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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Sep 24. 2023

나이가 들면 언제나 고향 추억의 그곳으로

저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가렵니다

나이가 들어 보니 고향 생각이 정말 많이 납니다. 이제 이 나이에 고향 시골 마을에 간들 낯익은 얼굴이 몇이나 있을까 싶습니다. 80을 바라보는 고향 마을 집안 형수님들도 해마다 세상을 뜨는 상황이라 한 번이라도 자주 일찍 오라고 말씀들을 하시지만, 퇴직한 노년의 삶도 생각보다 현실에 매여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렵네요. 유년의 추억이 가득한 공간 그곳으로 걸어간다면 하는 생각에 많이 잠깁니다. 마음 같아선 차 트렁크에 먹거리를 가득 실어 지금이라도 당장 떠날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하면 내일부터 새로운 주가 시작되고, 가족들 출근 시간에 맞춰 차량 운행해야 하고,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를 비롯한 루틴에 가까운 하루 일과가 기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골 마을에 형님들 형수님들도 돌아가면서 전화를 걸어 안부 인사를 하는 것밖에 없네요. 


자신의 친동생도 시동생도 전화를 좀처럼 걸어주지 않는다면서 시골 마을을 쓸쓸함을 저에게 온통 털어놓네요. 

"디럼요. 잘 있는교. 그래도 우리 안 잊아뿌고 이렇게나 전화라도 해주이 참말로 고맙심더. 그나저나 어디 아픈 데는 없는교. 인자 디럼 나이도 마이 뭈으이 건강에 신경 마이 써야 합니데이. 시간 나마 회관이남 마을에 한 번쓱 오소. 차에 뭐 묵을 꺼 분답시리 사가지고 오지 말고 알았지요. 우리 동네 형님들 형수들 디럼 오는 거 얼마나 기다리는지 알지요? 아프지 말고 동서도 안부 전해 주고 아~들도 잘 지내라 카소. 고맙심더."


제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전화를 받은 형수님은 당신 하고 싶은 말씀만 하시고 그냥 끊어 버리시네요. 시골에는 밤 8시만 되어도 잠에 들기 때문일까요. 어린 시절 꽃 같은 나이로 시집 오신 형수님들께서 길에서 만나면 얼마나 살갑게 대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께서 집안 형수님들께 드리라고 뭔가 음식이라도 싸서 심부름 가면 형수님께서 그냥 안 보내시고 마루에 저를 앉혀놓고 어떻게든 보자기에 뭔가 싸주셨지요. 돌아가신 어머니 살아 생전에 집안 형수님들과 정말 친했습니다. 그리고 형수님들도 가정 내에 뭔가 문제가 생기면 당신들의 시댁이나 친정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집에 와서 어머니와 아버지께 하소연하는 경우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어머니 아버지 선에서 해결해 주셨지요. 형님들이 다음 날 저희 집에 오셔서 아버지 앞에 앉아 이런 저런 훈계도 듣고 잘못 했노라고 말씀하시던 일도 눈에 선합니다. 시골 마을 이장은 당시만 해도 행정, 사법, 입법 3부를 관장하던 그야말로 시골의 촌장 노릇을 하였답니다. 한학을 조금 배운 덕분에 아버지께서 마을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을 받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선 우리집이 가난한 농가인데도 어떻게든 비상금을 마련해 놓고 형수님들이 와서 '돈'이야기를 하시면 빌려 주시던 일이 왕왕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집 3남매는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유난히 많이 받았습니다. 그중에 제가 더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20대 꽃 같은 나이에 시집와서 이제 50년이 훌쩍 넘어가니 70대 중후반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어떤 분은 요양 병원에 가시고, 또 어떤 분은 병원 중환자실에게 장기입원, 아니면 집안에서 하루 종일 칩거하시기에 마을 회관에 나와서 담소를 나누는 분들도 해마다 줄어갑니다. 제가 가면 회관 큰방에 둘러 앉아 옛날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련만 이렇게 안타깝게 시간만 흘러갑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고향 마을을 찾는다면 이번에는 저렇게 길게 난 농로 흙길을 맨발로 걸어가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그곳에 서서 옛날 생각에 잠기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어린 시절 추억으로 쉽게 젖어들지요. 제 얼굴을 그래도 알아보는 분들이 계실 때에 시간을 내어 가볼까 합니다. 가는 날이 보름달이 훤하게 떠오르면 더 좋겠습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셔서 계시지 않으니 다음 주 본격적인 추석 연휴 시즌이 되어고 영 감흥이 생기지 않네요. 부모님이 계시다면 시골 마을의 보름달 추석이 참으로 아름다울 텐데 말이지요. 그러면 훨씬 더 행복하겠지요. 보람들 훤히 세상을 밝히는 저 들길을 걸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백(李白)이 지은 정야사靜夜思)가 갑자기 생각납니다. 고요한 밤에 고향을 생각하다는 의미겠지요. 


 침상 앞 밝은 달빛이 떠오르니,                床前明月光

땅 위에 서리라도 내린 건가.                    疑是地上霜.

고개 들어 밝은 달 바라보며,                    擧頭望明月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低頭思故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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