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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pr 20. 2023

고죽 최경창과 기생 홍랑의 지극한 사랑 이야기

해주 최씨 집안 산소에 묻힌 홍랑의 지고지순한 사랑

조선시대의 명기(名妓)'로 너무나 유명한 황진이(黃眞伊)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홍랑(洪娘)은 황진이와 또 다른 매력의 소유자다. 아니 최경창에 대한 홍랑의 슬픈 사랑에 인간의 새로운 면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황진이나 홍랑 모두 조선시대의 최고의 기생들이었으며, 둘 다 예기(藝妓)였다. 예기란 노래 춤 그림 글씨 시문 따위의 예능을 익혀 손님을 접대하는 기생이자 재색을 고루 갖춘 여류 시인이다. 


양반들의 풍류를 뒷받침한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황진이는 명문대가 황진사댁 첩의 딸로 동네 머슴이 황진이를 짝사랑하다가 그만 상사병으로 죽었을 때, 그의 상여가 황진이 집 앞을 지나가다 멈춰서자 어느 점쟁이의 부탁으로 황진이의 속곳을 상여에 덮어 주어 그 상여가 움직이게 하였다는 것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홍랑은 황진이와 전혀 출신이 다르다. 홍랑은 비록 관기였지만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명성이 높았던 풍류 문장가 고죽 최경창에게만 일생 동안 그의 모든 것을 바친 여인이었다. 충신불사이군, 열녀불경이부(忠臣 不事二君 烈女 不更二夫)라 했으니, 풀이하자면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가 된다. 여기서 홍랑이 평생 한 남자만 사랑하였으니 ‘열녀불경이부'가 될 수 있겠다. '열녀'는 물론 조강지처 적실인 여인에게만 해당되어 관기인 홍랑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홍랑은 고죽 최경창(崔慶昌1539~1583)이 문과에 급제 후, 함경북도 경성 지방의 북도평사(北道評事)로 부임 후 그를 알게 되어 사랑이 싹터 그녀는 일생을 자기의 모든 것을 고죽에게 바친 정말 '순애보'의 주인공이다. 홍랑이 진정으로 사랑한 최경창의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자는 가운(嘉運)이다. 박순(朴淳)의 문인이며 당시(唐詩)에 뛰어나 백광훈(白光勳), 이달(李達)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렸는데, 시가 청절(淸切)하고 담백하다는 평을 얻었다. 또한 문장에도 뛰어나 이이(李珥), 송익필(宋翼弼) 등과 함께 팔문장(八文章)으로 일컬어졌으며 서화에도 뛰어났다.      


변방에 위치한 경성은 옛부터 국방의 요지이었기에 최경창은 처자가 있음에도불구하고, 홀로 부임하여 그곳에서 홍랑을 만나게 된다. 홀로 현지에 부임하여 생활하던 최경창과 홍랑은 운명적 사랑에 불이 붙었다. 두 사람의 지극한 사랑은 날이 갈수록 더욱 뜨거워져 한 몸처럼 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결국 홍랑은 최경창과 군사작전 임무를 수행하는 막중(幕中)에서 함께 기거하며 부부처럼 정을 쌓아 가게 된다. 그러나 이듬해 봄, 두 사람에게 이별이 찾아온다. 


임기가 끝난 최경창은 한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당시 홍랑은 관아에 속해 있던 관기였기에 다른 지역으로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형편이었다. 뜻밖의 이별 앞에 선 홍랑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것밖에 없었다. 최경창의 상경은 홍랑에게 있어서 실로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이별을 눈 앞에 둔 그녀의 심정이 어떠하였겠는가! 첫사랑 최경창에게 홍랑은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이별이 너무나도 서럽고 아쉬웠다.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님과 같이 있고 싶어 한양으로 부임하는 최경창을 멀리 멀리까지 배웅해 주었다 경성에서 멀리 떨어진 쌍성(雙城)까지 태산준령을 넘고 넘어서 며칠 길을 마다 않고 따라갔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두 사람의 발길은 이윽고 함관령 고개에 이르렀고, 더 이상 경계를 넘을 수 없었던 홍랑은 사무치는 사모의 정을 뒤로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녀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길 옆에 피어있는 산버들이었다. 울음을 삼키면서 버들가지에 다가간 홍랑은 그 가지를 꺾어 고죽에게 주며 슬픈 시조 한 수를 이렇게 읊었다.     



묏버들 갈혀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데

자시는 창밧괴 심거두고 보쇼셔

밤비예 새닙곳 나거든 나린가도 녀기쇼셔     

(묏버들가지 가려 꺾어 보냅니다 님의 손에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옵소서

밤비에 새 잎이 돋아나면 날인가도 여기소서

    

훗날 최경창이 홍랑을 그리워하여 위의 시를 한시로 이렇게 번역했다.          

