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지인의 혼사가 있어서 결혼식장에 들렀습니다. 결혼 당사자나 양가 부모들이야 결혼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쁠 테지만 축하하러 간 우리들은 오랜만에 만난 기분에 비싼 뷔페음식을 안주삼아 술잔도 나누었습니다. 교직 전체 중 3분의 1정도 기간에 인연을 맺은 사람들인데다가 서로 아끼는 마음이 지극하여 편안한 분위기에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낮술 마시고 취하면 조상도 못 알아본다는 말이 있기에 무리하게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소주 몇 잔을 함께 마시면서 근황도 즐겁게 주고받았습니다. 다들 퇴직 후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서 보기 좋았습니다.
"아들이 가끔 두렵지 않던가요?"
평소에 저와 마음이 잘 통하는 분께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십니다. 동석한 사람들 전체를 보고 던진 질문이었지만, 저에게 유난히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했습니다.
"당연히 두렵지요. 혹시나 아들하고 이런 저런 갈등이 생겼을 때 제가 젊은 날에 했던 행동을 지금 우리집 큰아들이 그래도 한다면 과연 제가 참고 그 상황을 넘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어린 시절 고등학교 다닐 때 에피소드를 들려드렸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몇 번 했던 말이라 자꾸 들으면 식상한 내용일 수 있으나 어제 그 자리에서 다시 떠올렸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시골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시내로 진학하여 고등학교, 대학교를 무사히 졸업하였습니다. 물론 아버지와 형 그리고 여동생의 은공도 잊으면 곤란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와의 갈등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학교 문턱에도 가보시지 못했고, 글자도 몰랐습니다. 반면에 아버지께서는 한학을 조금 접한 것으로 시골에서 좀 똑똑하단 말을 들었지요. 그 덕에 마을 이장을 10여 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들에서 온몸이 새카맣게 탄 채로 일만 하셨습니다. 어느 집에서나 마찬가지지만 가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여성이 가사를 책임진다는 것이 진찌 힘들지요. 하다못해 남자는 어딜 가서 막노동이라도 하면 적어도 식솔을 굶기지는 않는데, 여성이 혼자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한번은 고1때 그날도 어머니와 들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자전거를 타고 들판에 나오셔서 휙 돌아보더니 그냥 집으로 가버리셨습니다.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말이지요. 저도 그 순간 화가 났습니다. 어떻게 어머니와 저에게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저리 휙 갈 수가 있을까 싶었지요. 그리고 저녁 무렵 어머니와 둘이서 집에 도착했습니다. 형도 당시 농사로 고생을 정말 많이 했는데, 그때는 어디로 가셨는지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 않네요. 어쨌든 집에 도착했는데, 아버지께서 마루에 걸터앉아 구두를 닦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어머니가 삶아놓은 하얀 수건이었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대들었습니다.
"아버지,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남자 맞습니꺼."
그렇게 시작된 언쟁이 결국 아버지의 지게작대기 폭행이 이어졌습니다. 작대기 끝 부분이 V자로 되어 있는 부분으로 제 어깨 쪽을 두어 번 내리쳤습니다.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저런 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누가 놔(낳아)달라고 했습니까. 오늘 저는 아무리 뚜드려 맞아도 답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등등의 대화가 오갔습니다. 다행히도 잠시 후에 형이 마당으로 들어서서 아버지 허리를 끌어안고 말렸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고생하는 것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그렇게 대들었고, 당시는 제가 전혀 잘못도 부끄러움도 없다고 자신있게 생각했습니다. 당시 마을에서도 저의 행동을 놓고 갑론을박했던 모양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다. 아니다 아버지에게 함부로 대드는 자식이다. 역시 큰아들이 효자야. 말없이 아버지 허리를 끌어 안고 사태를 진정시켰다. 등등
그래도 그땐 일말 죄책감이 없고 당당했었지요. 그런데 지금 와서 그때를 생각하니 갑자기 부끄럽고 죄스럽기만 합니다. 최근에 우리집 큰아들에게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야~야,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 그러니까 00에겐 할아버지께 그렇게 무례하게 했던 것이 참 부끄럽고 죄스럽다. 만약 아들 00 네가 나에게 그렇게 한다면 내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아. 그것만 생각하면 옛날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너무 죄송하기만 하다."
그러자 큰아들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위로하더군요.
"아버지께서 지금 이날 이때까지 저에게 그렇게 하시지도 않으셨고, 더욱이 할아버지처럼 무책임하게 하실 리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아버지께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없고요. 너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집 큰아들과 대화를 하면서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행여 내가 말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지요. 제 에피소드를 들려드리니까 저에게 질문하신 지인께서도 당신의 고교 시절 경험, 저와 조금은 유사한 경험을 들려 주셨습니다. 물론 저처럼 아버지께 빡빡 대들었다는 것은 아니었고, 그분의 부친이 살아계실 적의 경험을 들려주셨습니다. 내 경험은 분명하게 생각나는데, 그분의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네요.
지금까지는 우리집 3남매와 큰 갈등이 없이 평온하게 살아왔지만, 언젠가는 세대 갈등을 겪을 날이 올 겁니다. 그땐 무조건 제가 양보할 생각입니다. 우리집 아이들은 여전히 지극정성 효도를 다해주는데도 저는 늘 조심스럽습니다. 혹시라도 가부장적 꼰대 스타일의 언행을 드러낼까 하고 말이지요. 그냥 조심 조심하려 합니다. 젊은 날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이제 본격적인 노년 세대의 삶으로 들어오니 그렇게 조심스러워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