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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pr 18. 2023

소설 "엄마의 노래" 중에서

어머니 살아 생전 직접 불러주셨던 노래 '방랑시인 김삿갓'을 그리며

방랑시인 김삿갓          


참! 이런 일도 있었다. 고2인지 고3인지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늦가을 어느 날 인근 현풍장까지 혼자 경운기를 끌고 무를 팔러 간 적이 있었다. 고3 늦가을은 입시 때문에 불가능했을 것이니 고2 늦가을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리 경운기엔 무를 잔뜩 실었고, 엄마는 동네 다른 형의 경운기를 타고 시장에서 합류했다. 여름에 큰 홍수가 나서 우리 밭까지 낙동강 물이 들어오는 바람에 무와 배추가 썩어버려 다시 밭을 갈아 심었다. 때를 놓친 탓에 무의 절대 성장 시간이 부족했다. 무가 제대로 크지 않아 상품 가치는 영 없었다.        

   

그래도 그대로 버리기는 너무 아까워서 시장에 가서 팔기 위해 경운기에 실었다. 커다란 무가 탐스럽게 빛이 나도록 매끌매끌해야 하는데 평소에 비해 3분의 2정도만 자란 것 같이 어중간했다. 그래도 경운기에 가득 실었다. 형과 아버지가 거들고 해서 어찌 어찌 하여 현풍장에 풀어 놓았다. 논공 돌끼장과 달리 현풍장은 아버지나 엄마가 아는 사람이 없어서 고정적으로 경운기를 세워놓을 만한 곳이 없었다. 돌끼장만 해도 아버지가 아는 사람이 식당을 하고 있어서 식당 앞에 편편한 곳에 경운기를 세워 둘 수 있었다. 

          

현풍장에 도착하니 중간 상인들 몇 명이 달려 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경운기 짐 전체를 한꺼번에 넘기라고 한다. 그것도 절반 가격에. 그래서 내가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시라고 큰소리치면서 거절했다. 엄마의 표정은 그냥 상인이 부르는 값에 그렇게 팔았으면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난 엄마를 설득했다. 

     

“엄마. 저 사람들 너무 싸게 돌라 칸다 아이가. 그리 팔만 아무 것도 남는 거 없다. 정 안 팔리마 집에 가가 소 믹이지 뭐. 안 그렇나.”     

“아이고 야야 정인아. 집엔 무시가 꽉 있다 아이가 들에도 마이 있꼬. 그거 믹이마 충분하이 상인들 돌라 카는 대로 조라. 집에 가가마 뭐하노 다 버리뿌야 한다 아이가. 정인아 그냥 넘가뿌라.”     

“엄마, 저 사람들 버릇 고쳐야 한다. 농사 빼빠지게 지은 거 즈그들 마음대로 택도 없는 금으로 받아물라 카는기 영 아이다 아이가. 조금만 기다리 바라. 저 사람들 좀더 비싼 값으로 다시 흥정하자 칼 끼다.”     

“정인아 무시는 말이다. 시간 가마 시들어서 더 비싼 값으로 안 쳐준다. 그냥 넘가뿌고 가자. 니 묵을 꺼나 사고 말이다.”     

“엄마 생각은 그렇나. 그라마 한번만 기다리 보자. 그래도 아이마 팔께.”     


상인들은 더 이상 접근하지 않았다. 내가 가서 흥정하는 것도 마뜩찮았다. 상인들끼리 우리 경운기를 슬쩍 슬쩍 넘겨다 보다가 한 사람이 온다.      


“야야 니 무시 한 경운기 다시 생각해 바라. 금 잘 해주께.”     

“얼마 할라 카는데예. 또 깎을라 카마 안 합미데이.”

“조금만 더 쳐 주께. 됀나.”     


옆에 있는 엄마 표정이 조금 밝아진다. 엄마 얼굴을 보는 순간 상인의 거래에 응했다. 앞에 불렀던 금액보다 그야말로 조금 더 쳐주었다. 생각 같아선 흥정을 깨고 싶었지만 조급해 하는 엄마의 표정에 마음을 싹 바꾸었다. 상인에게 돈을 받으면서 부른 금액보다 조금만 더 달라고 했다.   

