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인문학 특강 <사기열전>을 하고 있는데, 도시에 있는 아내로부터 카톡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사마천의 史記를 언급하려면 가장 먼저 사마천이 당한 궁형을 설명해야 합니다. 왜 그런 끔찍하고 극도로 수치스런 형을 당해야 했는지. 궁형 전후로 사마천의 인식이 어떻게 변했는가, 궁형을 명한 한무제의 대외 정벌 배경 등이 다양하게 나와야 하지요. 먼저 궁형이 어떤 형벌인지를 말하면,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 얼굴 표정이 순간 일그러집니다. 남성의 성기를 제거하는 형벌이니 고통도 고통이려니와 수치심에 치를 떨 수밖에 없지요. 차라리 자진하든지 참형을 당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면서 사람들이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을 내놓기도 합니다. 세상사 이치에 무슨 절대적인 선악이 있던가요. 이건 무조건 옳다 저건 무조건 나쁘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더욱이 노년세대들의 삶에선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탈피하여 사람들을 넉넉하게 받아들이고 좀더 여유롭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이릉의 화'라는 유명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무제 당시 젊은 장수 이릉이 5천 군사를 이끌고 북방 유목민족인 흉노를 정벌하러 적지 깊숙이 들어갔다가 초반 연전연승한 기세를 이어가기 못하고 수만 흉노 군사에게 포위되어 어쩔 수 없이 항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착을 위주로 하는 한제국 정벌 군대가 유목민 중심의 흉노를 치는 것은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수적 열세라는 현실적 상황도 컸습니다. 그래도 이릉이 초반에 연전연승할 적에는 조정 대신들이 모여 축제 분위기였는데, 막상 불가피하게 항복을 하자 조정 대신들과 한무제가 안면을 싹 바꾸어버립니다. 이릉을 비난하는 말이 난무하게 되었지요. 이때 사마천이 사관으로 간언한 것이 한무제를 자극하게 됩니다.
특히 저 사진 자료 붉은 글씨 부분 후방 공급 부분을 언급한 것이 치명적이었지요. 선봉부대 이릉을 지휘하는 총사령관 이광리의 잘못을 은연히 지적한 것으로 한무제가 인식한 것입니다. 이광리는 한무제가 총애하는 이부인의 오빠였습니다. 당장 하옥시켜 참형에 처하라는 한무제의 서슬 퍼런 명령에 사마천이 감옥에 갇힙니다. 당시 한나라 법에 사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에 50만전을 내는 것과 궁형을 자쳥하는 것이 있었는데, 사마천 월급이 600전에 불과하여 50만 전은 불가능한 금액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대소신료들이 힘을 합쳐 사마천을 구할 생각이 있었다면 그 금액을 충당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테지요. 하지만 한무제의 심기를 거슬러가면서 사마천을 구제할 신하들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진하는 방법도 있었지요. 그런데 사마천의 부친의 유언이 있었습니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역사서를 완성하라는 유언 말입니다. 부친 사마담도 사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치스런 궁형을 자청한 것이지요.
인문학 강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대부분 노년 세대들입니다. 어쩌다가 비교적 젊은 층이 보이긴 했지요. 여긴 시골 마을입니다. 비교적 젊은 층이 진짜 젊은 사람들이란 뜻이 아닙니다. 이곳은 60대도 청년 층에 들어갑니다. ㅎㅎ.
궁형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역사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발표합니다. 역사적 상상력은 정답이 없습니다. 다른 이들의 발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것은 자유로우나 남의 의견을 비난하거나 비꼬는 식의 발언은 절대 못하게 했습니다. 다른 생각을 보이더라도 예의가 중요한 법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남의 일은 얼마나 쉽게 보이던가요. 눈에 뻔하게 보이지요.
