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은 언제나 피곤했다. 몸을 맡긴 좌석에서 눈을 감으면 하루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회의, 보고서, 마감, 동료와의 미묘한 신경전. 현대인의 일상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하고 성취해야 하는 전쟁터 같았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비로소 숨을 쉬었다.
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고, 거실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하는 것은 서쪽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하늘의 대서사시다. 주황빛과 분홍빛이 뒤섞인 구름, 그 사이로 천천히 가라앉는 해. 냉장고에서 캔 커피 하나를 꺼내 따는 소리가 조용한 거실에 울려 퍼진다. 소파에 앉아 첫 모금을 마시며 석양을 바라보는 그 순간,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우리는 행복을 너무 멀리서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승진, 연봉 인상, 해외여행, 명품 가방. 사회는 끊임없이 더 크고 더 화려한 것을 행복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SNS를 열면 누군가의 축복받은 일상이 펼쳐지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과 내 삶을 비교한다. 그러다 보면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은 초라해 보이고, 오늘의 소소한 기쁨은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석양 앞에 앉아 있으면 그런 생각들이 부질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저 하늘은 내가 누구든, 무엇을 가졌든, 얼마를 버든 상관없이 매일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준다. 대기업 임원에게도, 신입사원에게도, 나에게도 똑같이. 이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자연의 선물을 받는다. 그것도 공짜로.
손에 든 캔 커피 한 잔. 편의점에서 산 1,500원짜리 커피다. 값비싼 카페의 시그니처 음료도 아니고, 유명 바리스타가 정성껏 내린 핸드드립도 아니다. 그저 흔한 캔 커피. 하지만 이 순간, 이 풍경 앞에서 마시는 이 커피는 어떤 고급 음료보다 달콤하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차가운 액체와 함께 하루의 긴장이 풀린다. 딸각, 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 소리마저 좋다.
거실 소파. 처음 집을 구할 때 산 가구다. 최신 디자인도 아니고, 명품 브랜드도 아니지만, 내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는 듯 편안하다. 등을 기대고 다리를 뻗으면 온몸이 이완된다. 이 소파에서 나는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고, 깊은 잠에 빠지기도 했다. 내 삶의 증인 같은 가구. 그 위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이 시간이 주는 위안은 어떤 고급 리조트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낙조를 보면 하루가 끝나간다는 안도감이 든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버텼다. 완벽하지 않았어도, 때로 실수했어도, 누군가와 다투었어도, 그래도 나는 여기 있다. 살아 있고, 돌아올 집이 있고, 이 풍경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석양은 매일 이렇게 말해준다. "오늘도 수고했어. 이제 쉬어도 돼."
행복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이런 순간들의 축적이 아닐까. 퇴근 후 집에서 맞는 고요, 창문 너머 펼쳐지는 자연의 변화, 차가운 음료 한 모금의 청량함. 이런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아니, 정확히는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그 가치를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행복하세요?" 그럴 때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한다. "네, 행복해요." 그러면 상대는 의아한 표情으로 되묻는다. "특별한 일이 있나요?" 특별한 일. 없다. 로또에 당첨된 것도, 승진한 것도,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다. 그저 매일 저녁 석양을 볼 수 있고, 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편안한 거실이 있다는 것. 이것이 나에게는 특별한 일이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행복은 필요의 충족이 아니라 욕망의 제거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가진 게 없어서가 아니라 더 많이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양 앞에서는 욕망이 잠시 멈춘다. 더 가지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들이 그 순간만큼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이 충분하다. 아니, 완벽하다.
어떤 이들은 이런 행복을 '체념'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더 이상 꿈꾸지 않고 주어진 일상에 안주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것이 체념이 아니라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내 곁에 있던 행복을 뒤늦게 발견한 것. 늘 먼 곳만 바라보느라 놓쳤던 가까운 기쁨을 되찾은 것.
캔 커피가 바닥을 보인다. 하늘의 색도 점점 어두워진다. 주황빛이 보랏빛으로, 보랏빛이 남빛으로 변해간다. 하루가 완전히 끝나가고 있다. 조금 아쉽지만, 내일도 이 풍경은 다시 펼쳐질 것이다. 내일도 나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이 자리에 앉아 석양을 볼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느낄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거창한 성공담도, 극적인 반전도 없는 이야기다.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 퇴근 후 거실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기록. 하지만 이것이 나의 행복이고, 나의 일상이고, 나의 삶이다. 그리고 이런 소박한 순간들이 모여 결국 우리의 인생을 만든다는 것을, 나는 석양 앞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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