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욕설과 신화: 인간 무의식 속에 숨겨진 원시적 충동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에서 언급한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이중성은 단순히 학술적 개념을 넘어서 우리 일상의 가장 원초적인 표현들까지 관통하고 있다. 사랑의 충동과 죽음의 충동이 하나의 동전의 양면이라는 프로이트의 통찰은 욕설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현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욕설, 특히 성적 결합을 암시하는 몸짓들이 전 세계적으로 놀랍도록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의 가운뎃손가락, 서구의 중지 치켜세우기, 남미의 특정 손동작들이 모두 비슷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인간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 공통된 원형적 이미지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칼 구스타프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의 구체적 발현이기도 하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욕설들은 억압된 리비도의 표출이자 동시에 자기파괴적 충동의 발현이다. 상대방을 모독하려는 의도로 사용되는 성적 은유들은 역설적으로 생명력과 창조력을 상징하는 에로스를 파괴와 공격성을 의미하는 타나토스와 결합시킨다. 이렇게 욕설은 사랑과 증오, 창조와 파괴라는 상반된 충동들이 하나로 융합된 언어적 현상이 된다.
신화학자 조제프 캠벨은 전 세계 신화들 속에서 반복되는 모티프들을 발견했는데, 욕설의 보편성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디오니소스는 광기와 황홀경을 동시에 상징했고, 힌두 신화의 시바는 창조와 파괴를 함께 담당했다. 이처럼 신화 속 신들이 이중적 성격을 지니는 것처럼, 욕설 역시 인간 정신의 이중적 본성을 드러내는 원시적 표현이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도 욕설의 보편성은 흥미롭다. 거의 모든 언어에서 성기나 성행위를 지칭하는 단어들이 욕설로 전용되는 현상을 보인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생명력의 원천을 동시에 가장 강력한 공격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이트가 말한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결합이 바로 여기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욕설의 형태와 강도는 각 사회의 금기 시스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에 대해 개방적인 사회일수록 성적 욕설의 충격도가 낮아지는 반면, 종교적이거나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그 파괴력이 더욱 커진다. 하지만 형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적 결합을 암시하는 기본적인 제스처들은 놀랍도록 일치한다.
이러한 보편성 때문에 해외여행을 할 때 몸짓 욕설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몸짓 욕설은 즉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원시적 충동들이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넘어서는 보편적 코드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보면 욕설은 초자아의 억압으로부터 일시적으로 해방되려는 자아의 시도이다. 평상시 문명의 규범에 길들여진 인간이 극도의 분노나 좌절 상황에서 가장 원시적인 언어로 회귀하는 현상은 융이 말한 그림자(Shadow) 원형의 발현이기도 하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억누르려 했던 야성적 충동들이 욕설을 통해 표출되는 것이다.
현대 뇌과학 연구는 욕설이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이는 욕설이 단순한 언어적 표현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적 층위에서 나오는 원초적 반응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프로이트의 통찰이 현대 과학을 통해 검증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욕설의 보편성은 인간 정신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집단적 무의식의 존재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다.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하나라는 프로이트의 주장처럼, 창조와 파괴, 사랑과 증오가 뒤엉킨 인간의 이중적 본성이 욕설이라는 가장 날것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신화의 강이 현대인의 일상까지 흘러들어 우리의 가장 하찮은 말과 행동에서도 원시적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