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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pr 28. 2023

쓰레기 내가 치울 게

딸 아이가 퇴근하면서 현관으로 들어오며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와 아내에게 늘 기쁨을 주었던 딸 아이가 하루 종일 열심히 근무하여 피곤한 표정이  역력한데도 저를 보면서 환하게 인사를 하니 제 기분도 정말 즐거워집니다. 하루 종일 아무도 없는 집에서 밀린 원고 쓰기와 책 읽기 그리고 유튜브 동영상을 통한 외국어 공부 등으로 좀 바쁘게 보냈는데, 점심 식사도 하지 않은 채 이렇게 저녁이 되었네요. 


저를 제외하고 아내와 3남매 모두 직장 생활하기에 집안 청소, 세탁, 쓰레기 분리 수거 등등이 자연스럽게 제일이 되었습니다. 막상 해보니 일도 아니더군요. 이런 하드웨어적 노동은 남자들이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하드웨워적 측면? 하기야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요. 이런 일들이 왜 여자만 해야 하는지를 요즘 와서 의아하게 생각해 봅니다. 지금에서야 주부 가사노동이 힘들다는 사실을 겨우 생각하게 된 저는 지난 30여 년 결혼 생활에서 왜 빨리 인지하지 못했을까요? ㅎㅎ.


퇴직하고 나서 주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입니다. 


"오래 오래 고생했으니 이제 조금씩 쉬어가며 지내게."


글쎄요. 현직 때보다 한결 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하고 그렇게 하루 종일 정신없이 근무하다가 저녁 무렵에 집에 오면 자신도 모르게 피곤을 느끼게 되던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지요. 늦게 일어난다고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바쁘게 살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루 하루가 그야말로 제 하기 나름이지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전에 대안학교로 출근하여 아이들을 지도하고 나머지는 자유 시간이 된다고 여겼습니다. 또 그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지역 사회에 봉사활동을 일정에 넣고 독서회 모임에 두 번 참여하니 매주 일정이 생각보다 빡빡해집니다. 거기에다가 악기 하나 배우고 지인들을 만나 저녁 식사에 술자리까지 이렇게 되니 아내가 가끔 놀립니다. 현직 때보다 더 바쁜 몸이 된 것 같다고. 


웬만하면 볼일은 낮에 마무리지으려 합니다. 저녁엔 집에서 식구들을 기다리며 반겨주려고 했습니다. 그래도 지인들이 저를 부르고 저 또한 술 한 잔 생각이 나면 지인들에게 전화를 넣고 그리 되니 매주 한 번 정도는 지인들과 둘러앉게 됩니다. 


딸 아이가 큰소리의 인사와 함께 현관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저에게 한 마디 합니다.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하지 않았네 하고 말입니다. 딸 아이는 워낙 순하고 착해서 누군가에게 곤란한 말은 좀처럼 하지 않는데, 저에게는 이런 저런 민원(?)을 제기합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왜 쓰레기 분리 처리를 하지 않았느냐는 아주 조용한 목소리의 압박을 보냅니다. 저는 평소 딸아이에게 이런 저런 부탁을 많이 합니다. 특히 책 구입을 하려고 폰 뱅킹할 때 말입니다. 



딸 아이가 뭔가 부탁하거나 이번처럼 말하면 저는 자동적으로 시행하게 됩니다. 요즘 딸 아이가 쓰레기 처리나 싱크대 설거지 등을 정말 열심히 하거든요. 하루 종일 힘들었을 텐데, 제가 이렇게 있으면 아버지라도 속으로 원망스럽지 않았을까요. 그렇다고 딸 아이가 겉으로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도 않습니다. 워낙 여리고 착한 성격이라 어린 시절부터 지금껏 부모에게 얼굴 붉히듯 표현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오빠와 남동생에게도 진짜 착한 아이입니다. 


그래서 책상에서 얼른 일어나 부엌에 있는 음식물쓰레기와 일반 쓰레기 그리고 재활용까지 가득 들고 나갑니다. 


"00아 미안해. 쓰레기는 내가 얼른 버리고 올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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