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면서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 사정이 다양하여 주위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다고 원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 것인 인간사에 매우 중요하다. 흔히 배은망덕이란 말이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은혜를 꼭 기억하고 되갚아 주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사마천 사기(史記)를 읽다 보면 '보은'에 대한 내용이 심심찮게 나온다.이번에는 군주의 말을 잡아 먹고도 죽어 마땅하나 용서를 받은 백성들이 훗날 군주가 전쟁에서 포로가 될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걸고 전장에 뛰어들어 은혜를 갚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옷을 입는 것은 사람이 춥기 때문이고 밥을 먹는 것은 사람이 주리기 때문이다. 주림과 추위는 사람에게 커다란 재해다 이를 구제해주는 것은 큰 의로움이다. 사람이 곤궁에 처한 것은 주림과 추위보다 더 심한 것이므로, 현명한 임금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 곤란에 처한 것을 불쌍히 여기고, 다른 사람이 궁지에 처한 것을 딱하게 여겨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이름이 드러나고 나라 안의 뛰어난 선비를 얻게 된다.
옛날에 진(秦) 목공(穆公)이 수레를 몰다가 수레가 부서졌는데, 수레를 끌던 오른쪽 복마(服馬)가 달아나자 어느 시골 사람이 이를 잡아갔다. 네 마리가 모는 마차의 경우 바깥쪽 말 두 마리를 곁마, 한자로 참마(驂馬) 라 하고 안쪽 두 마리를 복마(服馬)라고 한다. 목공이 몸소 말을 되찾으러 갔다가 시골 사람이 기산(岐山)의 남쪽 기슭에서 다른 사람들과 모여 말을 잡아서 막 먹으려 하는 것을 보았다. 목공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준마의 고기를 먹고서 빨리 술을 마시지 않으니, 나는 말고기가 그대의 몸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되오."라고 했다. 그리하여 빠짐없이 두루 술을 마시게 마시게 하고는 돌아갔다.
그리고 1년 있다가 진(晉) 혜공(惠公) 8년(B.C 643년)에 한원(韓原)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 와중에 진(晉)나라 군대가 이미 목공의 수례를 포위했고, 진량유미(晉梁由靡)는 목공 왼쪽 곁말 즉 참마(驂馬)의 고삐를 이미 낚아챈 상태였다. 진(晉) 혜공(惠公)의 거우(車右)인 노석(路石)이 창을 휘둘러 목공의 갑옷을 치니, 그의 갑옷에서 떨어져나간 미늘이 이미 여섯 조각이나 되었다.
낚시 바늘에 있어 끝 부분에 안쪽으로 난 갈고리 부분을 뜻하는 단어.찰갑인 미늘갑옷에 있어 각 갑옷의 미늘 조각 또한 고정 시키는 갈고리 부분이 있고, 삼국 시대 고분에서 나오는 미늘쇠 또한 작은 갈고리가 잔뜩 붙어 있으며 이것들은 모두 미늘이라고 칭한다. 형태의 유사성으로 할버드 같은 대형 창날의 형태에 착안하여 미늘창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나무위키 출전 미늘 - 나무위키 (namu.wiki)
이때 기산의 남쪽 기슭에서 말고기를 먹었던 시골 사람을 비롯한 그의 족속 3백여 명이 힘껏 목공을 위하여 그의 수례 아래서 민첩하게 싸웠다. 그래서 마침내 진나라 군대를 이기고 오히려 혜공을 사로잡아서 돌아왔다.
이것이 바로 <시경>에서 말하는 바, "군자에게 임금 노릇을 하려면 올바르게 함으로써 덕을 행하고, 천한 사람에게 임금 노릇을 하려면 관대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힘을 다하게 한다."는 것이다.
“君君子则正,以行其德. 君贱人则宽,以尽其力”
임금이 어/지 덕을 행하고 남을 아끼는 데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덕을 행하고 남을 아끼면 백성들의 그들의 임금을 어버이로 여기고, 백성들이 그들의 임금을 어버이로 여기면 백성 모두가 즐거이 그들의 임금을 위하여 죽는다.
출전 여불위 지음, 김근 옮김 <여씨춘주> 208~209쪽, 글항아리, 2018.
위에 등장하는 진(晉)나라 22대 국군 혜공 이오(惠公 夷吾)진 목공(秦穆公) 영임호(嬴任好)는 처남 매부지간이다. 철천지 원수같이 전투를 치른 것 같지만 진목공은 춘추오패 중 한 명으로 역량이 뛰어나고 두터운 신망을 받았던 사람이다. 문제는 진혜공 이오다. 이오는 진헌공의 아들이고 배다른 형제로 진문공 중이가 있다. 부왕인 진 헌공이 애첩인 여희의 미모에 반해 그 사이에서 해제를 낳고 그를 태자로 삼기 위해 태자 신생과 공자 중이, 공자 이오를 도성에서 내보냈다. 신생은 곡옥, 중이는 포(浦), 이오는 굴(屈)로 파견된다. 요충지를 지켜 나라의 안녕을 도모한다는 핑계였지만 결국 애첩의 환심을 하고 애첩과의 사이에 뒤늦게 난 해제를 차기 후사로 올리기 위한 술수였다.
