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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14. 2024

얼굴 보여 주는 값이야

막내아들이 목요일 밤 12시를 넘어 새벽 1시쯤 우리 가족 모두가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집에 도착하여 자기 방에서 3박을 하고 일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매월 1회 정도 멀리 경기도 남양주에서 부산까지 왔다가 갑니다. 주말 휴일을 남양주 집에서 편안하게 지내면 좋을 텐데 이렇게 멀리 부산까지 일부러 와주니 정말 고맙지요. 막내가 집에 오면 먼저 아내의 표정이 정말 밝아집니다. 막내를 유난히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말이 별로 없는 큰아들과 딸아이에 비해 막내아들은 집에 와 있는 시간에는 젊은 세대들이 접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곧장 들려주고 우린 크게 웃기도 합니다. 그냥 얼굴만 봐도 좋은데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나 에피소드, 유며 등을 접할 수 있어서 막내아들이 오는 날이면 우리 식구 다섯 명은 순간적으로 완전체가 되는 듯합니다.


3남매가 어릴 때부터 유난히 우애가 깊었습니다. 친구들 계모임에 가면 우리 집 아이들 3남매가 유난히 순하고 부모 말을 잘 들어서 그런지 친구들이 "야들 3남매는 다른 집 외동아들보다 더 조용한 것 같다. 진짜 착하다. 어째 아~들을 이렇게 잘 키웠노"라고 칭찬도 많이 했었지요. 혹시라도 우리 집 아이들이 기가 죽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함께 모이면 방문을 닫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연신 큰소리로 웃어서 보기 좋았습니다. 저와 아내 입장에선 아이들이 우리에게 와서 재미나는 이야기를 해주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모이기만 하면 즐거워하니 그냥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 집 3남매는 저희들끼리 큰 갈등이나 싸움이 없이 자랐습니다. 어쩌다 큰아들과 막내가 갈등할 일이 생길 듯하면 가운데 딸아이가 아들들에게 말없이 진정시킵니다. 아들 둘 다 딸아이한테는 절대로 함부로 하지 않는 묵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큰아들은 여동생이라 함부로 대하지 않고, 막내아들은 누나에게 절대 충성입니다. 그렇다고 딸아이가 대가 세거나 말을 거침없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딸아이가 말이 적은 편입니다. 가볍게 미소만 지어도 형제는 조용합니다. 참 신기하지요. 앞으로 살다 보면 3남매도 뭔가 갈등도 생길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선 다툼도 생길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3남매가 살아온 방식을 찬찬히 살펴보면 저희들끼리 현명하게 해소할 듯도 합니다. 저와 아내가 죽고 난 후에 3남매의 갈등은 그들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당장은 우리 아이들 3남매가 워낙 우애가 있고 서로를 챙겨주는 마음이 두터워서 별로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3남매는 저희들끼리 모여 쿠팡에 주문하여 맛있는 음식도 배달시켜 먹으면서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통하는 이야기를 속닥속닥 하기도 합니다. 아내는 안방에서 TV나 유튜브 동영성 본다고 정신없네요. 저는 거실 책상에 앉아 밀린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일요일 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다 보면 큰아들 딸 막내아들 모두 제 앞으로 지나가면서 뭐 드시고 싶지 않냐고 한 마디씩 건넵니다. 갑자기 그렇게 물으니 생각나는 것이 없더군요. 아이들이 부엌 싱크대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면 그것 조금 얻어먹고, 뼈다귀 감자탕을 주문하여 조리하면 다시 거들어서 함께 먹기도 합니다. 그래도 가급적 3남매 대화에는 끼여 들지 않지요. 아무래도 제 끼니 걱정은 큰아들이 많이 해주는 편입니다. 어쨌든 막내아들이 집에 와서 생활하는 3일은 저에게도 행복한 시간이 됩니다. 앞으로도 이런 시간이 많았으면 싶습니다.


막내아들을 차에 싣고 출발하면서 차 안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가벼운 근황부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막내아들의 얼굴에 피곤기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머리를 기대어 눈을 붙이라고 권했더니 막내아들이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습니다. 예전 같으면 부산역까지 가는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도 저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 주느라 애를 썼는데, 오늘은 유난히 피곤하게 보이기에 원인이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슬쩍 물으니 어젯밤 오랜만에 큰아들과 조를 이뤄 컴퓨터 게임을 새벽 1시까지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ㅎㅎ.


잠시 후에 부산역에 도착합니다. 차를 잠깐 세우고 지갑을 열었습니다. 지갑 속에 있는 만 원짜리를 있는 대로 꺼내 막내아들에게 전합니다. 아들이 부산에 와서 남양주 갈 때마다 이렇게 돈을 많이 주셔서 감사하지만 죄송하다면서 망설입니다. 그래도 아들 손을 덥석 잡아 손바닥에 돈을 전합니다. 절대로 미안해하지 말라고 강조하면서 말이지요.


"야~야, 이 먼 데까지 주말 쉬지도 않고 와주었으니 내가 오히려 고맙고, 이건 잘 생긴 얼굴 보여준 값이다. 언제나 고맙구나. 어떻게 수중에 있는 돈을 다 준다고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내가 미안타. 어쨌든 조심해서 올라고 몸 건강해라. 돈 아끼지 말고 먹고 싶은 것 편하게 사 먹어라. 이렇게 와서 올라가니 내가 고맙고 미안하구나."


막내아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차에 내리며 다시 한번 인사를 합니다. 다음 달에 또 오겠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가는 나이가 넘었는데도, 아이들이 집에 오면  제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을 보면 아직 제가 아이들 어디로 내보내기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큰아들도 조만간 집을 나가 독립할 것 같습니다. 셋 모두 결혼은 아직 하지 않았지만 각자의 살 공간은 어떻게든 마련했으니 독립할 때가 온 것이지요. 다행히도 딸아이가 우리 부부랑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딸아이도 언제 이곳을 떠나 자기 집으로 갈지 모르지요. 갈 땐 가더라도 지금처럼 저와 아내에게 지극정성으로 효도하는 우리 집 3남매라서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 줘도 아깝지 않군요.


셋 모두 명문 대학 출신이 아니지만 각자 직장에서 열심히 생활하여 저와 아내의 시름을 덜어 준 것만으로 고맙기만 합니다. 아이들이 중고 시절엔 왜 다른 집 아이들처럼 sky대, 의대 등에 진학할 정도로 공부를 못 할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막상 3남매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지난날 제가 가졌던 생각이 너무나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아이들한테 미안하지요, 한 명이라도 직장도 없이 방황했다면 우리 부부에겐 큰 부담이었을 테지요. 앞으로도 아이들 삶에 조금이라도 경제적인 지원을 할 수만 있다면 그리 하는 것이 부모의 바람직한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노년 세대의 삶보다 MZ세대에게 돈이 많이 필요하니까요. 그렇다고 훗날 아이들에게 무슨 보상을 바라고 해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앞으로는 각자 독립된 사고방식으로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빌 뿐입니다. 그리고 가끔 만나 함께 둘러앉아 식사라도 즐겁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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