   

“아저씨예, 우리 엄마 농사 짓느라고 저리 시커머이 고생했는데 조금만 더 주이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싸서 그캅니다. 조금만 더 주만 안 됩니꺼?”     

“내 니 누구 아들인지 잘 안다. 그 마을 효자라고 소문난 거 다 안다. 느그 엄마 아프다꼬 10리 밤길도 마다 않고 뛰가가 약 사왔다메. 금을 더 쳐주는 거는 택도 엄지만 그래도 니 효자라 캐서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준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어쨌든 인자 짐 부루자. 됐제. 어이 김씨 이 짐 부라가 전부 옮기이소.”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상인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말해 주었다. 유가면 사람인데, 몇 년 전에 유가에서 우리 마을로 이사 온 사람과 친지라고 했다. 그래서 그 사람을 통해 우리집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뭐 중요한 일이라고 한참이나 거래와 관계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렇다면 금이나 좀 많이 쳐 주지

.      

그렇게 좀더 받은 돈을 두 손에 꼭 들고 엄마에게 전달했다. 어린 내가 세상 물정을 알아서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생각이 있을 리야 없었지만, 그래도  엄마를 위해선 그렇게 상인에게 세게 협상을 했다. 그런데 내가 십 리까지 뛰어가서 약을 사온 기억이 없는데, 소문이란 그렇게 과장되어 나가는 모양이다. 효자란 말은 처음 들었지만, 근동 사람들이 나를 엄마에게 잘 하는 효자라 하니 기분이 좋았다.   

   

”정인아. 니 지금 보이 장사 잘 하네. 엄마보다 영 낫네. 니 지금 법대 가서 공부 안 하마 장사해도 굼찌는 않겠다. 그래도 절대로 장사나 농사는 안 된데이. 엄마 소원은 니가 법대 가서 고시 공부하여 크게 성공해서 돌아오는 기다. 난 그것만 믿고 있데이.“     

“엄마 소워이라카이 꼭 그랄 끼다. 장터 돌아보고 인자 집에 가자. 무시도 다 부라가네.”    

 

경운기만 놓아두고 어딜 가는 것이 불안하여 난 경운기를 지키고 엄마는 그 새 살 물건을 찾느라고 시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엄마가 자신의 옷을 사는 것을 생전 처음 보았던 날이었다. 언젠가 내가 진짜 비싼 옷을 사드려야지. 우리 동네에서 아지매들이 시장에 왔다가 엄마를 발견하고 경운기에 모두 올라탔다. 시장에 올 때는 무가 가득 실려 자리가 없었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는 텅텅 비었으니 예닐곱은 앉아 타고 갈 수 있었다.


 우리 마을에서 현풍장까지 7~8km되니 차비도 시간도 만만찮을 터. 내가 엄마가 앉을 자리에 가마니를 두어 장 겹치게 한 뒤 그 위에 짚북더기를 가득 올렸다. 혹시나 경운기가 흔들려 사고라도 날까. 경운기 바닥이 불편해서 엄마가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장터에 널려 있는 짚들을 미리 모아두었다.  

    

“정이이 진짜 효자재. 즈그 엄마 궁디 아플까바 가마이 두 장이나 올리고 거~다가 짚북더기도 항가득 해놨네. 야야 정인아! 엄마 자테 우리도 앉으마 안 되나. 폭신하이 보인다. 다 안 그런나.”     


김천띠기 아지매가 유난히 밝은 목소리로 나에게 제안한다. 두 사람 정도 더 앉을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도 그렇게 하라고 내게 살짝 눈치를 준다. 그런데 누구에게 그 기회를 줄 것인가.      


“아지매 마이 아프마 알아서 엄마하고 자테 항쿤에 앉으이소. 그란데 엄마 밀어내마 그때는 경운기 시았뿝니더. 알았지예.”     

“정이이는 즈그 엄마밲에 엄다. 정인아 이리 티아 주는 것만도 오감타 한다. 괘안타 그냥 한번 말해 봤다. 집에까지 티아주기만 해도 고맙데이.”     


