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들어와서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셋방살이하는 주민이고 주소도 이전하여 집 근처를 오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예전 고향마을이라곤 하지만 당시 살던 사람들보다 새로 들어오거나 세대 교체로 젊은이들이 새 보금자리를 만든 영향으로 아무래도 낯선 이가 많다. 그래도 1년 정도 오가면서 인사를 나누다 보니 어느 정도 정이 들었다. 밤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이불로 두 다리를 덮은 채 방 벽에 기댄 체 잠이들었다 눈을 뜬 순간 그때 마침 집 밖 골목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 방쪽을 살펴보는지 잠깐 걸음을 멈추기고 한다. 아무래도 오랜 기간 도회지에서 살다가 이제 시골 마을로 낙향하여 은거하겠다는 나에 대해 무관심한 척하면서도 궁금한가 보다.
주인집 할머니가 워낙 살뜰히 챙겨주시기에 삼시 세끼 걱정은 없다. 내가 지불하는 밥값보다 훨씬 풍부하게 온갖 야채가 들어간 식단이고 도시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우거지국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농촌에서 농삿일에 대한 부담이 없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면 그 생활은 낙원이 따로 없다. 새벽에 일어나 들길을 걷고, 돌아와 씻고 아침 밥을 맛있게 먹은 후 커피를 마시며 활짝 열린 방문 너머 저 멀리 펼쳐진 들길을 바라보는 것도 꽤나 낭만적이다. 이곳에 들어올 적엔 책을 조금만 챙겼지만 1년 가까이 되다 보니 집필에 필요한 서적들이 있어서 인터넷으로 구입하여 읽은 것을 책장에 꽂으니 좀더 사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내가 산책을 가면서 방문을 열어놓으면 주인집 할머니가 부탁하지도 않은 방 청소에 책상 정리까지 해놓으신다. 부담스러워서 하지 마시라고 몇 번 말씀 드렸지만, 내 말을 듣지 않으신다. 당신 마음이 편하시면 그렇게 하시는 거지 뭐. 80이 가까이 되어 가는 집안 형수님이시고 어린 시절부터 나를 유난히 예뻐하셔서 아직도 꼬마 도련님으로 여기는 듯하다.
"디럼, 디럼은 얼라 때부터 그렇게나 책을 좋아하더이 지금 그 나이가 되어도 책을 읽고 싶은교? 하기사 아지매 살아 있을 때 디럼이 작은 방 책상에 호롱불 아래 혼자 앉아 밤늦게까지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르지요. 우리들한테 디럼 자랑 마이 했어요. 나중에 우리 둘째 아~ 고시 합격해서 군수되가~ 돌아올끼라꼬 말했는 거 디럼은 아는교? 그래도 고시는 몬 해도 교편잡아 선생님이 됐으이까네 아지매가 디기 좋아했을 낀데 말이지요. 인자 나이도 있으니 디럼도 좀 쉰다 카고 책도 고만 보이소. 내사 마 디럼이 책보는 기 옛날 아지매 마음맨치로 좋긴 하지만서도."
며칠 전에는 우리 집에 동리 노인정 분들이 몇 분 찾아오셨다. 그때 마침 집에 게셨던 주인 할머니가 간식거리를 내놓아 마루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대부분 안면이 있는 분들이지만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 아마도 내가 도회지에 나가 있을 때 이사를 오거나 우리 마을 주민들의 친척으로 늘그막에 이곳에 정을 붙이고 살려고 오신 분들일 테지. 상당히 큰 대봉감을 며칠 간 익혀 놓았던 것을 꺼내 놓고 곱게 깎아 드리니 다들 정말 잘 먹어 보기 좋았다 그리고. 예전에 도시에 잠깐 볼일이 있어 갔을 때 샀던 꽃 그림 양말도 드리니 소녀처럼 정말 좋아한다. 무슨 용무로 왔는지 묻지도 않고 한참이나 이야기를 떠들썩하니 하다가 갑자기 한 분께서 묻는다.
"일본 여행 안내를 많이 하셨다고 카던데 맞지요? 우리도 일본 온천 한 번 구경가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 없나요. 그기 참 궁금타 이깁니다. 갈 수 있겠는교?"
갑자기 웬 일본 산골 여행이라니. 내가 이곳에 들어와 사람들과 가끔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도시 생활에 대해선 언급한 적이 없는데 일본 여행에 관한 소식을 어떻게 알았을까. 실제로 내가 지금까지 일본 방문한 것이 80회가 된다. 주로 양국 시민 교류 관련 단체 회원들을 모시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저렴하고 많이 걷는 여행을 많이 추진하긴 했다. 여행사가 아니니 오히려 부담이 적었다. 선박 승선권과 전세버스 견적, 숙박 비용을 문자 캡쳐 그대로 정보 제공하니 함께 가는 사람들이 굳게 믿어준 덕분에 보람이 많았다. 내가 수익을 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 할머니께서 어떻게 내가 그렇게 한 사실을 알았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알고 보니 이 할머니께서 예전에 도시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갔던 모양이다. 그 친구들 중 한 명이 우리 회원과 또 친구 관계라서 이런 정보를 듣고 이번에 이렇게 물어온 것이다. 글쎄 이곳에 들어와서 또 그렇게 일본 시골 여행을 추진한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내 책임이고 나의 일이기 때문에 오롯이 내 부담이 된다. 그래서 조금은 편하게 살겠다는 마음으로 여기 왔는데, 다시 일을 만들게 생겼다. 이곳 분들이 먼 거리 여행 그것도 일본 산골 온천 여행을 가고 싶어한다니 고민이 된다. 이분들 어쩌면 이 생에 해외여행을 갈 기회가 있긴 할까. 그렇다면 한 번쯤 당신들의 소원을 들어줘 볼까. 천천히 걸으면서 여유롭게 일정을 짠다면 충분히 따라올 것이다. 몇 년 전에 동행한 노년세대 분들 몇 분은 80대 중반이셨는데, 오이타 나카츠 시 야바케 산악지대 단풍길을 잘도 걸으셨지. 태어나서 이런 행복감을 처음 느낀다면서 정말 좋아하셨다. 손자 선물 사주려고 기대했는데 일정상 쇼핑 시간을 적게 주게 되었을 때 버스 안에서 큰 난리를 피우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