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근무하고 정년 퇴직하여 본격적인 노년 세대의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제 연령 대 혹은 그 이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평안한 직장 생활을 하고 들어선 노년 세대라서 정신적, 육체적 변화가 예상보다 작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전성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돈이 썩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뭔가 하고픈 일이 특별히 많은 것도 아닙니다. 현직에 있을 때는 훗날 퇴직하면 어떻게 지낼 것인가를 대비하고 고민하기도 했는데, 막상 시간이 흐르고 노년의 삶에 봉착하니 별 생각없이 시간만 보내는 듯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지역 사회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가하느라 좀 바빴습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대부분의 봉사활동을 접었습니다. 그새 게을러진 탓도 있겠지요. 좀더 편하게 지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학교 밖 아이들 대상으로 대입 수능 국어 무료 과외도 이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그런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안 생기네요. 오히려 장기간 진행하는 봉사활동보다 한번에 성금을 보내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랜 기간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 인생에서 앞으로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할 기회가 점차 적어질 것 같습니다. 시니어 복지 관련 자원봉사활동만은 계속 하려 합니다.
노노케어라고 하지요.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서로 도우면서 노후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노년 세대를 케어하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그들의 현재 맞닥뜨린 삶도 너무나 힘겨운데, 거기에다 노년 세대를 돌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부답스럽지요. 평균 수명이 60이 되기 전 시대라면 그래도 젊은 세대의 부담이 덜할 텐데, 지금은 퇴직 후 30년 또는 그 이상의 긴 시간을 노년 세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장례식장에 가면 사망자들의 연령이 90대가 흔하게 보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다가는 삶이라면 그래도 괜찮지만 노후 세대의 삶 대부분은 요양병원 등에서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며칠 전에 어느 지인께서 우리 몇 사람을 초대하여 함께 모였습니다. 실비집이라곤 하지만 음식이 아주 풍성하였습니다. 초대하신 분께서 사전에 품질 최고의 문어를 주문하여 식당 사장님께서 최상급 문어를 미리 사서 준비하여 내놓았는데, 평소 음식 맛에 대해 별다른 평가를 하지 않는 제 마음에도 진짜 맛난 요리를 만났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요리가 나왔습니다. 하루를 마치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저녁식사를 하니 그냥 기분이 좋았지요. 대부분 제 연령대로 몇 살 차이가 날 뿐이니 마음이 잘 통하는 것 같습니다. 각자의 근황을 들었습니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자신의 근황을 들려주면 동시 건배하며 술잔을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갑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마음이 맞아 자주 모일 수 있다면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 문제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실제로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은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전염병과도 같아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치고 그것이 결국 각자의 건강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반적인 감기 바이러스를 투여한 뒤 격리된 호텔 방에서 생활하며 아픈 동안에 느낀 감정 실험 자료에 따르면,
"아플 때 외로운 사람들은 덜 외로운 사람들보다 더 기분이 나빠졌다."
라고 합니다. 유명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절망보다 더 치명적으로 괴로운 병이 바로 '외로움'입니다.
어차피 우리네 인생은 외로울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린 시절, 젊은 시절 느끼는 외로움과 달리 노년의 외로움은 매우 심각한 영향을 끼칩니다. 어린 시절엔 그래도 부모 형제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노년에는 곁에 아무도 없을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배우자가 사별하고 자녀들이 혼인하여 집을 떠나 멀리 살고 있으면 곧장 외로운 상태가 되어 버리지요.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엔 자녀들이 외국으로 가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실제로 어느 지인께서 장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자 본인 혼자서 상가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상 위에 음식도 놓더군요. 부인께서 외국에 있는 아들 보러 한 달 정도 출국한 상태여서 그렇다면서 그 지인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래도 그 지인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부인도 같이 있으니 지금껏 제가 말하는 내용과는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요.
<노년(老年)에는 외로움이 치명적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느낄 때 그 삶이 얼마나 공허할까요. 제가 아는 어떤 이는 밤에 잠들면서 내일 아침에 눈이 안 떠지면 좋겠다고 하고 빌기까지 하였답니다. 외로운 삶이 얼마나 치명적이었으면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 말을 듣고 다음 날 저녁에 몇 사람과 시간을 정해 번개 모임을 한번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모인 자리에서 그 지인은 당신의 하루 하루의 삶을 담담히 때로는 격정적으로 털어놓았습니다. 자녀들이 모두 결혼하여 서울로 외국으로 떠나갈 때도 큰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는데, 불과 몇 년 전에 부인이 하늘 나라에 가시고 나서 갑자기 삶이 허망해짐을 실감하였답니다. 그간 몰랐던 외로움이 갑자기 몰려 오더랍니다.
부인 살아 생전에 둘이서 여행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순식간에 확 몰려 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우리가 그냥 누리는 일상이 때로는 기적과도 같은 존재가 됨을 깊이 깊이 실감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고 이제 와서 새삼 어떤 모임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도 마뜩찮고 연락도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전화하여 한번 만나자는 말을 꺼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인이 살아 계실 때 갔던 곳을 추억 삼아 다시 가보면 좋은 감정보다 오히려 외로움이 울컷 솟아올라서 '노인의 사회적 고립'이 얼마나 큰가를 느꼈다고도 하였습니다.
저 입장에선 아직 그런 '외로움'을 깊이 느끼지 못하는 편입니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있는 편이고, 가정 내에선 아내와 3남매가 곁에 있으니까요. 30대 초중반인 3남매가 결혼하지 않고 있어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곁에 있어주니 저는 오히려 고맙기도 합니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지요. 어떨 때는 빨리 결혼해서 집을 떠나가면 좋겠다고 하다가, 또 언제는 아이들이 외박하거나 늦게 퇴근하면 괜히 조바심이 나곤 하니까요. 주말에 아이들이 모두 외출하고 아내마저 친구를 만나러 가면 저만 덜렁 혼자 집을 지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렇게 혼자 남으면 외로움보다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세월이 흘러가서 아이들도 모두 집을 떠나 그들의 둥지로 가고, 아내마저 곁에 없다면 그땐 외로움을 진하게 느끼게 될 터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