엄마와 아지매들의 살가운 대화가 오가고, 각자 시장에서 뭘 샀는지 워즈런하니 시끌벅적하다. 엄마의 짐이 가장 적다. 생전 처음 본 엄마 새옷 하나, 그리고 우리 3남매 먹을 것. 아버지 옷과 양말 등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도 그렇지 한 불이 뭐꼬 옷 몇 불 좀 사지. 그 와중에 우리 엄마 피부가 유난히 시커멓고 거칠게 보인다. 같이 시골에서 생활하는데도 다른 아지매들에 비해 엄마의 시커먼 피부가 단번에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갑자기 새터띠기 아지매가 큰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아지매, 효자 아들 정이이 운전하는 경운기 타고 가이 좋제. 기분나마 노래 한 곡하소. 아지매 노래 오랜만에 들어보고 싶다카이. 다 박수!!”     


엄마는 대번에 손사래를 크게 치면서 거부하고, 아지매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불러달라고 하고. 그렇게 한참이라 시루다가 결국 엄마가 노래 한 곡하게 되었다. 그냥 부르면 힘들다고 아지매들이 언제 샀는지 막걸리를 한 잔 건네고. 엄마는 담배는 평생 피웠지만 술을 마시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내가 대학 합격해서 대구 둘째 외삼촌 집에 갔을 때와 바로 지금이다. 술 한 잔을 마시고 나서 그렇게 하여 부른 노래


  "방랑시인 김삿갓"  

      

아지매들의 합창 인트로 "따라라 따라라 따라라라라 빠빠밤 빠!" 그리고 이어지는 엄마의 목소리가 하늘로 가늘게 올라간다. 첫 소절 정말 부드럽고 가늘게 올라간다. 이전에도 아지매들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던가 보다. 전주를 아지매들의 합창으로 시작하는 거 보니. 그런데 세상에 우리 엄마가 그리 노래를 잘 할 줄이야.      

     

죽장에 삿갓쓰고 방랑 삼 처언리 흰구름 ~     


엄마의 노래는 참말로 구성졌다. 경운기를 운전하면서 엄마의 빼어난 노래를 들었다. 엄마의 노래는 생전 처음이었다. 도로 왼쪽으로 스쳐가는 낙동강 물 위로 엄마의 노래가 곱게 곱게 실려 가는 것 같았다. 현풍 장을 떠나 논공 북동 쪽을 따라 달리는 길은 엄마의 노래로 세상이 환히 빛났다. 오른쪽은 산이 이어지고, 왼쪽은 굽이굽이 흘러가는 낙동강이다. 금빛 노을을 가득 가득 머금은 낙동강 물비늘 조각 조각마다 엄마의 노래를 구절 구절 품에 안은 채 물길 따라 곱게 곱게 내려가고 있었다. 엄마의 노래엔 지난 날 한 맺힌 삶의 흔적이  깊이 배어 있었다. 노래 구절마다 나의 가슴 속을 흔드는 바람으로 날아들었다. 서녘 하늘 봉화산을 빗겨 넘어가는 석양에 온 세상이 발간 노을로 물들었다. 강마을에도 이쪽 들판에도 발갛게 물든 세상이 눈앞에 가득 보인다. 엄마의 노래를 듣다가 나중에는 아지매들도 합창하고. 2절까지     

“~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 삿갓!!!”     


앵콜송으로 또 한 곡 더 불렀다. 노래 곡목은 ‘엽전 열닷냥’인데 이 노래를 부르면서 엄마는 한 손으로 내 옷을 자꾸만 잡았다. 특히 2절 부분에서 더욱 세게 잡았다.   

   

“금방에 이름 걸고 금의환향 그 날에는 무엇을 낭자에게 사서 가리, 아아! 엽전 열 닷 냥.”      


경운기가 흔들려서 그런가 하고 몇 번이나 뒤를 쳐다보지만 내가 워낙 천천히 달렸기 때문에 그건 아니었다. 아지매들도 엄마랑 합창을 하니, 물어볼 수도 없다. 노래를 부르면서 엄마는 한 손은 경운기 뒷 좌석 부분을 잡고, 또 한 손은 내 옷을 잡았다가 당기곤 한다.    

  

“엄마, 와? 어디 불편나?”     

“어데! 아이다. 그냥 니 옷 잡다 보이 그랬다. 안 잡으께. 경운기 운전하고 신경씨일 낀데. 안 잡으께.”

