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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그냥 넉넉한 마음을 가지세요

채근담 (菜根譚) 이야기에서

by 길엽


"채근담(菜根譚)" 많이들 들어보셨겠지요. 최근에 방 한쪽 구석에 돌아다니는 이 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예전부터 꼭 읽어봐야지 하면서 차일피일하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삼교일치의 통속적인 처세 철학서로 알려져 있는데 흔히 인생 교훈서라고 보면 됩니다. 명나라 말기 유학자인 '홍자성(洪自誠)'이 지은 책으로 전집 225장과 후집 134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이름이 특별합니다. 나물 채 뿌리 근 이야기 담으로 채근담인데 무슨 채소 이야긴가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답니다. 책 제목의 ‘채근’은 송宋나라의 학자 왕신민(汪信民)이


“인상능교채근즉백사가성(人常能咬菜根卽百事可成)”이라고 유래했습니다. 그 뜻은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일을 다 이룰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러한 나물 뿌리에서 느껴지는 깊고 담담한 맛으로, 저자가 말하는 삶의 진리나 깨달음도 소박하고 단순합니다. 이 책의 저자 홍자성은 자세한 이력 없이 명나라 말 만력(1573~1619) 시대의 학자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 바닥난 국고 등 이미 멸망의 기운이 감돌던 혼란의 시대에서도 저자는 참다운 사람의 길을 모색했고, 이 책을 통해 자신이 깨달은 인생의 참된 뜻과 지혜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채근담 내용 중에 제 마음을 사로 잡은 문장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山之高峻處無木 而谿谷廻環, 則草木叢生.


水之湍急處無魚 而淵潭停蓄, 則魚鼈聚集.


此高絶之行 褊急之衷 君子重有戒焉.



산이 높고 험준한 곳에는 나무가 없으나 골짜기가 감도는 곳에는 초목이 무성하고,

물살이 세고 급한 곳에는 물고기가 없으나 연못이 깊고 고요한 곳에는 물고기와 자라가 모여드니

지나치게 고상한 태도와 좁고 급한 마음을 군자는 깊이 경계해야 하느니라.






다른 사람의 허물에 대해 쥐잡듯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특히 스스로 고결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이런 경향이 많습니다. 좀 넉넉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면 좋겠습니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인생 선후배 사이에도 직장 상사와 직원 사이에도 형제 간에도 친구지간과 고부지간에도 모두 해당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허물을 지니고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자신의 허물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나이가 들면 젊은 사람들의 허물이 눈에 많이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못 본 적하면서 그냥 넘기세요. 우리도 젊은 날 다 그렇게 살았답니다. 대부분 인정하지 않긴 하지만 말입니다. 사람이 너무 맑으면 친구가 없고,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놀지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 보았지요. 여기에서 홍자성이 말하는 내용과 결이 같습니다. 특히 남의 허물을 지적할 때 추상같이 행하는 모습입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쥐잡듯이 꾸지람하는 이야기가 참 많았지요. 요즘에야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사람 사는 원리는 세월이 흘러가도 늘 그러하지요, 가정에서 고부갈등은 있기 마련인데, 문제는 며느리만 잡아야 하느냐는 것이지요.


직장에서도 상사랍시고 직원들 질책을 유난히 심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은 결코 실책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오히려 능력이 떨어집답니다. 이제 현직에서 벗어나 노년세대에 접어들어 생활하는 우리 입장에선 젊은 사람들의 허물에 대해서 넉넉한 마음으로 넘겼으면 좋겠습니다. 자식들이 실수흘 하더라도 너무 심각한 얼궁을 하지 보이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채근담 한 구절이 오늘 제 마음에 깊이 와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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