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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Oct 06. 2023

그리움으로

금요일 자격증 실습을 일찍 끝내고 곧장 이곳 추억의 공간으로 왔습니다. 서녘하늘로 내려온 노을이 수양버들잎새들마다 곱게 물들이고 있는 들길을 홀로 걸어갑니다. 나이가 들면 자신도 모르게 추억에 젖는가 봅니다. 제 고향 마을 들판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몽환적 분위기도 있는 듯합니다. 어떨 때는 이렇게 끝없이 걸어가다가 그냥 세상에서 사라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 옛날 이길은 친구들과 족대를 들고 들어가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갈대밭에 소를 풀어놓고 나란히 걷기도 했었지요. 수양버들 아래 둘러앉아 서로 간지럼 태우는 장난도 하고, 들길 저 끝 무렵에 원두막 하나 있어서 그곳에 올라 부드럽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기기됴 했습니다. 이젠 제 혼자가 되었네요. 요즘따라 왜 이렇게 홀로 들길을 걷는 생각에 많이 젖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열심히 바쁘게 살아와서 그런지 지금은 특별히 목적도, 목표도 없이 그냥 하루 하루 살아가는가 봅니다. 


여기에 오면 힐링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했는데, 석양길을 홀로 걸어가니 자신도 모르게 감상적이 되어 버립니다. 누군가 낯익은 얼굴 하나라도 있어 나란히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시 도시로 돌아가면 바쁘기 그지없는 하루 일과에 매몰되겠지요. 우리집 그 순한 암소가 저쯤에서 음메 하면서 제 곁으로 걸어올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참으로 그리운 시절입니다. 


가난해도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 넓은 들판에 서면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다들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었지요. 마을에 들어서면 또 아이들은 얼마나 많았는지요. 대구 시내에서 친척이라도 오면 도시 출신 아이들 구경한다고 달밤에 모여 늦게까지 놀았지요. 닭싸움, 기마전, 자치기, 비사치기, 고무줄 노래 등등 놀이도 정말 많았던 시절입니다. 그 많던 친구들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는지, 오늘 이 순간엔 여기 저 혼자 걸어갑니다. 


'그리움'이 석양길에 내립니다. 저녁 노을에 물들어 수양버들 사이로 젖어듭니다. 시냇물을 따라 반짝이는 물결 위에도 그리움은 머무르고, 이름 모를 풀잎들 마다 그리움이 맺혀 이슬이 되어갑니다. 새벽이면 그리움이 물안개 되어 제 가슴 속으로 젖어오를 것 같습니다. '그리움' 참으로 우리네 삶에 큰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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