“엄마! 아이다. 불편하므 내 옷 잡아도 괘안타. 난 또 엄마가 불편해서 그라는갑다 했제. 내 옷 잡아도 괘안타.”     


엄마가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아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성공하기를 빌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공교롭게도 엽전 열 닷냥을 부르면서 내 옷깃을 자꾸만 잡았으니 그 가사와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그 가사는 엄밀하에 사내 대장부가 여성에게 과거 합격하여 금의환향을 약속하는 가사였다. 그런데 과거 알성급제 부분에서 엄마의 소원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엄마가 왜 내 옷을 한 손으로 잡았는지 이유는 모른다. 당시에도 물어볼 생각도 안 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돌아 생각하면 엄마한테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물어나 볼 걸. 엄마는 왜 내 옷자락을 잡았는지.   

       

어쨌든 경운기 안에서 동네 아지매들에게 둘러 싸여 구성진 노래를 두 곡이나 부르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뒤로는 사람들 앞에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아지매들 말로는 동네 사람들 어디 놀러갈 때 몇 번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옛날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죽장에 삿갓쓰고~"가 저절로 나오고 쉰 다섯 너무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리움으로 눈물이 그냥 흐른다. 가끔 TV를 보다가 ‘어머니’란 말이나 대사만 나와도 나도 모르게 울컥해지고 눈물이 슬며시 나온다.  

    

현풍장에 무를 다 팔고 온 날 집에 도착하여 온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는데, 내가 엄마 노래 실력을 말했다.      

“있제, 엄마 노래 진짜 잘 한데이. 난 오늘 엄마가 노래하는 거 처음 들었는데, 아지매들이 앵콜도 하라 카고 엄마도 한 곡 더 불렀는데, 처음 불렀던 거 김삿갓 머 카는 그거 정말 좋더라. 엄마 노래 실력 최고데이.”

     

형과 여동생은 내가 그렇게 말하자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가족 앞에서 엄마가 노래를 부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엄마의 최측근인 나도 처음 들었으니. 엄마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아지매들이 하도 불러가 캐가~ 억지로 불렀지, 뭐 대단한 기라꼬. 정이이가 날 좋게 봐 주이 그렇지 뭐 노래를 잘 한다고 카노. 부꾸럽꾸로.”    

 

아버지도 옆에서 동의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저녁 시간 엄마의 노래 실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리고 저녁밥을 다 먹고 내 방에 들어와 책을 보고 있는데, 엄마가 곁에 앉았다.     


“야야~ 정인아. 아까 니 경운기 짐 실는데 거~ 가마이를 몇 장 깔아가~ 내만 안즈라 칼 때 정말 고맙더라. 그라고 기분이 좋더라. 난 지금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내한테 그리 해주고 챙긴 사람이 없었다. 느그 아부지도 그리는 안 했다. 우리 아들이 이 엄마를 그렇게 귀하게 생각해주나 싶어서. 고맙데이. 그라고 아지매들이 너무 부러워한데이. 정이이 니가 공부도 잘 하고 효도도 잘한다고. 엄마한테 너무 잘해준다꼬. 그라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인사성이 좋다고 칭찬이 참말로 만테이. 진짜 고맙데이.”    

 

“엄마, 그거 그래 해야 하는 기다. 뭐 대단타고 칭찬받을 일이 아이라 카이끼네. 엄마가 쪼금이라도 편하게 앉아 와야 된다 싶어서 그랬지 뭐. 내가 공부 잘 하는 거 아이다. 여~ 촌에서 좀 잘하는 거로 보이지만 대구만 가도 진짜 공부 잘하는 아~들이 진짜 쌧다. 그나 저나 엄마가 기분 좋았다 카이 됐다. 그래도 많이 불편했을 낀데 그쟈. 그라고 엄마 노래 정말 잘 하더라. 난 태어나고 처음 들었다. 엄마 진짜 잘 하데.”     


내가 진심으로 해주는 칭찬에 엄마가 아기 같은 순수한 미소를 커다랗게 지었다. 아버지나 형이 해주는 칭찬에는 손을 내저으며 못 들은 것처럼 했지만. 엄마도 아지매들도 벌써 제 세상 사람이 되어 아득한 그 옛날 추억만 낙동강변 저녁노을에 머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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