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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소박한 행복을 추구할 것

채근담(菜根譚) 이야기

by 길엽


손님과 벗이 구름처럼 모여 마음껏 마시며 노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잠시 후 밤도 이슥하여 촛불도 가물대고 향불도 꺼지고, 차도 식으면,

오히려 깨닫지 못하는 사이 목이 매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무미건조한 것이 삭막하게 만든다.

천의 일이란 대개 이와 같으니 사랑은 어째서 빨리 생각을 돌리지 않는 것일까.


賓朋雲集 劇飮淋漓樂矣

俄而漏盡燭殘 香銷茗冷

不覺反成嘔咽 令人索然無味

天下事率類此 人奈何不早回頭也



예전에 오랜 기간 근무했던 학교에서 졸업생들이 동문가족체육대회를 열어 잠깐 얼굴을 보였습니다. 35년 간 근무한 학교여서 졸업생 얼굴 대부분 기억하는데, 그중에 전혀 낯선 얼굴이 있으면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자신이 몇 기 졸업생 000라고 소개를 합니다. 저는 그 졸업생을 잘 기억하지 못해도 그 졸업생은 저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더군요. 다행히도 좋게 기억해 주어 감사한 일이었지요.


퇴직한 선생님들도 꽤 오셨습니다. 젊은 날 함께 했던 동료들인데, 그때 그 시절 그렇게 짱짱하던 몸과 마음이 몇 년 동안 순식간에 쇠약해진 듯했습니다. 흰 머리는 세월의 힘에 눌려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쇠잔한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지요. 저에게 건강 비결이 뭐냐고 하면서 제 머리숱이 풍성하다고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제 몸속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건강 상태를 장담할 수 없다고 답했지요. 제 솔직한 마음입니다. 겉으로는 건강하게 보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할 때마다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합니다. 스스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젊은 날 술을 유난히 많이 마셔서 호걸(豪傑)이라 불리던 선생님들의 육체적 쇠약이 눈에 띱니다. 그들끼리 물려 다니며 밤새 술을 마신 것을 다음 날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던 잘 나가던 선생님들이 이젠 퇴직하여 누구보다 빨리 병원 신세를 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즐거움도 지나치면 오히려 몸에 해롭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집집마다 사정이 있는지 얼굴 표정도 어딘지 모르게 어둡게 보이고, 몸 이곳저곳 불편한 곳을 하소연합니다. 저는 그나마 조금 나으니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봅니다.


젊은 날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밤이 짧다는 등의 싱거운 농담을 흔쾌히 주고받으며 보낸 날들을 생각합니다. 내일은 생각지 않고 그렇게 밤새 마시고 흥청거리며 즐겁게 놀았지요. 그렇게 사는 것이 젊은 날의 특권이라고 여겼습니다. 지금 돌아 생각해 보니 지나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결국 인생을 허무하게 함을 느끼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소박한 행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내 발로 걸어서 어딘가를 마음껏 갈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루 세 끼를 오롯이 먹을 수 있음에, 누군가를 만나 소박한 식사를 나눌 수 있음에, 그 위에 담소까지 나눌 사람이 곁에 있음에, 무엇보다 지금 당장 아프지 않은 내 몸에, 가족들이 온전하게 곁애 있어 줌에, 내가 무엇을 하든 늘 내편이 되어 주는 친구가 있음에, 길 가다 맛난 것을 보면 살 수 있음에, 문득 괜찮은 옷을 보면 가게에 들어가서 살 수 있음에, 한가한 시간에 책상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음에, 가을날 단풍이 내리는 한적한 길을 걸으며 고독에 젖을 수 있음에, 등등에도 깊이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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