. 작가님들 판단에 맡깁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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