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엽 Apr 20. 2023

역린(逆鱗)

상대방의 치명적인 약점은 절대로 언급하지 마라

   

예전에 ‘역린’이란 영화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역린은 한비자의 세난(說難)편에 나오는 말인데, 그 내용에      

“용은 부드럽게 길들이면 탈 수 있다. 그런데 용의 턱 밑에 한 자 정도로 거꾸로 난 비늘이 있는데, 바로 이 역린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 그리고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다. 그러므로 유세하려는 자는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

夫龍之爲虫也, 柔可狎而騎也. 然其喉下有逆鱗徑尺, 若人有嬰②之者, 則必殺人. 人主亦有逆鱗. 說者能無嬰, 人主之逆鱗則幾矣.    


영화 ‘역린’은 조선 22대 왕 정조를 둘러싼 암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모티브도 정조 즉위 1년에 벌어진 정유역변(丁酉逆變)에서 가져왔다. 실제로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정조 즉위 첫해부터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니,  당시 기득권 세력이 얼마나 집요하게 정조를 제거하려 하였던가를 알 수 있다.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 세자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들 정조를 없애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던 집권 세력과 정조를 지키려는 세력 간의 치열한 싸움을 보여준다.     

      

호학군주이자 개혁군주였던 정조가 즉위 초부터 애초부터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노론 벽파와는 상극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서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세손 시절 부친 사도 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직접 목격한 정조가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르지만, 무수히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지금이야 우리 역사에서 조선조 영·정조 시절을 르네상스에 비유하면서 극찬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조는 늘 살해 위기에 늘 직면하고 있었다. 

권력이 교체되면 새로운 집권 세력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말이 개혁(改革)이다. 개혁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 고친다’는 뜻으로 한 마디로 완전하게 바꾸어 버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새로 권력을 잡은 세력은 민중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개혁의 필요성을 쉽게 내뱉는다.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제도 개혁을 하려면 무엇보다 인적 청산 문제가 대두된다. 인적 청산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제도의 개혁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제도 개혁을 시도하지만, 그 과정에서 반개혁 세력이 그냥 주저않지 않고 강력한 반발을 하기 마련이다. 개혁에 대한 반개혁은 반발의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선 반개혁 세력이 개혁 주도 세력을 아예 전복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개혁 주도세력이나 그에 대해 반발하는 반개혁 세력도 아예 목숨을 걸고 대항한다. 호학군주 정조 자신도 개혁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 반대 세력이 보낸 자객이 심심찮게 구중궁궐 깊숙히 들어와 목숨을 겨누기도 했다.     

      

정조가 지난 날 억울하게 죽어 간 생부(生父)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실시한 일련의 정책도 결국 강력한 노론 세력과의 험난한 정치적 투쟁을 예고했다. 그래서 혹자들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취임 일성이 정치적 역량의 부족을 보여준다고 혹평을 하기도 한다. ‘사도세자의 아들’이란 것도 알게 모르게 조정의 반대 세력에게 스며들게 해야 하는데, 공공연히 떠벌림으로써 반대 세력의 저항만 더 크게 만들어 버린다. 게다가 정조가 왕위에 오르긴 하지만 그 자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굳건하지 않았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영·정 시대의 주역 중의 한 사람인 정조에게도 개혁 시도는 참으로 위험하였다. 절대군주의 전제 하에서 군주가 주도하는 개혁도 그렇게 위험하고 어려웠다. 그만큼 기성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다는 것이 지난한 일이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대통령 선거와 함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각종 개혁을 시도하는데, 그렇게 사회를 변하게 바꾸는 일도 그리 만만하지 않다. 그리고 개혁하면 흔히 혁명과 많이 비교한다. 사전적 의미로 개혁은 정치 ·사회상의 구(舊)체제를 합법적 ·점진적 절차를 밟아 고쳐 나가는 과정이고, 혁명은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국체(國體) 또는 정체(政體)를 변혁하는 일이다. 좀더 명료하게 비교하자면 개혁이 일부분의 변화, 점진적인 변화, 완만한 변화이고 그에 비해 혁명은 보다 전면적이고 급진적인 변화, 과격한 변화를 의미한다. 먼저 혁명에 대해 좀더 살펴본다. 

