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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Sep 20. 2023

헤로도토스의 <역사>

하르파고스 <아스티아게스와의 악연>

<아스티아게스와의 악연>

며칠 전에 올렸던 글인데 그만 제 잘못으로 삭제되어 다시 생각나는 대로 썼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1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저서인데, 천병희 번역본을 하루에 몇 장씩 천천히 읽어나갑니다. 지금까지는 동양사나 동양문화 관련 저서에 초점을 두었는데, 퇴직 후 시간적이 여유로 이제부터라도 서양사, 서양 철학 관련 저서를 읽어볼까 합니다. 실제로 제가 평소에 편독(偏讀)이 극심한 탓인지 이 책을 읽는데 진도도 잘 안 나가고 내용 이해도 쉽지 않네요. 가끔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이 나오면 작가님들께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이 분야에 탁월한 실력을 소유한 작가님들도 계시겠지만.



일명 <아스티아게스와의 악연>이라고 하지요. 충신이자 명장이었던 하르파고스는 본래 메디아의 왕족이었습니다. 그는 메디아의 왕인 아스티아게스의 친척이었고, 성격도 몹시 충성스러워 아스티아게스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왕 아스티아게스가 이상한 꿈을 꿉니다. 꿈속에 자신의 딸 만다네가 등장하여 오줌을 누는데 에우레파와 아시아 지역을 잠기게 하는 대홍수를 일으킵니다. 놀란 왕 아스티아게스가 사제 계급인 마고스들에게 해몽을 물었고, 그들은 만다네가 낳은 아들이 자신을 대신하여 왕이 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아스티아게스는 페르시아 안샨의 왕자 캄비세스에게 시집보냈던 딸을 다시 수도로 불러들여 그녀가 아들을 낳는 즉시 그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만다네가 시집간 첫 해 아스티아누스가 다시 꿈을 꾸는데, 이번에는 만다네 생식기에서 나온 포도송이가 온 아시아를 가득 덮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만다네를 수도로 다시 불렀었지요. 캄비네스는 집안도 좋고 사람도 훌륭하였지만 메디아와 비교하면 초라한 계급이었지요. 과연 만다네가 아들을 출산하자, 아스티아게스는 하르파고스를 불러 아이를 집으로 데려간 후에 죽이고 그 시신은 적당히 처리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르파고스는 이 일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리하기를 주저합니다. 아스티아게스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만약 왕이 죽고 나면 딸 만다네가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지요. 그렇다면 미래 권력인 만다네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 불본 듯 훤한데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훗날 정치보복이 필연적으로 따를 것이고 하르파고스 개인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집안 전체가 풍비박산나는 것이지요. 그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외가 없다고 보면 됩니다.



결국 하르파고스는 고민 끝에 남의 손을 빌리기로 마음먹고는 아스티아게스의 소몰이꾼인 미트라다테스에게 그 아이를 몰래 버려서 죽이도록 명합니다. 그러나 미트라다테스도 차마 갓난 아기를 죽이지 못했고, 그때 마침 아내가 아이를 사산하였기에 죽은 아기와 만다네의 아들을 바꿔치기합니다.  결국 만다네의 아들이 살아남았지요. 소몰이꾼의 아들로 말이지요. 이 아이가 훗날 퀴루스 대왕입니다.


세상에 비밀이 있던가요. 퀴루스가 아이들하고 어울려 노는데, 그 핏줄이 어디갑니까. 또래 아이들이 퀴루스를 왕으로 받들고 명령을 듣는데,  한 아이가 그 명령을 거부합니다. 그러자 퀴루스가 왕의 이름으로 처벌하려 하였고, 그 아이가 부모에게 일렀습니다. 부모 입장에선 소몰이꾼 아들에게 자신의 아들이 처벌받는 것이 비록 아이들 사이에서 빌생한 사건이지만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관청고발하자 그것이 결국 아스티아게스 앞에까지 옵니다. 왕 아스티아게스가 소송을 지켜보는데, 소몰이꾼 아들이 보통 사람과 달랐고, 더욱이 자신과 많이 닮았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결국 자신이 내린 명령을 하르파고스가 어긴 것을 알게 됩니다. 이때는 아스티아게스도 손자를 해쳤던 사실에 죄책감이 있었고, 꿈해몽을 했던 마고스들도 퀴루스에 대한 예언은 이제는 무효가 되었다며 말하지요. 그래서 퀴루스를 죽이지 않고 그 친부모인 만다네 부부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여기서 사건이 일단락되었으면 무난한 결말이 될 수 있었는데, 세상사가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됩니다. 왕 아스티아게스가 앙싱을 품고 하르파고스에게 끔찍한 보복을 가합니다.  아스티아게스는 하르파고스를 불러 연회를 베풀고 맛좋은 고기요리를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하르파고스가 고기를 다 먹고 나자 남은 고기는 더 가지고 가도 좋다고 하면서 남은 고기가 담긴 통을 가져옵니다. 그 안에는 하르파고스의 열 세 살 아들의 머리와 사지 조각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르파고스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담담하게  왕의 뜻에 따르겠다고 말하며 아들의 남은 시신을 거두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겉으로는 왕의 명령을 받들고 나머지 시체 일부를 가져가 장례식이라도 하려고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렇던가요. 하르파고스 입장에서 피가 거꾸로 치솟는 분노가 생기지 않았을까요. 그 자리에선 그냥 참는 듯이 보였을 뿐이지요.


