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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19. 2024

내 팔자가 이기 뭡니꺼

재활을 돕는데 지친 할머니의 넋두리 

며칠 전 어느 공원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여름날이고 날씨가 흐린 탓인지 사람들이 적었습니다. 할머니 한 분께서 옅은 분홍빛 앞치마를 입은 채 앞에 서서 뒤따라 오는 할아버지 걸음걸이를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흡사 어린아이가 걸음마 배울 때 아이 엄마처럼 상체를 약간 구부리고 두 팔을 앞으로 펼쳐 할아버지가 다가 오시길 기다리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요양보호사 분인가 했지요. 할아버지는 언뜻 70대 후반으로 보였고 상체에 비해 하체가 부실한 것 같았습니다. 두 다리는 상당히 많이 야위어서 단번에 다리 근육이 모자라 걷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두 다리 모두 허벅지 아래 부분에 검은 색 보호대를 두르고 불안하게 걸어가십니다. 보폭도 상당히 짧고 걸을 때마다 자칫 넘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보이더군요. 


할아버지께서 정말 힘들게 한 걸음씩 옮기시며 다가가면 할머니는 다시 몇 걸음 떨어져 저만치 가서 기다리십니다. 할머니 표정은 짜증이 섞은 모습이었고, 그것을 따라가려는 할아버지는 상당히 힘들게 보였습니다. 벤치에 앉아 두 분 모습을 보면 저도 훗날 나이가 들어 저렇게 노쇠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도 갑자기 들었습니다.  두 분 곁으로 몇 분께서 말씀을 건넵니다. 


"아이고, 요양사님 수고 많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그래도 자기 의지로 저렇게 재활하겠다고 걸어가시는 것을 요양사님이 이렇게 도와주니 할아버지께서도 많이 나아질 듯합니다."


요양보호사라고 보기엔 나이가 좀 들어 보이고, 그렇다 두 분이 부부라고 보기엔 상당히 나이 차가 느껴졌지요. 그건 어디까지나 두 분 개인 사정이니 제가 깊이 알 것은 없겠지요. 어쨌든 주위에서 덕담삼아 말을 건네니 할머니께서 상당히 마음이 상한 듯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편입니다. 내사마 요양보호사라 카마 돈이라도 받을 수 있지요. 그냥 쌩고생만 한다 아입니꺼. 자식들 다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지요. 전부 결혼해 가 갔뿌고, 내한테 맡기 놓고 내 팔자가 이기 뭡니꺼.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지금 몇 년째 이라고 있다 아입니까. 시간 가면 좀 나을까 했는데, 점점 나빠지고, 자식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네요. 아이고 내 팔자야. 이 짓을 도대체 언제까지 몇 년이나 앞으로 해야 할지 계산이 안 되이 답답해 죽겠심더."


할아버지께선 그 말을 듣고도 할머니 곁으로 오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할머니께서 당사자 면전에서 그렇게 모욕적인 말씀을 하시는데도 할아버지께서 한 걸음 한 걸음 열심히 걸어가려고 애쓰는 장면이 못내 안타깝게 보이더군요. 어떻게든 앞으로 걸어보려고 할아버지는 힘든 자세로 겨우 겨우 가고, 할머니는 그 짧은 시간에 서서 스마트 폰을 열어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겨우 겨우 곁으로 오면 할머니는 참으로 야속하게도 저만치 먼저 걸어갑니다. 할아버지는 또 다시 할머니 계신 곳으로 가야 하고. 할아버지 입장에선 아무리 재활 차원이긴 하지만 할머니가 아무런 말이나 표정도 없이 무작정 저쯤 먼저 가면 얼마나 속상할까 싶습니다. 몇 년 동안 나이 많은 할아버지 재활을 옆에서 도우시는 할머니의 신세 타령도 이해가 되었지만,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할아버지 입장은 또 얼마나 답답할까 싶었습니다. 사람 일은 장담할 수 없어서 어쩌면 우리네 미래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자식들도 그들의 삶이 결코 넉넉하지 않기에 부모의 현재 상황을 어쩔 수 없이 외면하겠지요. 요즘같이 젊은 세대가 살기에 팍팍하고 어려운 현실은 젊은 세대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할 겁니다. 서로 서로 이해하면 좋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당장 자신의 현재 삶에 충실할 수밖에 없고, 오직 자신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되어 있으니 설령 부모 일이라 해도 남일처럼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하는 부모의 서운한 마음도 있을 것이고, 나 살기도 바쁜데 늙은 부모의 생활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하는 자식 의 의식도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3자 입장에서 저 노부부의 언행을 놓고 함부로 재단하여 판단하면 그것도 곤란하겠지요. 도움도 줄 것이 아니라면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겠지요. 


우리 현대사에서 근대화 과정에서 압축성장으로 고도의 경제 성장을 맞이했지만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에 비해 정신적 부분은 뒷받침되지 못한 불균형 성장의 그늘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상황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극단적인 빈부 격차로 겪는 문제일까요. 세게 10위권의 경제 대국인데도 삶이 팍팍한 서민들이 당면한 문제도 크겠지요. 나라는 잘 사는데 개인의 삶은 어렵다는 말은 오래 전 일본의 경제 상황을 언급할 때 많이 듣던 말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 나라가 그런 상황에 직면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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