         

혁명은 급격한 변화를 초래한다. 새로운 권력을 손에 쥔 혁명을 통하여 기존의 오랜 시간 케케묵은 현실을 극적으로 변화시켜 근본적인 발전을 도모한다. ‘혁명’이라는 용어는 고대 중국의 유가 경전에서 유래되었다. 애초에는 ‘천명을 바꾼다. 革命本義指變革天命’는 의미의 ‘혁명’이 점차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주역(周易)』 「혁괘(革卦)·단전(彖傳)」에           


‘하·은·주 왕조의 교체를 탕왕과 무왕의 혁명으로 표현하고, 하늘과 사람에게 순응한 결과로 봄으로써 그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天地革而四時成,湯武革命,順乎天而應乎人.         

  

이러한 정치 권력의 교체를 정당화한 혁명의 의미를 더욱 강조한 사람은 바로 맹자였다. 군주의 도덕 정치인 왕도정치를 강하게 주장했던 맹자는 인의를 저버린 걸왕과 주왕을 죽인 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폭정을 자행하는 군주를 시해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무도한 왕을 바꾸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강조하면서 혁명의 정당성을 설파하였다. 혁명이란 말은 원래 군주제 하에서 조정의 변혁에서 유래되었지만, 훗날 사회적인 중대 혁신의 의미로 확대되어 사용되었다. 


그런데 혁명은 사람들에게 두 가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는 흔히 알고 있듯이, 피비린내 나는 투쟁 현장의 비참함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혁명이 초래하는 역사의 역동성이다. 혁명은 국가 체제나 정치·경제·사회 제도를 근본적으로 확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이전의 관습이나 관념, 방식 따위를 철저히 없애고 새롭게 다시 만드는 것도 혁명이다. 그런데 기득권을 가진 낡은 지배 세력은 무력을 동원하면서까지 구체제를 완강하게 저항한다. 그럴 때 혁명 세력과 낡은 세력 간에 충돌이 빚어지고, 바로 그 과정에서 엄청난 피비린내가 난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개혁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인류의 역사에서 개혁이 진정으로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구세력의 기득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엄청난 반발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은 자신의 목숨을 각오로 하지 않으면 쉽사리 성공할 수가 없다. 자신의 이상과 꿈을 펼친다는 각오 아래 모든 사심을 버리고 오로지 국가의 중흥을 위한다는 일념 하에 실시해야 한다. 하기야 개혁이나 반개혁 세력 모두 목숨을 걸고 투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목숨을 건다고 개혁해도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지도 않다.           


앞에서 언급한 영화 역린(逆鱗)에서도 실제로 역린을 가진 쪽은 엄밀히 말해서 임금이 아니라 당시 강력한 집권 세력이던 노론계열 양반 관료들이다. 신하들이 임금의 심기를 거스른다는 것이 원래의 역린이 갖고 있는 의미인데, 이 영화에서는 임금이 오히려 신하들의 역린을 거스르고 있다. 실제로 당시 조선의 집권 사대부들은 극심한 당쟁을 벌여 서인과 남인으로 갈려 권력 투쟁을 벌였다. 권력을 쥔 서인은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고, 노론은 다시 시파와 벽파로 갈려 끊임없이 권력을 탐한다.  

         

인간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당파 간에 논쟁을 통해 상호 견제와 건전한 경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조선의 당쟁은 애초부터 그런 건강한 토론이나 선의의 경쟁이 아니었다. 일부는 그런 경쟁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쟁의 대부분은 건강한 학문적 토론이나 사회 발전의 방안 같은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함이 아니라, 당파의 권력 추구를 위한 집요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혹자는 치열한 당쟁이 있었기에 조선 왕조가 5백 년이 갈 수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 남겨진 조선의 당쟁 그 속을 보면 조선 왕조가 5백 년 간 유지된 것이 신기하고 어찌 보면 기적이 아니었던가 싶다.   

        

치열한 당쟁 과정에서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고,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생존투쟁적 권력 쟁탈에 몰두하였을 뿐이다. 이 같은 파벌의 뿌리는 서원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붕당정치에서 나왔다. 그 뿌리는 좀더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가면 학맥과 인맥 그리고 지맥에서 비롯된다. 요즘 흔히 말하는 학연과 혈연 그리고 지연과 흡사하다.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이 사회의 권력 최상위층을 형성하는 세력들은 혼인을 통해 그렇게 인맥을 형성하고 다시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세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쓴다. 우리 그리고 그들이 이 사회의 중요 의제를 선점 내지 독점하면서 힘없는 서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온갖 특혜와 특권을 다 누리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지고! 우리 같이 평범한 서민들이 구중궁궐 같은 깊은 곳에서  이 나라를 주무르는 그 세력들의 내밀함을 어찌 알 것인가.

작가의 이전글 소설 "엄마의 노래" 중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