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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Oct 27. 2024

모자간(母子間) 갈등도 칼로 물베기

한 달만에 집에 온 큰아들을 표나게 반기던 아내가 참으로 신기했다.

큰아들이 거의 한 달만에 집에 왔습니다. 제가 최근에 유튜브 동영상 제작 과정 강의를 듣고 있다는 것을 큰아들이 알고 저를 도우기 위해 잠깐 들렀던 것이지요. 과제를 수행하면서 1인 크리에이터로서 방송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들을 잔뜩 사가지고 왔습니다. 며칠 전부터 저에게 전화를 해서 1인 방송 관련 장비를 사두었다면서 곧 오겠다고 했는데, 사정이 생겨 오늘 잠깐 왔다가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며칠 전에도 아내의 기세 등등한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내한테 그렇게 해놓고 지가 먼저 화내고 가다니, 지가 먼저 사과하지 않으면 절대 용서 안 할 끼다. 두고 봐라. 야~가 내 성격 잘 모르는가 봐. 한 달 되어 가도 전화 한 통화 안 한다 이거지."


그 말을 듣고 제가 아내를 달랬습니다.


"큰아들도 미안한 마음 갖고 있지 않겠나. 당신한테 그렇게 불쑥 화를 내고 지 성질에 못 이겨 현관문을 나갔으니 다시 연락해서 사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시 오기도 그렇고. 어찌 어찌 하다가 직장 업무도 바쁘다 보니 잊어 버릴 수도 있는 거 아니가. 당신이나 내가 큰아~를 이해해야 한다 아이가. 솔직히 세상에서 우리 큰아들만큼 부모에게 효도하는 아~ 어디 있더나. 당신 마음 누그려 뜨려서 다음에 큰아~가 오면 못 이긴 척 받아 주는기 안 좋겠나 싶다. 그러마 큰아~도 죄송합니다라고 할지 아나."




그렇게 달래도 아내는 마음을 풀기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제 말을 그리 깊게 듣지 않은 것 같더군요. 아내 생갹엔 큰아들이 저에게만 전화했을 것이란 생각에 화가 더 난다면서 저를 빤히 쳐다봅니다. 물론 큰아들이 저에게만 몇 차례 전화한 것은 사실입니다. 저야 큰아들에게 엄마한테 사과할 것을 종용하거나 강요할 생각도 없었고, 실제로 권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지만 큰아들도 엄연히 30대 중반 성인이기에 제가 무슨 말을 해서 권하는 것도 썩 좋은 그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큰아들이 집에 온다고 하니 조금은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마음이 안 풀린 것 같고, 큰아들도 별달리 아내에게 사과의 변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은 것 같아서였습니다. 설마 제 앞에서 심하게 싸우기야 하겠나 하는 심정으로 오늘 큰아들을 기다렸지요. 저는 큰아들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온통 현관문 소리에 귀기울였지요. 아내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서재 안에서 원고 작업을 하는데, 현관문 소리가 삑삑 납니다.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입니다. 큰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딸 아이가 제 방에서 나오더니 "오빠, 어쩐 일이야. 깜짝 놀랐네."라고 환한 얼굴로 반깁니다. 저도 방안에서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원고 수정을 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큰아들이 쑥 들어섭니다. 너무나 반가운 얼굴입니다. 한 달만에 오는데도 이렇게 반갑고 고마운 얼굴입니다.


큰아들이 안방으로 들어가 아내에게 인사를 하는데 아내의 반응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갑자기 거실로 나와서 큰아들을 졸졸 따라다닙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나. 반찬 떨어진 거는 없나. 간장 양념 잘 해두었는데 가져 갈래, 참 며칠 전에 간식거리도 좀 샀는데 가져 갈래. 쌀은 있나 등등'


아니, 큰아들을 잔뜩 벼르던 아내가 막상 큰아들 얼굴을 보고 저리 좋아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옛날부터 말이 있었지요.


"부부싸움 칼로 물베기"라고.



그런데 이제 보니 모자간 싸움이나 갈등이 진짜 칼로 물베기네요.


1인 방송 장비 구입하는데 돈이 꽤 들어간 모양입니다. 아내가 그 자리에서 큰아들 계좌로 돈 보내라고 저에게 말합니다. 큰아들은 괜찮다고 합니다. 당연히 보내야 하겠지요. 그리고 큰아들이 장비만 내려놓고 곧장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제가 난감해졌습니다. 저는 이런 장비를 설치할 줄 모르기 때문이지요. 큰아들이 이대로 가버리면 저 장비들은 상당 기간 무용지물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제가 큰아들에게 말했지요.


