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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 산책로를 걸으며

세상 사 잊고 하루 만 보 걷기로 건강 유지

by 길엽

매주 토요일 오전 아내 병원 정기 치료 픽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딸 아이와 셋이서 점심 식사를 한 뒤 집앞에 있는 해안산책로를 걸어갑니다. 아파트만 벗어나면 곧장 열려 있는 길이라 접근성도 좋고 운동하는데 큰 무리가 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저렇게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보면서 걸어가는 것이 최고 즐거움입니다. 지자체에서 오래 전에 주민들을 위해 해안산책로를 만들어 준 덕분입니다.


퇴직 후 걷기 운동을 권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매일 걷다 보니 몸도 마음도 쾌청해집니다. 무엇보다 천혜의 절경을 바라보니 기분도 정말 좋아집니다. 저한테도 이런 여유로운 순간이 올 수 있구나 하면서 걸어갑니다. 매점에서 생수 하나를 사니 600원입니다. 걸어가다 잠시 바다를 바라보며 벤치에 앉기도 합니다. 누가 많이 걸으라고 재촉하는 것도 아니니 제가 앉고 싶으면 그냥 앉는 것이지요. 벤치에 앉아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합니다. 15분 정도로 편집한 영화를 주로 봅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걸어갑니다.


오랜 기간 함께 근무했던 동료 하나가 퇴직 후 암 검사 받느라고 서울 아산병원에 장기간 입원해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와 마음이 정말 잘 맞았던 동료였지요. 35년 간 같이 지내면서 언제나 제 편을 들어주는 참으로 넉넉한 마음씨의 소유자였습니다. 현직에 있을 때는 가끔 몇이서 술집에 둘러앉아 술잔을 건네며 마음껏 떠들고 웃었는데, 이런 슬픈 소식을 보내 오네요.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눈 것이 기억납니다.


"우짜겠노. 나중에 하느님이 오라카믄 그냥 가야지. 그케도 그전까지는 안 아프고 재미있게 열심히 살아야 안 되겠나. 술도 많이 마시고. 잘 묵고 죽은 귀신들 때깔도 좋다 카데. ㅎㅎㅎ."


그러면서 술자리 분위기를 한껏 띄웠던 친구였습니다. 통화를 하면서 저도 그도 음성이 차분해집니다. 착 가라앉았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지요. 둘 다 그렇게 떠들면서 시간을 즐겁게 누리며 보냈지만 막상 이런 현실에 봉착하니 인간 특유의 공포감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병원 안에서 내일도 기약할 수 없는 막막한 환자 입장에서 지금 현재가 얼마나 답답할까요. 그렇게 등산도 많이 하고 사람들을 만나 즐겁게 지내면서 보낸 그가 지금 병원의 삭막한 벽만 바라보고 누워있으니. 저도 나름 건강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몸 안의 장기는 제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디가 아플 예정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신의 판단에 맡겨 담담하게 살아가려 합니다. 세상을 떠날 날이 오면 그냥 받아들여야지요. 그래서 지금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하지만 당장은 참으로 고마웠던 사람의 병원 입원 소식에 우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빨리 나아 다시 만나자면서 전화를 끊었지만 마음 속이 편할 리가 있나요. 그 전화 통화 직후엔 저도 일시적으로 기운이 빠졌지만 다시 일상을 보내면서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렇게 저 멀리 푸른 바다와 파도, 그리고 하얀 구름을 바라보면서 싱싱한 마음으로 걸어갑니다. 이런 순간이 있음에, 이런 시간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음에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 봅니다. 누가 그랬던가요.


"세상에 최고 행복은 하늘을 나는 특출한 재주보다도, 바다 위를 걸어가는 탁월한 능렵보다도 내 발로 마음대로 걸어갈 수 있다는 데 있다."고.


요즈음은 이 말을 진짜로 실감합니다. 이렇게 편안하게 걸어가면서 자연 풍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해하면서 행복감을 깊이 느낍니다. 젊은 시절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갑자기 주위에서 알려오는 사망, 장기 입원, 병원 특실, 중환자, 요양병원 등의 단어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좋은 소식보다 듣기 불편한 소식이 훨씬 많이 들려옵니다. 그래서 늙는 것이 서러운 것이구나 하고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걸어가면서는 그런 세상사는 살짝 잊고 싶습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바다 풍경에 푹 젖어 즐거운 생각만 하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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