擇折楊柳寄千里

人爲試向庭前種

須知一夜生新葉   

  

이별의 아픔이란 이 세상 어느 누구나 다 마찬가지. 홍랑과의 헤어져야 하는 최경창의 맘은 더욱 아팠을 것이다. 홍랑을 두고 고죽은 한양으로 무거운 발걸 음을 돌렸다. 그런데 한양으로 돌아온 최경창은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된다. 최경창이 병석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접한 홍랑은 경성에서 7일 밤낮을 걸어 한양에 도착하여 최경창을 만난다. 두 사람의 이런 이야기가 조정에 들어가 최경창은 파직을 당한다. 마침 그때가 명종의 왕비 인순왕후의 국상 중이었는데..국상 중에 기생을 불러들였다는 구실로 홍랑은 양계의 금(兩界의 禁)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최경창이 징계를 받고, 홍랑 또한 홍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양게의 금이란 함경도, 평안도 사람들의 도성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최경창은 그의 곁을 떠나는 홍랑에게 유란(幽蘭)을 선물하며 아래와 같은 시로서 그녀를 위로하였다.     

 

아쉬워 보고 또 보며 그윽한 난초 드리오니 이제 가면 머나먼 곳

어느 날에 다시 오리 함관령의 옛날 노래 다시 불러 무엇하리 

지금도 궂은 비 내려 첩첩 산길 어둡겠지 

    

이렇게 최경창과 홍랑은 두번 째 만남과 이별 후 파직을 당한 최경창은 변방으로 한직을 떠돌다 1583년 45세의 나이로 객사하고 만다. 멀리 함경도 땅에서 사랑하는 님가 다시 만날 날만 학수고대하던 홍랑에게 날아든 고죽의 사망 소식은 그녀로 하여금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을 안겨 주었다. 다시는 사랑하는 님을 만나지 못하는 비애감으로 그녀는 목을 놓아 울고 또 울었다. 그러나 홍랑은 마음을 추스려야만 했다. 객사한 고죽의 묘를 돌보는 사람이 마땅히 없을 것이란 사실에 견딜 수가 없었다. 최경창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파주에 당도한 홍랑은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시묘살이를 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홍랑은 몸을 씻거나 꾸미지 않는 것은 물론이어니와 뭇 남성들의 접근 을 막기 위해 천하일색인 자신의 얼굴을 칼로 난도질을 하여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추녀로 자신을 만들었고, 그에 만족하지 않고 홍랑은 커다란 숯덩이를 통째로 삼켜 벙어리가 되어 스스로 병신이 되었다 한다 

    

그런 그녀가 시묘 살이 하는 것에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그 덕분에 홍랑은 무사히 삼년상을 마칠 수 있었다. 삼년상 후에도 고죽의 무덤을 떠나지 않은 채 그의 영혼 앞에서 살다가 죽으려 했던 홍랑이었지만, 하늘은 그녀에게 그런 작은 행복조차도 허락하지 않았으니 바로 임진왜란이 그것이었다.      


홍랑 한 몸이야 사랑하는 임의 곁에서 그 즉시 죽더라도 여한이 없지만 최경창이 남긴 주옥같은 문장과 글씨들을 보존해야 했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었다. 최경창이 남긴 유품을 챙겨서 품에 품은 홍랑은 다시 함경도의 고향으로 향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도 최경창의 작품은 훼손되지 않은 것은 모두 홍랑의 공이었다. 지극한 사랑과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절개로 홍랑이 지켜냈던 최경창의 유작은 그후 '고죽집(孤竹集)'이라는 문집으로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홍랑이 죽자 해주 최씨 문중은 그녀를 집안의 한 사람으로 받아들여 장사를 지냈다. 그리고 최경창 부부가 합장된 묘소 바로 아래 홍랑의 무덤을 마련해 주었으니 현재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다을리에 있는 해주 최씨의 문중 산에 그녀는 묻혀 있다. 최경창 부부 아래에 홍랑의 묘가 있다. 현대인들의 시각에선 비판할지도 모른다. 본처를 두고 첩과 사랑이라니. 하지만 조선 시대 양반 사대부들에게 축첩은 큰 허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홍랑이 최경창을 위해 온몸을 바친 그 정성이 해주 최씨 집안에 감동을 주었기에 선산에 묻혀 후손들의 제사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현재 산소에 올라가는 길 입구에는 해주 최씨의 집안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홍랑을 자신들의 할머니라고 스스럼 없이 말할 정도로 이 집안에서 홍랑을 생각하는 맘이 각별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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