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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07. 2024

86세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니

이백(李白)을 적선(謫仙)이라 불러준 하지장(賀知章) 이야기

하지장과 이백은 마흔 두 살이나 차이가 난다. 그런데 난생 처음 만난 이백의 탁월한 글재주와 호방한 성격이 마음에 쏙 들었던 하지장은 이백을 보자마자 곧장 그의 손을 이끌고 술집으로 데려갔다. 하지장도 타고난 술꾼이었다. 그러나 수중에 술값이 없었던 하지장은 허리춤에 달린 금거북(金龜)을 풀어 주모에게 맡기고 마흔 두 살이나 어린 이백과 밤을 새워 마셨다. 소위 금구환주(金龜換酒)'라는 고사다. 관리의 신분증을 맡기고 술을 마셨다니.  더욱이 하지장이 이백을 헌종에게 추천하여 한림대조(翰林待诏)로 발탁하게 했다.


     



하지장은 당나라 천보(天寶) 3年, 그러니까 서기 744년에 노쇠하여 관직(官職)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이때 그의 나이 86세의 고령이었습니다. 86세까지 관직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요. 그렇게 관직에 들어선 지 50여 년만에 고향인 소흥으로 귀향(歸鄕)했을 때 느낀 감정을 시로 노래한 것이 바로 "회향우서(回鄕偶書)" 두 수입니다. 고향에 돌아와 우연히 즉흥적으로 지었다는 뜻이 되겠지요. 젊은 날 고향 집을 떠났다가 50여 년 관직 생활을 마치고 인생의 끝 무렵에 고향에 돌아왔으니 소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회향우서(回鄕偶書) 고향에 돌아와 즉흥적으로 짓다          



其一      

어려서 집을 떠나 아주 늙어 돌아오니        少小離家老大回

고향 사투리 여전한데 귀밑머리 세었네.      鄉音難改鬢毛衰.     

어릴 적 친구 서로 보고도 몰라보고            兒童相見不相識

당신은 어디서 왔는가 웃으며 묻네.           笑問客從何處來.


其二          

고향 집 떠난 지 오랜 세월에                    離別家鄉歲月多    

근래에는 모든 것이 대부분 사라졌네.         近來人事半銷磨.    

오직 문 앞  맑은 경호 호수만이                 唯有門前鏡湖水    

봄바람에 이는 물결 예전 같구나.               春風不改舊時波.       


이백이 처음 장안에 왔을 때 ‘인간 세상에 귀양 온 신선’이란 뜻의 적선(謫仙)이라는 멋진 별칭을 붙여주고 이백을 장안의 문사들에게 널리 소개한 인물이 바로 하지장입니다. 이백은 만년에 절강성 사명산(四明山)으로 돌아가 세상을 떠난 하지장을 술마시며 그리워하는 시 2수를 썼습니다. 「대주억하감이수(對酒憶賀監二首)」가 그것입니다. 하감(賀監)이라 한 것은 하지장이 궁중 도서관 관장인 비서감(秘書監)을 지냈기 때문입니다.



         대주억하감(對酒憶賀監) 하지장을 그리워하며     

                                                  

                                                                         이백(李白)     

其一     

 사명산에 한 광객 있었으니,                       四明有狂客     

 풍류남아 하지장이라네.                            風流賀季眞     

 장안서 처음 만나자마자,                           長安一相見     

 나를 적선이라 불러주었지,                       呼我謫仙人     

 예전 그리도 술을 좋아하더니,                 昔好杯中物     

 지금은 소나무 아래 진토가 되었네.         今爲松下塵     

 금거북이를 끌러 술과 바꾸던 곳에서       金龜換酒處     

 생각할수록 눈물이 두건을 적시네.            却憶淚沾巾          



其二     

광객이 사명산으로 돌아가니                      狂客歸四明     

산음의 도사들이 그를 마중했네.               山陰道士迎.     

칙명으로 경호의 물을 내리시니,               勅賜鏡湖水      

그대를 위한 누대와 연못 영광스러웠네.   為君臺沼榮.     

사람은 죽고 옛집만 남았는데,                  人亡餘故宅

공연히 연꽃만 피어 있다네.                      空有荷花生.     

이를 생각하면 아득하기 꿈만 같으니,       念此杳如夢     

처연히 내 마음만 슬퍼진다오.                  凄然傷我情.

    

하지장은 귀향하여 은거하던 집을 천추관(千秋觀)이라 하였는데, 그 집과 근처의 경호(鏡湖) 및 섬천(剡川)을 현종(玄宗)으로부터 하사받았습니다.