"야야~, 바쁠 낀데 이리 와서 고맙다만 지금 이대로 가버리면 내가 저걸 설치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데 미안하지만 설치해 주고 가만 안 되나."


큰아들이 저에게 '그리 복잡한 거 아니니 조립하면 될 거'라고 하면서도 언박싱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저와 큰아들이 나란히 서서 탁자 위에 장비들을 조립하기 시작하니까 아내가 큰아들 바로 옆에 서서 우리 둘을 지켜 봅니다. 그 짧은 순간에 아내는 큰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어디 사과도 용서도 없었습니다. 아내도 내심 큰아들을 기다린 모양입니다. 저렇게 큰아들을 좋아하는 아내인데 왜 저한테는 그리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을까요. 참으로 신기합니다.


큰아들이 40분 이상 애를 써서 장비를 모두 조립하고 제가 실험 방송을 하며 최종 확인한 뒤 아들이 이젠 가겠다고 말을 건넵니다. 그래서 제가 차로 태워 준다고 하니까 큰아들이 손사래치면서 완곡하게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그렇게는 안 되지요. 결국 제가 운전해서 아들과 함께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섭니다. 그새 아내는 아들이 먹을 것을 담은 봉지를 건넵니다. 아내의 표정이 참으로 환합니다. 그리고 아들을 보내는 마음이 못내 아쉬운가 봅니다.



"야야 00아 배고플 낀데 저녁이라도 먹고 가면 안 되나."


큰아들은 괜찮다면 완곡하게 말합니다. 아내는 못내 아쉬워합니다.


아내와 아들의 지금 심정 제가 충분히 이해하지요. 예전 같으면 우리 큰아들 성격에 집에 오자마자 저와 아내를 위해 특별요리를 해서 내놓거든요. 아들 20대 초에 일본 도쿄 유학을 2년 반 했는데 일본 대학 입시는 실패하고 2년반 식당 아르바이트 경험이 남아 요리를 진짜 잘 합니다.




아들과 함께 차안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음 달 초에 직장 대표로부터 무슨 상을 받는가 봅니다. 수상자로 선정되었다고 저에게 알려 주네요. 제가 큰소리로 "축하한다, 정말 잘 되었구나. 우리 큰아들 역시 다르네. 다시 한번 축하한다. 우짜든동 밥 잘 챙기먹고 가스불 조심해라"라고 강조합니다. 그렇게 아들을 내려놓고 그 아파트 주차장을 돌아나오는데 백미러로 보니 큰아들이 고개를 깊이 숙이면서 조심해 가시라면서 저에게 인사합니다. 어릴 때부터 저렇게나 효자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에겐 한번도 큰소리를 치거나 말대꾸를 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잘난 아버비도 아닌데 저렇게 지극정성으로 제 마음을 헤아려 주는 효자라니, 너무나 고마운 큰아들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 제가 군복무 말년휴가 복귀할 때 새벽 일찍 안방으로 들어가 부모님께 큰절하고 마당에 냐려서서 다시 고개를 깊이 숙여 인시를 했지요. 대문을 나가 동구 밖을   한참 걸어 모퉁이를 돌 때 다시 한번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했습니다. 어머니도 저를 보면서 안티까움을 보이며 울음을 참으셨지요. 집 안방에서 아버지 눈치를 보시며  그 울음소리가 들릴 듯 말듯하더 마당 그리고 동구밖으로 멀어져 가면서 그 울음소리거 커젔습니다. 어머니께서 제가 큰절할 때 고개를 약간 숙이며.같이 맞절하셨지요.


"야야~00아 몸조심해서 잘 갔다온네이. 내 니만 기다린데이. 알제"


그것이 어머니 살아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고 전역 2개월 앞두고 췌장암으로 세상을 버리셨지요. 제가 휴가 복귀 후 마을 아지매들이 전언에 따르면 어머니께선 넋을 잃고 멍하니 들판을 바러보신 적이 많았답니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저를 아끼고 사랑해 주신 어머니셨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이별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단언컨대 어머니 살아 생전에 어떻게든 어머니의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에 최선을 다했었고, 어머니 말씀을 거역한다는 생각조차 먹지 않았습니다. 지금 세대는 당시 어머니에 대한 저의 마음이나 처신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지금 젊은 세대에게 그런 것을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시대가 이렇게나 바뀌었으니 말입니다. 


큰아들애게 고개 숙여 절해야 한다고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데.


저도 차창을 열고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답했습니다. 얼른 집으로 들어가라고.


집에 오니 아내 표정이 상기되어 있습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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