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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니를 어떻게 키웠는데

by 길엽

나이가 들면 외로운 법입니다. 젊은 시절엔 혼자가 되어도 무언가 모색할 방법이 많지만 노년 세대에 혼자가 된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암담하지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위 사람들이 문득 문득 사라지고 어느 날 홀로 된 현실에 직면하면 이건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고 뭔가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너무나 답답한 하루 하루를 보낼 수밖에요.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부부가 함께 있으면 서로 위로가 되겠지만 어느 날 곁에 있던 배우자가 사라지고 없는 새벽맞이는 그 얼마나 슬플까요.


어느 지인이 들려준 말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한탄하는 것을 들었는데,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집을 나가 다른 여자랑 살다가 그 여자가 죽고 할아버지도 노쇠하여 다시 이 할머니께 돌아왔지. 할머니도 나이 60이 넘어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가 도저히 용서가 안 되었지만 노쇠한 사람을 내쫓지는 못 하고 해서 이럭 저럭 같이 살았어. 그런데 나이 90이 넘도록 같이 살았는데, 늘 '이 영감탱이 하루라도 빨리 뒈졌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말했다네. 그런데 최근 그 할아버지가 92세에 돌아가셨어.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장례 치른 후 집에 돌아와 하루 자고 일어났는데 너무 허전하여 정말 미칠 지경이라는 거야. 갑자기 방안에 혼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섭고 외롭고 그래서 견딜 수 없었대."


사람이야 어차피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혼자입니다. 물론 태어날 때 어머니가 가장 기뻐하며 반갑게 맞이하지만 그래도 우리네 인생은 혼자입니다. 그래로 애기 때부터 청소년 시기 중장년까지는 곁에 누군가 있을 가능성이 많기에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 견딜 만하지요. 외로움 측면에서 볼 때 말입니다. 그런데 노년 그것도 진짜 늙어버리고 곁에 아무도 없을 때 느끼는 고독, 외로움, 슬픔, 두려움 등등이 얼마나 가혹할까요. 내 잘못도 아니고 다른 누군가의 잘못이 아닌 그야말로 인생 본연의 과정에 외로움이 존재하는 법입니다. 어쩔 수 없이 감내하고 수용해야 할 수밖에 없지요. 설령 젊은 시절부터 노후를 준비해도 나이가 들면 전혀 예상 밖의 상황에 직면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노후를 대비하는 것이 그나마 그 충격이나 고통을 줄일 수 있지요. 어쨌든 우리네 인생 중 노년 시기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자식의 성공을 비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부모든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을 위하는 마음의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수가 있겠지요. 자신을 위하고 대하는 방법도 참으로 다양하겠지요. 어떤 사람은 자식에게 키워 준 값으로 대학 졸업 후 취직하자마자 첫 월급부터 강제적으로 매월 30만원씩 계좌이체로 받는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그것이 바람직할까요 라고 의문을 표한 적도 있습니다만 요새 와서는 그분의 행동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부인께서 그 돈을 차곡 차곡 모아 자녀들 결혼할 때 다시 내놓았다는 말을 듣고 말입니다. 우리집 3남매는 제가 돈을 매월 정기적으로 받지 않습니다. 아내가 아이들 이름으로 대출했을 경우 이자내기 위해 조금씩 받는다는 말을 들었지만 저나 아내 모두 매월 정기적으로 용돈 개념으로 받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부터 어느 부부가 들려준 말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사업한다고 부모에게 손을 벌릴 때 자식들의 설명을 듣고 늙은 부모들이 살던 집을 팔고 아들 며느리 집에 들어가면서부터 불행이 시작된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부모님 잘 모신다고 말하면서 말이지요. 어차피 내가 죽으면 이 재산 자식들 다 물려 줄 텐데 사업 자금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 주고 그 대신 아들 며느리의 봉양을 받는다면 그야말로 win - win 같게도 보입니다. 그렇게 몇 억 또는 그 이상의 돈을 자식에게 주고 아들 며느리 집으로 들어서면 그때부터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길이 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세상의 모든 아들 며느리가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도 그렇게 시작되는 새로운 공간에서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 하나 먹어도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이전에 노부부가 자신의 집에서 지낼 때는 그런 눈치를 볼 일이 전혀 없었지요.


그렇게 살다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아들 며느리와 외식하면서 다시 자기들만의 공간으로 조그마한 집 한 칸이라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아들이 지원할 수가 없다고 냉정하게 탁 거절해 버립니다. 그때 노부부의 입에서 동시에 튀어나온 말!


"우리가 니를 어떻게 키웠는데, 니가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나."


그때부터 아들 집에 있는 것도 불편해집니다. 아들 며느리가 방 한 칸 구해주지 않은 상태에서 가시방석 같은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지요. 어떻게 어떻게 해서 노부부 지인의 시골로 내려와 거처를 정했다는군요. 날마다 아들에 대한 원망만 늘어놓으면서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참으로 소용없는 말이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니가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가 있나.'입니다. 더 이상 얼굴 보기도 어려워집니다. 자식에게 뭔가 줄 때는 이런 말을 할 생각도 하지 말고 마음도 먹지 말하야 합니다. 절대 더 이상 기대하면 안 됩니다. 기대해도 아무 소용이 없거든요. 자식은 그런 재산을 받는 것을 당연한 권리라고 여길 뿐입니다. 부모 마음과 자식 마음이 일치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물론 그렇게 재산을 물려 받아 부모에게 은혜를 갚는 사람도 세상에 많습니다.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요. 오히려 장려할 일이니 우리가 문제삼을 일이 전혀 아니지요. 문제는 자식들에게서 버림받는 노년세대지요.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고도 냉대를 받아 소외되는 노년 세대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자식에게 뭔가 물려주더라도 최대한 늦게 해야 하고, 아니면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죽고 나서야 자식들끼리 알아서 처리할 문제이고, 만약 어떻게 해서 물려줄 경우 절대로 기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재삼 반복하지만 소용없는 말은 아예 하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부모 자식 간도 자칫하면 재산 문제로 원수지간보다 못한 사이가 될 수 있답니다. 그런 상황에 봉착해서 '어떻게 키웠니, 어떻게 이럴 수 있니'는 모두 부질없는 말이 됩니다.


그래도 자식에게 그렇게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 노년세대는 그나마 다행입니다. 일년 365일 가도 소식 없는 자식을 기다리는 노인은 그럴 주장도 할 기회가 없습니다. 죽지 못해 하루 하루 살아갈 운명이지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위를 돌아보면 '품안에 자식'이란 말이 깊게 다가옵니다. 진짜 그렇더군요. 그리고 그 말과 상관없이 자식도 크면 성인이 되고 실질적인 남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자식도 스스로의 가정을 돌보고 챙겨야 하는 막중한 책임 의식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새로운 삶의 둥지에서 그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연한 가장이지요. 그런데 아무런 부양 가족이 없던 것처럼 자식이 부모를 돌보길 기대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자식의 사정을 이해가고 그들의 삶을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당연히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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