그러니까 진헌공에게는 태자 신생, 중이, 이오가 있었다. 모두 이복동생이다. 제나라에서 온 제강이 태자 신생과 목희를 낳았고, 오랑캐족인 대융과 소융의 여성에게서 각각 중이와 이오가 태어났다. 진목공이 목희와 혼인하였으니 이오는 처남이 되는 것이다. 물론 목희와 이오는 배다른 남매지만.
진헌공도 제강과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가진 것은 아니다. 부왕인 진무공의 여인이었던 제강과 사통하여 신생을 낳았던 것이다. 진무공은 방사 능력이 부족했고, 젊은 제강이 아들뻘 되는 진헌공과 눈이 맞아 낳은 신생과 목희가 있었다.
여희가 자신의 아들 해제를 제위에 올리기 위해 간교한 계략을 부려 태자 신생이 자살하게 된다. 신생이 태자 신분으로 어느 정도 군사력이 있어서 저항을 할 만했지만, "늙은 아버지께는 나보다 여희가 더 필요하다."라며 자살해 버렸다. 그리고 중이와 이오는 조국을 떠나 천하를 방랑하게 된다. 중이는 19년을 방랑하고 다시 귀국하여 제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진문공이다. 이오가 중이보다 먼저 귀국하여 제위에 오르는 진혜공이다. 중이나 이오가 각각 제위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왕이 바로 진목공이었다. 둘다 처남이었고, 각각 귀국할 때 진(秦)나라 군대가 호위했다.
중이과 이오가 나라 밖에서 기약도 없이 방랑하고 있을 때, 진나라에서는 헌공이 죽고 여희의 아들 해제가 뒤를 이었으나 신하 이극(里克)에게 살해당하고 뒤이어 여희와 순식이 옹립한 탁자도 이극에게 살해당한다. 탁자는 여희의 동생이 낳은 아들이었다. 이극과 진목공은 혼란에 빠진 진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이오를 불러들여 진나라의 군주로 세우니 그가 바로 진혜공이다. 이 과정에서 이오는 진목공에게 자신이 진나라의 군주가 되면 진나라가 황하 서쪽에 갖고 있는 성 5개를 준다고 약속했다. 물론 중이에게 먼저 제위를 제안했지만 중이와 참모들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정중하고도 완곡한 어조로 사양하였다. 이오는 하서 지역 성 5개를 주겠다고 약속해가면서까지 제위에 오르려는 열망이 강했다. 그렇게 귀국하여 제위에 올랐지만.
그런데 진혜공 원년(B.C 650년), 비정을 진(秦)나라에 보내 하서의 다섯 성을 주겠다는 약속을 철회했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즉위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공신인 이극에게도 미리 약속했던 분수 이북 땅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처참하게 살해해 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제위 등극에 공이 있던 신하들도 대부분 잔인하게 죽여버렸다. 진혜공 4년(기원전 647년)에 진(晉)나라에 흉년이 닥쳤다. 그래서 진혜공이 진 목공에게 곡식을 팔라고 해서 진 목공이 승낙했다. 지난 날 하서 지역 다섯 개 성을 할양하겠노라고 한 약속을 어겨 분노했지만, 명재상 백리해 등이 진목공에게 건의하여 곡식을 지원하게 한다. 군주가 잘못이지 백성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면서.
이듬애 진혜공 5년(B.C) 646년), 이번엔 진(晉)나라에 흉년이 들었다. 그래서 진 목공이 진헤공에게 식량을 요청한다. 하지만 진혜공은 대부 괵사의 말을 듣고 냉정하게 거절해 버린다. 천하의 패악무도하고 배은망덕한 인간 말론 진혜공 이오의 작태였다. 나아가 진혜공의 참모들은 진(晉)나라를 정복할 좋은 기회를 맞았다고 군사를 일으키라고 부추긴다. 그 군주에 썩어빠진 신하들이 결함한 형국이었다. 진혜공의 신하 경정이 극력 반대했으니 진혜공이 듣지 않고 군사를 일으킨다.
6년(기원전 645년) 봄, 진(秦)나라를 공격했다. 그러나 3번 연속으로 지고 한원으로 후퇴했다. 결국 진혜공은 가복도를 거우로, 보양을 어융으로 삼고 정나라에서 온 말안 소사로 끌게 한다. 경정은 소사가 실전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으나 진혜공은 그 조언을 무시한다. 한원 전투에서 진 혜공이 초기엔 유리한 전황으로 진목공을 거의 사로잡을 뻔했다. 그러나 진목공이 앞에서 말한 300인의 목숨 건 보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고 결국 진(晉)의 대패로 마무리되고, 진혜공을 사로잡아 개선한다. 진목공은 진혜공을 제물로 제사에 올리려 했지만 목희의 말을 듣고 돌려보내 주고 진혜공의 아들 어(圉)를 인질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