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독서모임을 마치고 조금은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다가 오래 전 졸업생을 만났습니다. 32년 근무한 학교 졸업생이 매우 많아서 모든 학생이 이름을 기억할 수는 없어도 본 기억은 있어서 잠깐 서로 눈이 마주쳤습니다. 매해 학생들이 입학하면 전교 학생의 이름을 모두 외웠습니다. 당시 동료 선생님들도 불필요한 일을 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아이들 이름을 외우다 보니 아이 한 명 한 명 좀더 관심이 가기 마련이고 아이는 아이대로 저에게 좀더 가까이 왔던 것 같습니다.
특히 겨울 방학 보충수업을 할 때 매년 1월 신정 연휴 끝나고 첫날 아이들을 만나 수업을 시작합니다. 그때 새해 기념이라고 아이들 한 명씩 악수를 하였습니다. 어쩌면 의레적인 인사 방법이지만 아이들이 참 좋아했습니다. 남자 교사와 남학생의 악수는 데면데면하기 마련이고 아이들이 피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지요. 더욱이 사춘기의 최절정기인 고교생들이 말입니다. 그런데 한 명도 악수를 거부하지 않았고.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저를 지켜보다가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어느 학생은 악수한 손을 놓지 않고 한참이나 꽉 쥐고 있다가 놓기 싫다는 듯이 마지못해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아이들이 가정에서 어쩌면 정에 굶주려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젠 퇴직하여 어딜 가더라도 졸업생을 만나면 우선 몇 기 졸업생이고 이름은 무엇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세세하게 묻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이 자신의 근황을 상세하게 전해줍니다. 밝히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 굳이 강요하진 않습니다. 어떤 졸업생은 뒤에서 달려와 끌어안기도 합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피하지 않고 저를 반기며 인사를 건네오면 저도 기분이 정말 좋아집니다. 최근엔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을 구하는 것이 워낙 어려운 것 같습니다. 기간제, 시간제 등 비정규직 일을 하는 말을 들으면 괜히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굳이 걱정하는 말을 내진 않습니다. 그런 것이 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은 것이지요.
저희 집 3남매도 셋 중 둘이 비정규직입니다. MZ세대 모두가 겪고 있는 삶의 힘든 현실을 우리 아이들이라 예외가 아니지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잘 한다 힘내라 등등으로 격려는 하지만 부모로서 걱정이 많이 됩니다. 아이들은 너무 걱정마시라고 저를 위로하지만 그래도 저의 젊은 시절과 비교하면 요즘 젊은 세대가 겪고 있는 세상이 참으로 잔인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3남매와 어쩌다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에도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일부러 회피합니다. 괜히 도움도 안 되는 아버지 입장에서 쓸데없은 참견이나 간섭은 오히려 그들에게 스트레스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일부러 화제에 올리지 않게 됩니다. 이것 또한 우리 시대 슬픈 자화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 만난 그 졸업생과 버스 정류장에 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대 전기공학과 4년 졸업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교 시절에 착실하게 공부한 모범생이었습니다. 저를 알아보곤 거의 90도로 인사를 합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인사를 하니까 오히려 신기한 듯이 쳐다봅니다. 그래도 그 학생 아주 공손하게 인사하고 저에게 다가와 다시 말을 건넵니다. 저도 그 졸업생의 이름과 현재 상황을 접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주로 그의 사정을 들었지요. 저의 학창 시절엔 전기공학과 4학년 졸업반이면 대부분 2학기에 취직한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 동기들은 그랬습니다. 저와 같은 문과 출신들은 이과 학생들보다 취업률이 훨씬 낮았고, 취업한다고 해도 대부분 겨울 방학에 들어가야 가능했었지요.