그리고     

금구(金龜)는 『사물기원(事物紀元)』에 따르면 삼대(三代) 이전에는 관리들이 가죽으로 만든 산대(算袋)라는 것을 찼는데 위(魏)나라 때에 거북 모양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당(唐) 고조(高祖)가 몸에 차는 물고기를 주었는데, 삼품(三品) 이상은 금으로 장식했고 오품(五品) 이상은 은으로 장식하였으므로 어대(魚袋)라고 이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측전무후(則天武后) 때에 일시적으로 거북 모양으로 바꾸었다가 얼마 후 물고기 모양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금귀는 천자가 관리에게 차도록 하사한 장신구이자 일종의 신분증에 해당하는 귀한 것이지요. 그런데도 하지장(賀知章)이 함부로 술을 바꾸어 마신 것을 보면 이백이 하지장을 평범하게 보지 않고 광객(狂客), 풍류(風流)라고 칭한 것이 지나친 말은 아니겠지요.   



금구(金龜)에 관한 위 내용은 블로그 “서로를 이해못하는 세상. 이해하며 살아요.” https://blog.naver.com/sogood89/223316183397 에서 인용했습니다.



 이백이 처음 청운의 꿈을 안고 수도인 장안에 왔으나, 사방천지에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궁핍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장안의 큰 도관인 자극궁에서 하지장이 참석하는 행사가 있다는 것을 듣고 하지장을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하지장을 만난 이백은 촉도난(蜀道難), 오서곡(烏棲曲) 등 자작시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백의 작품을 읽어본 하지장은 그 자리에서 이백을 '하늘에서 인간세상에 귀양 온 신선'이란 뜻의 '천상적선인(天上謫仙人)'이라 호칭하고 세상에 널리 알렸습니다. 이것이 후에 이백이 적선(謫仙)이란 별칭으로 불리게 된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이백을 시선(詩仙)이라고도 하지요.      


하지장은 86세 때 황제 현종의 허락을 받고, 귀향하는 날 문무백관이 동문 밖에서 전송을 했다니 조야에 대단한 신망을 받은 인물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경호(鏡湖)는 중국 절강성 소흥(紹興)에 있는 호수로 당 현종 때 비서감을 지낸 하지장(賀知章)이 늙어 고향 오중(吳中)으로 돌아갈 때 현종이 이 호수의 한 구비를 하사하여 하감호(賀鑑湖)로도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장은 중국 당(唐)나라 때 낭만파(浪漫派) 시인(詩人)이고, 자(字)는 계진(季眞)이로 호(號)는  사명광객(四明狂客)과 비서외감(秘書外監)이라고 했습니다. 당나라 전성기인 당 현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세자(당 숙종)의 사부가 되었으며, 술을 좋아하고 호방한 성격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말년에는 스스로 사명광객(四明狂客) 즉 사명산의 미친 나그네라 칭하며 살았습니다.      



풍류시인이자 호방한 남자 하지장의 86세에 관직을 그만두면서 귀향하여 느낀 소회를 중심으로 글을 전개하려 했는데, 그만 이태백과의 사연으로 흘러 가버렸네요. 50여 년 관료 생활을 하고 86세에 고향 마을에 돌아왔을 때 어릴 때 같이 놀던 친구들조차 하지장을 몰라 보는 황당한 상황을 시로 읇고 있습니다.



저도 하지장과 비슷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도시로 와서 직장 생활한 지 35년이 되었고, 정년 퇴직 후 노년 세대가 되어 고향 마을에 들렀을 때 그 옛날 알고 있던 얼굴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을 보고 정말 큰 실망감, 슬픔을 깊이 느꼈더랬습니다.



젊은 날에 고향 마을 회관에 들르면 해마다 반겨주시던 그 많던 아지매들, 회관 앞 쪽 평상이 놓여진 정자에 둘러 앉아 제가 사온 술과 안주를 놓고 그렇게 기뻐하시던 아재들 얼굴은 어느 새 사라져 버리고 정자 위엔 낙엽만이 바람에 휘날려 이리 저리 뒹굴고 있어서 인생 무상을 크게 느꼈었지요. 당시 아재, 아지매들이 제 손을 꼭 잡고 훗날 정년퇴직하면 고향으로 돌아와 함께 살자고 말했을 때, 전 그 약속을 충분히 지킬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을 심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 옛날 이야기도 많이 들려달라고도 했었지요. 누가 누구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어야 하는지 의아히긴 했지만 말입니다.


35년 외지 생활하고 고향에 돌아가 느낀 낯선 기분도 그럴진대, 50여 년 만에 귀향하여  고향과 고향 사람들 모습을 보았을때, 하지장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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