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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pr 18. 2023

이렇게라도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습니다.

군복무 후 부모님도 안 계시고 막막했을 때 서울에서 돌봐준 6촌 형수님깨

작년 겨울 부산에서 경기도 안양에 집안 친척 조문을 갔습니다. 코로나 상황이라 장례식장이 휑하니 쓸쓸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모인 자리라 얼굴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상주 가족을 위로하고 음식 앞에 앉았습니다. 모두들 오랜 기간 만나지 않아 반가운 마음에 상가라는 것도 잊고 손을 잡기도 하고 주먹 인사도 건네면서 안부를 물었습니다. 20대 때 만나고 40년이 다 되었으니 참으로 오랜 세월입니다. 먼 친척 형님은 정말 오래 전에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 소식을 묻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심하게 흘러간 세월을 탓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은혜에 꼭 보답해야 할 친척 6촌 형님도 오셨습니다. 


군 복학하고 대학 4학년 여름 방학 때 서울에서 두 달간 공부할 때 다른 데 가지 말고 당신의 집에서 생활하라고 강력하게 권하셨지요. 우이동 그 좁은 집에서 조카들과 섞여 잠을 자면서 공부를 하던 시절입니다. 형님 형수님은 새벽 4시에 평화시장에 나가셔서 옷 장사를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제가 너무 뻔뻔했습니다. 그 뒤로 한번 찾아뵙는다고 몇 번이나 말만 해놓고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안 계시고, 가까운 것도 아닌 먼 친척 형님 댁에 함께 살았던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면 참으로 고맙고, 정말 부끄럽기만 합니다.



2남 2녀 조카들도 참으로 성격이 순했기에 저랑 단 한번도 말다툼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형님 얼굴을 보자마자 장례식장 1층 ATM기로 가서 돈을 좀 많이 뽑았습니다. 이렇게라도 신세를 갚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형님께 그랬지요.


“요거 얼마 안 됩니다. 40년 만에 만나 뵙고 보니 형님 정말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부끄럽기만 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대신 이 돈 형님 말고 형수님께 꼭 전해 주십시오. 아셨지요? 형수님께 정말 죄송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형님도 참말로 고맙습니다.”


받니 안 받니 하시다가 기쁜 표정으로 받아 주셨지요. 그리고 형님을 꼭 안았습니다. 젊은 날 건장하셨는데, 지금은 많이 야위어서 제 두 팔에 쏙 들어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사히 교직에 들어와 긴 긴 세월 이렇게 편하고 행복한 세월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두 분 덕택입니다. 물론 두 분 외에도 제 인생에 도움을 주신 분은 많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도 안 계신 암담한 현실에서 기꺼이 저를 보살펴 주신 형님 형수님의 은혜를 이제라도 갚은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뭐 이리 돈을 많이 보냈소? 내가 한 것이 뭐가 있다고 한참 산다고 바쁠낀데, 고맙긴 고맙지만. 나도 이제 나이 90이 다 되가니 몸도 안 좋긴 하지만 이리 큰 돈을 보내 주이 참말로 고맙소. 그나저나 조카도 더 건강하고 식구들도 잘 챙기시오. 고맙소.”


저를 시동생이라 했다가 조카라 했다가 말이 왔다 갔다 하면서 고맙다만 하셨습니다. 형수님! 정말 그 어려운 시절 저를 돌봐주신 것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형님네 조카딸이 저와 동갑인데 항상 작은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작은 아버지 감사해요. 주말에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는데 부산 작은아버지께서 돈을 많이 보내주셨다고 들었어요. 정말 감사해요. 작은 아버지보다 훨씬 우리집 신세를 많이 진 친 삼촌도 이날까지 그렇게 고맙다는 인사 한번 없었는데, 부산 작은 아버지는 40년 동안 잊지 않고 있다가 이렇게 큰돈을 보내 주셔서 금액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작은 아버지의 그 마음을 진심으로 존경해요. 우리가 오히려 감사해요."


"조카, 그렇지 않아. 내가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 진로도 불투명하고 부모님도 안 계셔서 그렇게 막막한 시절 조카네 집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은 진짜 아닌 건데, 그것이 두고 두고 미안했지. 어떻게든 보답을 하고 싶었는데, 요렇게까지밖에 못 하네. 내가 오히려 미안하고 감사하네. 서울 가면 다시 두 분을 찾아 뵙고 싶어. 조카도 잘 살아라."


그렇게 통화가 좀더 길었지만, 감사함과 미안함이 교차되어 마구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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