이 졸업생은 4학년 2학기 졸업반에 지금 2월 말인데도 아직 진로가 확정되지 않아 초조할 것 같은데 자격증 획득이 필요하고, 중소기업이라도 찾아서 몇 년 간 경력을 쌓겠다고 하네요. 선배들이 그렇게 진로를 잡아갔던가 봅니다. 그리고 고교 시절 친구 이야기부터 자신의 신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신이 고교 시절 말 잘 안 듣는 문제아였다고 털어놓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가 결코 문제아가 아니었지요. 문제아인데 제가 억지로 잘 봐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 모범생이었지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00아 니가 어떻게 문제아고? 니는 모범생이었지. 학교 생활 열심히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도 원만하게 잘 지낸 것으로 생각되는데, 글쎄 내 안 보는데서 문제가 있었을까. 난 아무리 생각해도 니가 문제아라고 기억나진 않아. 하기야 이제 와서 고등학교 시절 생활이 뭐 그리 큰 문제일까. 지금부터 잘 준비하여 열심히 생활하면 된다 아이가. 너무 걱정 마래이 니는 잘 할 끼다. 기죽지 말고 자신감 갖고 열심히 해라. 알았제. 니 믿는다. 으이 알았제."
그래도 그 말이 격려가 된 것 같습니다. 졸업생의 표정이 아까보다 한결 편해지고 밝아집니다. 우리 졸업생들을 우연히 시내 술집에서 만나면 정말 살갑게 다가옵니다. 행여 대학생으로 식당을 비롯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지갑에서 돈 만 원을 꺼내어 팁이라고 전해 줍니다. 아이들에게 특히 아르바이트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만 원은 느낌이 색다른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전해 주는 것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닙니다. 전부 내 자식 내 새끼 같은 아이들이라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짠해집니다. 함께 간 지인들이 제가 그렇게 우리 졸업생 아르바이트 생에게 팁을 주는 것에 익숙해져서 요즘엔 덤덤하게 쳐다 봅니다. 그 금액이 소소하지만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힘내어 열심히 일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정신적인 도움이 되길 빌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고난이 삶을 단련하게 한다지요. 젊은 날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 젊은 세대들의 삶을 좀더 깊이 살펴 보면 그런 말들은 이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긴 인생을 살면서 과거의 고생은 모두 추억이 됩니다. 좋든 나쁘든 추억이고 그 시절을 회상하며 자신의 현재를 떠올립니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세대의 젊은 시절보다 지금 젊은 세대가 겪는 삶이 훨씬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 같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젊은 세대가 그들의 삶의 고통을 오롯이 지게 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급격한 노령화로 향후 미래의 신성장 동력은 지금 젊은 세대에서 나올 뿐입니다. 이들이 학창 시절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하루 종일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학업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은 향후에 우리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런 미래가 분명 우리 눈앞에 보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지금 노년세대들의 구매력이 훨씬 높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노년 세대의 삶도 워낙 스페트럼이 넓어사 수준차가 매우 크긴 합니다. 하지만 전 세대 구매력 중에 노년 세대, 특히 액티브 시니어들의 경제적 능력이 월등이 높다는 보도를 접하면 과연 이것이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현상일까 싶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고생하여 이젠 삶의 보상을 누리고 싶다는 노년 세대의 바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들이 삶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 우리 젊은 세대들이 하루 하루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으 좀더 깊이 헤아렸으면 좋겠습니다. 노년 세대는 건강만 유지된다면 돈 쓸 일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이건 제 생각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 하루 생활에 쫓기는 우리 젊은 세대는 참으로 험난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애도 우리 젊은 세대가 좀더 힘을 낼 수 있도록 배려가 되었으면 합니다.
어제 밤 졸업생과 버스 안에 나란히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먼저 내렸습니다. 내리려고 말하는데 갑자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까처럼 90도 가까이 또 인사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그를 바라보니 아직도 자리에 앉고 저를 바라보며 인사를 또 합니다. 저도 마주 절했습니다. 그래도 환하게 웃으며 저를 보내주는 그 졸업생의 향후 삶이 더욱 행복하길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