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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08. 2023

언젠가 저 들길을 걷고 싶습니다

아직은 도회지에서 바쁘게 살다 보니 일망무제 드넓게 펼쳐진 들길을 걷고 싶습니다. 하얀 구름이 낮으막하게 떠올라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내려다 봅니다. 푸른 하늘이 간간이 보입니다. 어린 시절 추억의 들길과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가끔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무작정 걷고 싶습니다. 5월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과 나란히 걸어간다면 정말 좋겠지요. 들길 저 너머 산 녘에도 푸르름이 풍성하게 내려앉았습니다. 


조금 걷다가 힘이라도 들면 손에 들고 간 책을 펼쳐 보면 좋겠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 누군가 설치해 놓았을 평상에 편안하게 앉아서 책 몇 장이라도 읽으며 상념에 잠기고 싶습니다. 세상의 평화가 지금 저 들판 곳곳에 가득 스며들었습니다. 평상에 잠시 앉은 채 자연을 둘러보면 푸른 계절의 부드러운 바람에 젖어들어 자신도 모르게 살며시 잠이 들 듯합니다. 세상 욕심 하나 부리지 않고 저 들길을 건너가는 자신을 그려봅니다. 아무도 없어도 결코 쓸쓸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풍성한 잎을 가득 안고 서 있는 나무들을 보니까 갑자기 고향 마을 도로변 버드나무 대열이 떠오릅니다. 학교 가는 길 양쪽 나란히 서 있던 버드나무 대열 말입니다. 멀리서 보면 원근법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버드나무 대열이 한눈에 들어왔지요. 비포장도로라서 트럭 차바퀴에서 튀어나오는 돌들도, 차 뒤꽁무니에 달려가던 연기 같은 것도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학교 마치고 집에 갈 때는 버드나무 하나 하나씩 손을 대면서 걸었습니다. 친구들과 집에 가다가 나무 밑에 앉아 가만히 들판 저 너머를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어떨 때는 친구들이 저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 적도 있었지요. 제가 무슨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옛날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냥 읽은 책의 내용을 말해주는데도 친구들이 저를 빙 둘러싸고 귀를 쫑긋 하고 들어주던 모습도 생각나네요. 


다시 들길을 생각합니다. 농부가 애를 써서 다듬어 놓은 밭이 참으로 예쁩니다. 맨발로 저 속을 걸으면 정말 부드럽지요. 농부에겐 큰 폐가 되는 상상입니다만 그래도 실제 맨발로 걸으면서 땅속을 헤치면 그 감촉이 정말 신기할 정도로 부드럽습니다. 숲 저 너머에 물길이라도 있을 듯합니다. 고요히 흘러가는 물속에 손이라도 담그고 가만히 하늘 저편 하얀 뭉게구름을 올려다 보겠지요. 세상이 멈추고 시간이 정지된 듯한 들길을 지나 숲을 스쳐온 봄 바람이 제 몸을 돌아갈 듯합니다. 


오늘 문득 들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 들었습니다. 길 끝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어 좀더 여유롭게 생활하려 했지만 역시나 오늘도 바쁜 주중 일정에 들어가서 저 평화로운 들길을 걸어가는 상상을 해 봅니다. 아름다운 상상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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