젊은 어느 날 연수원에 강의하러 가는데, 근처 테니스장을 잠깐 본 적이 있었습니다. 2:2복식 경기였지요. 그런데 제가 밖에서 경기 장면을 보니까 넷 모두 수준이 별로더군요. 서브가 뭐 저래, 스트로크도 제대로 못 하고 발리할 때 몸 자세가 왜 저래. 플레이 수준이 영 아니네. 제 마음 속으로 온갖 부정적인 말들을 했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몇 개월 뒤에 제가 근무하는 학교 테니스 회원들 월례회가 있었을 때 막상 제가 경기를 해 보니 서브도 힘이 없고 폴트가 연달아 나고, 발리 스트로크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동료들이 어디 가서 테니스 코치한테 연수를 받고 오라고 놀리기까지 하더군요. 그래도 오랜 세월 함께 한 형제 같은 동료들이라 웃어 넘겼습니다. 그렇게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몇 개월 전 연수원 근처 경기 장면을 보고 우습게 여겼던 제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리 저리 이야기를 해보니 제가 우습게 생각하 사람들의 경기 수준이 상당했습니다. 대회 우승 경험도 많았더군요. 제 동료 중 한 사람이 그 테니스장 동호회원이었거든요. 아이고 그때 낭패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남의 일을 우습게 보거나 함부로 평가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험한 때였습니다. 그후로 남의 발언이나 행위 등에 대해서 절대로 함부로 말하지 않겠노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마음 속으로도 함부로 평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지요. 제 강의에 들어오는 분들께도 미리 다짐을 받아 놓습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그 발언 자체를 존중하라고 말이지요. 남이 하는 말은 매우 쉽게 보일지 몰라도 그 사람이 그 말을 하기 위해 뇌속에서 얼마나 복잡한 사고를 하고 입에서 발화되어 나오기까지의 시스템이 있는가를 언급하면서 말이지요. 그렇게 다짐을 받고 나서 발표를 자유롭게 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역시 남의 발언을 비난하지 못하게 원천봉쇄하니 모두 자유롭게 말씀들을 하시네요. 물론 저처럼 특정한 방식의 발언을 막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판과 비난의 경계선이 애매한 상태에서 비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노년세대들에게는 조그만 비난이라도 큰 상처가 되기에 그렇게 사전 정지 작업을 거치지요.
강의를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한 뒤 들길을 혼자 걸어옵니다. 카톡을 보니 시골 처가에서 처남이 쌀을 4포대를 보낸 모양입니다. 쌀뿐만 아니라 각종 곡식류도 함께 보냈네요. 처가 형제들 1남 6녀 중 막내인 처남이 시골에서 장인에 이어 농사를 지으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논밭이 매우 많은 편이라 농사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은데 처남이 잘 처리하고 있지요. 그리고 해마다 가을철 수확이 끝나면 이렇게 우리 가족들이 먹을 쌀을 정성껏 싸서 보내줍니다. 처가 자매들 중에 제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챙기는 처남이 고맙기만 합니다. 제가 정년 퇴직하던 날 오랜 세월 수고하셨노라고 하면서 목돈을 보내 양복 정장을 몇 벌 사입게도 해주었고, 우리집 아이들이 군에 입대할 때 꼭 처가를 들르게 하여 차비하라고 큰 금액의 돈을 주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저에게 이렇게 쌀을 해마다 보내준 사람은 처남밖에 없습니다.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처남이 말하더군요. 장인 장모님 살아 게실 때 제가 정말 잘 해드린 것이 너무나 고맙다고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잘 해드린 게 없는데도 그렇게 말해주니 제가 오히려 고맙지요.
"친정에서 우리 동생이 쌀을 보내 왔네요. 고맙구로."
아내의 카톡 문자를 보고 처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크고 환한 목소리로 처남이 전화를 받습니다. 제가 그랬지요.
"처남 잘 있제. 해마다 이렇게 고생하여 농사지은 쌀을 보내줘서 정말 고맙다. 미안키도 하고. 처남댁도 잘 있제, 조카들도."
그러자 처남이 말합니다.
"매형, 쌀 그거 얼마 안 되는 건데 쫌 보냈습니다. 누나 챙겨주신다고 정말 수고 많습니다. 또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 보내드릴게요."
저렇게 보내면 1년을 먹어도 남더군요. 더 추가할 생각도 없지만 말입니다, 처남의 근황을 들었습니다. 내년 농사를 위해 무얼 준비하는지. 겨울엔 어떻게 보내는지, 가족들 어떻게 지내는지 등등 평소에 말이 별로 없는 처남도 이때는 말이 길어집니다. 저는 그저 처남이 잘 한다. 처남댁이 고생 많네. 그래 그건 정말 잘 한 것이네. 등등의 말만 반복합니다. 그렇게 평소와 달리 비교적 긴 시간 통화를 끝내면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은 전합니다.
"처남 이렇게 쌀 보내줘서 진짜 고맙다. 잘 먹을 게."
처남도
"매형이 지금 시골에 가 계신데 좀 심심하면 여기로 오세요. 우리집도 전원주택처럼 잘 지어놓았으니까요. 누나 몸 상태가 좋아지먄 같이 와서 며칠 간 쉬다 가세요. 누나 건강이 많이 좋아졌으니 참말 다행입니다."
그것고 참 고마운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해마다 처남이 보내주는 쌀이 고맙다는 말만 했지 인제 더 이상 보내지 말란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처남 부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