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아파트 마당을 걸어가는데, 제가 사는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의 지인께서 저멀리서 큰소리로 인사를 건넵니다. 저도 함께 목례하면서 다가가니까 매우 반갑게 맞이해줍니다. 저는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서 물었더니 그분께서,
"요새 우째 지내능교? 늘 잘 웃으니까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 같긴 한데 말이요. 난 우리 아파트 view가 워낙 좋아서 요즘 진짜 행복하다 아인교? 요전 앞새 고향에서 친구들이 이곳에 놀러왔다가 우리 아파트 전망 좋다고 그렇게나 칭찬을 하데요."
그렇게 시작된 말씀이 무슨 넋두리도 아니고 한 20분쯤 쉬지 않고 진행됩니다. 아파트 동대표자회의 일원으로 주민들 누군가 민원을 제기하면 오롯이 전달해서 해소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기에 그분께서도 그런 사안을 말할 줄 알았지요. 결국 우리 아파트가 별로 비싸진 않지만 경치 하나는 최고라는 결론입니다. 저도 그렇게 동의합니다.
오래 전에 어느 지인이 이런 말을 하였지요.
"아파트 값이 싼 지역 사람들이 늘 하는 말로 '여기는 인심 좋고 공기 좋다'고 하는데, 그건 없이 사는 사람들의 청승에 지나지 않지요. 해운대 같은 비싼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어디 공기 좋다는 둥 인심이 좋다는 말 한는 것 봤나요?"
어째 생각하면 제가 사는 동네 아파트를 폄하하는 듯하기도 해서 불편하기도 했지만, 제가 무슨 반응을 하면 그 지인은 한 마디 더할 것 같아 그냥 웃음으로 대하고 말았습니다. 그 지인 말도 그들 세계에선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 가격은 얼마나 비싼지 몰라도 평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보면 품격도 없고 옷매무새도 썩 그리 좋지 않았던 기억은 납니다. 제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걸까요.
좀전에 만난 아파트 주민께서 20분 정도 자신의 이야기만 하다가 제 눈치를 슬쩍 봅니다. 그래서 제가 말을 이었지요.
"친구분들 하고 즐거운 시간 가지셨겠네요. 그렇게들 좋아하셨으니 말입니다."
저의 이 말이 끝나자마자 이분 말씀이 청산유수로 나옵니다. 자신이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다고 판정받은 이야기부터 무리하지 않고 아파트 건물 주위를 매일 규칙적으로 걸으니까 건강이 정말 좋아졌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집니다. 그렇게 몇 개월 걷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CT 촬영 후 차트를 보면서 아주 신기해할 정도로 건강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일이라 축하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가 또 나옵니다.
"내가 세상을 살아보니 인생 별거 없더라고요. 돈 지위 명예 등은 건강 앞에는 무용지물이라오. 아프면 모든 것이 땡이 됩니다. 그리고 가장 큰 병은 뭐니뭐니 해도 '욕심' 그기라요. 욕심 좀 적게 내고 만족할 줄 알면 매사가 행복해질 텐데, 왜 지금까지 난 그것도 모르고 살아왔는지 몰라요. 내 말 잘 듣고 지금부터라도 운동 꾸준히 하시고 욕심 부리지 마세요."
글쎄요. 제 자신은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이 저를 바라볼 때는 어쨌을까요. 하기야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그 자체도 욕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스스로 판단해서 욕심 부리지 않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침 저녁 아내 출퇴근을 위해 차량 운행한 뒤 주차장에 세워놓고 만 보 걷기 위해 해안산책로를 따라 가거나 집에 돌아와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유튜브 동영상 감상 등으로 보내는 시간이 그냥 좋기만 합니다. 지금처럼 아프지만 않다면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아도 결고 남부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잘 웃는지도 모르지요. 쓸데없는 욕심이 결국 우리네 인생을 망친다는 같은 아파트 주민의 말씀, 전직 대학교수님의 건강 회복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