이건 일본 전국 시대 도쿠카와 이에야스의 장남이 오다 노부나가의 딸과 혼인 후 이런 저런 시비 빼문에 아들이 도쿠카와 이에야스 앞에서 할복자살하고, 도쿠카와 이에야스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참애 낸 장면과 비슷하네요. 수십 년 뒤에 잔인하게 보복하게 되지요.


하르파고스는 겉으로는 왕이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그 고기를 자신에게 먹인 사실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듯이 행동했으나, 마음 속으로는 원한을 품고 복수를 열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스티아게스는 그를 의심하지 않고 계속 중용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르파고스는 훗날 복수를 펼칩니다.


퀴루스가 장성하여 사람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게 됩니다. 그러자 하르파고스가 토끼의 뱃속에 밀서를 넣어 퀴루스에게 보내서 반란을 일으키로도록 부추기고, 다른 메디아의 중신들에게도 남몰래 손을 뻗어서 포악한 아스티아게스를 몰아내고 키루스를 왕으로 옹립해야 한다고 선동합니다. 이를 기회로 삼아 키루스는 그동안 메디아인들의 지배에 불만을 품고 있던 페르시아인들의 사령관이 되어 그들을 선동하고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스티아게스는 페르시아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전군을 소집합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반란의 숨은 주역이자 자신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하르파고스를 그 사령관으로 임명합니다.  자신이 과거에 하르파고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도 까많게 잊은 채 말입니다. 하르파고스는 페르시아군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도리어 퀴루스와 합류하여 메디아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다. 분노한 아스티아게스는 남은 병력을 모두 모아 직접 페르시아군과 맞붙었으나 메디아군은 그 싸움에서 참패하였고, 아스티아게스 그 자신도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르파고스는 포로가 된 아스티아게스를 찾아와 과거에 그가 자신에게 저질렀던 만행에 대해 꾸짖습니다. 그러자 아스티아게스도 지지 않고 "차리리 네가 왕이 되지 않고 어째서 페르시아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는가? 너의 원한 때문에 메디아인들을 페르시아의 노예로 만들었는가?"라고 했다 합니다. 이후 하르파고스는 퀴루스가 당대 라이벌이던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와 전쟁할 때 군세가 약해서 고민하는 것을 보고 단봉낙타를 활용할 것을 제안하여 그것이 신의 한 수가 되어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과연 크로이소스 군마들은 낙타들의 낯선 생김새와 냄새를 두려워하며 진격하지 않고 도리어 뒤로 돌아 달아나기 시작했고, 크로이소스는 이 전투에서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크로이소스가 리디아군을 이끌고 사르데스의 성벽에 들어가 최후 농성하였으나 14일 간 포위공격을 당한 끝에 도시가 함락당하고 그 자신 또한 퀴루스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르파고스라는 인물의 행적을 보면서 사람 사는 원리는 동서고금에 관계없이 모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수심이란 것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언젠가 그것이 커다란 재양이 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애초부터 사람 관계가 원수가 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데 어디 그것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던가요. 역사에 남아 있는 유명한 왕이나 장군들이야 최고위층 권력 세계에서 그런 권모술수를 획책하고 복수하고 또 다시 복수하는 그런 잔인하고 비열한 술수를 행하지만, 우리네 평범한 서민들이야 그런 일이 있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 같은 서민들도 다른 사람과는 원한 관계는 절대 만들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해야 합니다.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난 그냥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농담을 건넸는데, 상대방으 평생 가슴 아픈 기억이 될 수 있으까요. 그래서 말이 많으연 안 된다고 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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