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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pr 28. 2023

정직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더라.

지금부터 30년 전 쯤입니다. 저와 아내는 신혼시절이었지요.  당시 처가엔 결혼하지 않은 처남과 막내 처제 그리고 장인 장모님에 아내의 할머니까지 살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장인께서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처 조모께서 부산 인제 병원에 입원하기로 예약이 되었고, 내일 내려갈 것이라고 말입니다. 


처 고모께서 제 집 근처에 살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고모님 댁에 와 있을 것이고 제가 무언가 도울 일이 있으면 부탁한다는 그런 내용이었지요. 그래서 다음 날 조퇴하고 고모님 댁에 가니 할머니께서 와 계셨습니다. 모두 환하게 웃으면서 저를 반겨 주셨습니다. 제가 절을 올리려 하니 환자는 절을 받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치십니다. 그리고 택시로 인제 대학 병원까지 갔습니다. 


택시에서 내려 할머니를 부축하니 걷기 힘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업어 병원 주차장 현관을 지나 환자용 에스카레이터에 올랐습니다. 그 순간 할머니께서 제 등에 그만 구토물을 쏟았습니다. 저도 순간 불편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정말 미안해 하셨고 맨손으로 제 양복 정장 상의 등짝을 씻어내립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고모님과 고모부님은 아예 얼굴을 외면하고 계십니다. 인상을 왕창 찡그리고 있었지요. 당신의 친 어머니고 장모님이신데 어찌 그러나 싶었지요. 그래서 고모님께 데스크에 가서 휴지를 가져오게 부탁했습니다. 환자용이라 에스카레이터가 천천히 움직입니다. 고모님이 그제서야 급하게 달려가 구내 매점에서 휴지를 가득 사와 제 등을 닦아 냅니다. 


그렇게 할머니는 정말 미안해 하셨고, 저는 괜찮노라고 진심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다행히 생각보다 큰 병이 아니어서 하루만에 수술을 잘 끝냈습니다. 장인 어른께 병원비를 알려드리려고 장거리 전화기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고모님께서 바로 옆에 서 계셨습니다. 제가 장인 어른께 병원비 영수증에 적힌 금액을 불러 드리려 하는데, 고모님께서


"최서방요, 그 금액 그대로 부르지 말고 좀 올려서 하세요. 알았지요."


제가 당황했습니다. 장인과 피를 나눈 남매지간인데 어떻게 병원비를 속여서 알려주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장인께서 저에게 처가의 이런 저런 일을 맡길 적에는 저를 밑고 그랬을 터인데, 이렇게 대놓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당시 제 심정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훗날 처남 결혼식엔 장인께서, 장인 초상 때는 장모님께서 저에게 거액의 돈이 든 예금 통장과 도장을 건네면서 일을 알아서 처리하라고 믿어주시는 분들이었지요. 저도 일체 돈문제 없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처가 형제가 1남 6녀에 제가 다섯 번째 사위인데도 장인과 장모님께서 그렇게 저를 믿고 맡기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다른 사위들을 의심해서 그렇게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 금액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데 병원비 영수증에 찍힌 금액에 50%정도 추가하여 부르라고 했던 기억은 납니다. 그래서 제가 전화를 걸려다가 말고 고모님께 한 마디 했지요. 


"고모님, 저는 처가집 사위입니다. 장인께서 저를 철석같이 밑고 일을 맡겼는데, 제가 병원비 영수증이 있은데도 병원비를 많이 부르라고 하면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병원비 외의 문제는 장인 어른과 고모님 두 분께서 통화를 하셔서 말씀을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고모님 사위가 그렇게 한다면 용납이 될까요.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병원비 영수증 그대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워낙 강하게 거부하니 고모님도 할 수 없이 돌아서서 병실로 가셨습니다. 그때 너무나 서운해 하시는 고모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저에 대한 원망이 얼마나 컸을까요. 경북 상주에서 부산까지 시집와서 살면서 외롭고 힘들었겠지요. 오빠들 밑에 막내 딸로 태어나 사랑을 정말 많이 받았을 테지요. 할머니 그러니까 고모님께는 친정 어머니가 몸이 아프니까 오빠들 말고 오롯이 고모님 자신만이 부산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현실이 얼마나 원망스럽고 답답했을까요. 사위가 좀 눈치껏 자신의 입장을 들어주면 좀 좋을까 하고 얼마나 생각했을까 싶습니다. 


세월이 지나 그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인 어른께서 제가 연락해 드린 병원비에서 단 한 푼도 추가하지 않고 보낸 모양입니다. 그건 장인 어른과 고모님 간의 사정이라고 제가 애써 생각해 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모님께 죄송한 마음밖에 없습니다.  당시 할머니는 수술이 끝나고 한 달 정도 부산 고모님 댁에 계셨습니다. 저와 아내도 가끔 들여다 보긴 했습니다. 고모님의 표정이 썩 그리 좋지 않았지만 저 스스로는 당당했습니다. 언젠가는 제 마음을 알아 줄 것이라고 확신했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중간에서 적절하게 처신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고모님께서 할머니 병 수발을 오롯이 책임지고 있고, 고모님 식구들도 매우 불편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장인 어른의 세상 요령 없는 그 성격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저야 장인 어른이 돌아가실 때까지 깊은 신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살아보니


"정직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더라."


좀더 말할까요. 할머니와 저가 그렇게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결혼 직전 처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아내는 나이 스물 셋 정말 어린 나이였는데, 비가 쏟아지는 날 경북 상주 처가를 방문하고 결혼 허락해 달라고 말씀 드렸지요. 장모님과 장인 어른은 기꺼이 허락하셨습니다. 다만 나이가 너무 어려 걱정이라는 말씀만 보탰습니다. 그 다음 해 제 나이 스물 여덟, 아내 스물 넷에 결혼식을 하였습니다. 아내가 너무 예뻐서 제가 일방적으로 좋아했었습니다. 지금도 아내를 진찌 좋아하지요. 


장인 장모님 허락을 받고, 건넌방에 혼자 앉았는데 밖에서 아내와 할머니 대화 소리가 가만 가만 들려옵니다. 할머니가 결혼을 말리는 것 같았습니다. 시골에선 꽤 부자였던 처가에서 충분히 할 수 있던 말이지요. 


"00아, 니 결혼 상대가 학교 선생이란 거 말고는 집도 없고 돈 없다 카는데 괜찮겠나. 사람은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보이는데 그래 결혼하면 살림이 너무 어려워 니가 할 수 있겠나. 느그 엄마는 사람 하나만 보고 너를 시집 보낸다고 하지만 내가 오래 살아오니 가난한 거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거든. 사랑도 금방이더라. 잘 생각해 보면 안 되겠나."


아내가 한 마디 합니다. 


"할매 걱정하는 거 안다. 그래도 난 결혼할 거다. 우리 잘 살 수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알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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