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마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을 중용하라
춘추시대 진나라의 왕량은 천리마를 능숙하게 다루는 명마부로 유명했다. 그의 손에서 천리마는 바람처럼 달렸고,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속도를 자랑했다. 하지만 왕량이 아닌 보통의 마부가 천리마의 고삐를 잡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수레의 횡목이 꺾이고 멍에가 부러지는 참사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단순히 고대의 우화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인재 등용과 조직 운영의 본질적 딜레마를 예리하게 드러내는 통찰이다. 탁월한 인재와 평범한 관리자 사이의 부조화, 큰 비전과 작은 그릇 사이의 간극,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 이 모든 것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우나라의 우왕, 후직, 고요와 같은 뛰어난 신하들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요순 같은 성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상하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 동반자 관계였다. 요순은 이들의 탁월함을 알아보고 그들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고, 우왕과 후직, 고요는 그 신뢰에 보답하여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낸 것이다.
현대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인재는 저절로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적절한 권한을 부여하며, 실패를 용인하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리더가 있어야 한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가 없었다면 세르게이 브린의 천재성이 빛을 발할 수 있었을까? 스티브 잡스가 없었다면 조너선 아이브의 디자인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었을까?
반대로, 평범한 리더 밑에서 뛰어난 인재가 좌절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이들은 자신의 비전을 펼치고 싶어 하지만, 위에서는 "현실적이지 않다", "너무 이상적이다", "위험부담이 크다"는 식으로 제동을 건다. 결국 탁월한 인재는 다른 곳으로 떠나거나,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평범함에 안주하게 된다.
백리마를 다루는 솜씨로 천리마를 부리려 한다면 재난이 닥친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역량의 문제가 아니다. 사고방식, 일하는 방식, 추구하는 가치, 위험에 대한 태도 등 모든 면에서의 차이가 문제를 일으킨다.
평범한 관리자는 안정성을 추구한다. 검증된 방법, 확실한 결과, 예측 가능한 과정을 선호한다. 반면 탁월한 인재는 혁신을 추구한다. 새로운 시도, 창의적 해결책, 때로는 위험을 감수한 도전을 원한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이 바로 "수레의 횡목이 꺾이고 멍에가 부러지는 재난"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이런 사례를 자주 본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직원에게 "기존 방식이 더 안전하다"며 제동을 거는 상사. 새로운 기술 도입을 제안하는 팀에게 "예산이 부족하다"며 거절하는 경영진. 창의적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는 부서에게 "성과 측정이 어렵다"며 반대하는 조직. 이 모든 것이 능력의 불일치에서 비롯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조직 전체의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뛰어난 인재들은 점차 입을 다물게 되고, 혁신적 아이디어는 애초에 제시되지도 않는다. 조직은 평균 이하의 평온함에 안주하게 되고, 경쟁력은 서서히 약화된다.
흥미롭게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평범한 관리자들이 성현을 싫어하거나 고명한 의견을 달가워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뛰어난 인재를 존경하고, 훌륭한 아이디어에 감탄한다. 문제는 "성현이 추구하는 이상은 너무 높고 고명한 의견은 실행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현실적 제약과 이상적 비전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뛰어난 인재가 제시하는 아이디어는 종종 기존의 틀을 벗어나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자원이 많이 들고, 위험이 따른다. 단기적 성과를 요구받는 관리자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조직의 현재 역량과 인재의 비전 사이에도 간극이 있다. 인공지능 전문가가 최첨단 AI 시스템 구축을 제안했을 때, 조직의 IT 인프라가 아직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마케팅 천재가 혁신적인 브랜딩 전략을 제시했을 때, 조직 문화가 아직 그런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결국 "큰 재능을 지닌 사람이 작은 재능을 지닌 사람을 위해 일하려 하면, 작은 재능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시스템적 문제다.
21세기 지식사회에서 이런 딜레마는 더욱 복잡해졌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인재와 조직 사이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새로운 기술에 정통한 인재들이 제시하는 비전은 기존 조직 구조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예를 들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문가가 회사 전체의 업무 방식을 바꿀 것을 제안했을 때, 수십 년간 같은 방식으로 일해온 조직이 그 변화를 수용할 수 있을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머신러닝 기반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했을 때, 직관과 경험에 의존해온 경영진이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 바로 "이치를 추구한 의견은 버림받고, 성현의 의견은 거절당하고 배척당하는" 현상이다. 혁신적 아이디어는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묵살되고, 창의적 제안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거부된다.
그렇다면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완전한 해답은 없지만,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리더의 역량 향상이다. 백리마를 다루는 솜씨로는 천리마를 부릴 수 없다. 따라서 리더 자신이 계속해서 학습하고 성장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뛰어난 인재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조직 문화의 변화다. 실패를 용인하고, 실험을 장려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단기적 성과에만 매몰되지 않고, 혁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조직 분위기가 필요하다.
셋째, 점진적 접근이다.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꾸려 하지 말고, 작은 실험부터 시작해서 점차 확장해나가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혁신의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
넷째, 적합한 인재 배치다. 모든 인재가 모든 조직에 맞는 것은 아니다. 천리마는 천리마를 다룰 줄 아는 곳에 보내고, 백리마는 백리마에 적합한 역할을 맡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천리마와 백리마의 비유는 단순히 능력의 차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수준의 존재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하고 상호 발전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현실에서 우리는 모두 천리마가 될 수도, 왕량이 될 수도 없다. 하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서도, 더 높은 차원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지혜는 가질 수 있다. 평범한 관리자라면 뛰어난 인재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 노력해야 하고, 뛰어난 인재라면 현실적 제약을 이해하면서도 점진적으로 조직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결국 조직의 성공은 천리마 한 마리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시너지를 만들어낼 때 가능하다. 왕량의 솜씨와 천리마의 속력이 만났을 때 비로소 진정한 기적이 일어나듯, 뛰어난 리더십과 탁월한 인재가 조화를 이룰 때 조직은 새로운 차원의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천리마를 꿈꾸되 현실을 잊지 말고, 현실에 안주하되 이상을 포기하지 말자. 그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 시대가 추구해야 할 지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