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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08. 2023

3남매가 어버이날 선물과 용돈을 주기에



아내 퇴근 시간에 차에 태워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오는데 저 앞에서 상당히 낯익은 얼굴이 환한 표정으로 다가옵니다. 두 손을 크게 흔들면서 웃는 막내아들입니다. 조금 전까지도 무표정이었던 아내가 급 환해집니다. 거의 이산가족 상봉 수준입니다. 막내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의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아내가 차창을 내리자 막내아들은 


"잘 다녀오셨어요?"


크게 인사를 합니다. 아내도 아들 손을 반갑게 잡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어딜 가느냐고 물었더니 누나 퇴근 시간에 맞춰 마중나가는데 시내까지 가서 뭔가 사서 오겠다고 합니다. 막내아들은 집에 오면 저녁 무렵에 딸 아이 퇴근 시간이 되면 이렇게 시내까지 마중을 나가는 경우가 많았지요. 딸 아이도 제 동생에게 워낙 잘 해주니까 우리에겐 익숙한 장면입니다. 조심해서 다녀오너라고 당부하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큰아들이 방에서 나와 인사를 합니다. 저와 아내는 무슨 일인가 했지요. 큰아들은 아내 퇴근 시간보다 1시간 정도 늦기에 의아했지요. 무슨 일인가 물었습니다. 큰아들은 대답은 그냥 일찍 퇴근했어요라고만 답하면서 봉투를 내밉니다. 특별한 말이 없이 그냥 흰 봉투만 전합니다. 하기야 어버이날이니 무슨 "축하합니다"와 같은 멘트도 적절하지 않겠지요. 어쨌든 주중에는 직장에서 주말에는 2박 3일간 시내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하며 아르바이트 하는 생활을 몇 년 하면서 고생하는 큰아들이 용돈을 주니 고맙다곤 했지만 조금은 미안했습니다. 고맙다고 하면서 봉투를 책상 위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안방에 들어가 아내가 큰아들이 준 봉투에 돈이 좀 많이 들어 있더라고 하기에 그러면 큰아들에게 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암만 생각해도 큰아들 돈은 받기가 좀 그렇네. 다시 돌려줘야 내 마음이 편하겠다. 내가 사정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돈을 좀 보태가 주어야겠네. 지금 당장 주면 좀 그렇게 며칠 뒤 다른 핑계 대서 줄까 한다. 젊은 아~들이 돈 한참 필요할 때지 우리 같은 나이 든 사람들이 뭐 그리 돈이 필요하다고. 괜히 욕심이지. "


그랬더니 아내가. 



"그러면 그 돈 나 줘. 내가 쓰게. 나 돈 필요한 데 많은데. ㅎㅎ"



ㅋㅋ. 그건 곤란하다고 했지요. 조금 있으니 딸 아이와 막내아들이 시내에서 만나 함께 들어옵니다. 막내아들은 멀리 경기도 남양주에서 혼자 생활하던 중 어제 내려와 있다가 저녁 딸 아이 퇴근 무렵 시간을 맞춰 시내 나가 함께 들어온 모양입니다. 딸 아이는 카네이션을 전하면서 안에도 보시라고 하기에 '고맙다'면서 안을 들여 보니까 카네이션 뒤쪽에 예쁘게 돈이 들어 있습니다. 딸 아이가 준 금액은 큰아들보다 적어서 부담이 덜 됩니다. 하지만 딸 아이는 지난 설 명절에도 우리에게 용돈을 주었기에 합치면 그것도 꽤 큰돈이지요. 



막내아들은 제가 운동을 좋아한다고 운동 셔츠를 사주네요. 역시 재치가 있는 아들이라 고맙게 받았습니다. 막내 아들은 사람들과 대화를 참 유연하게 잘 하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야 세상에서 제일 귀한 우리 3남매 중 하나이니 그냥 소중하지요. 그렇게 온 가족이 완전체가 되어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막내아들만 집에 오면 온 가족이 다 모이게 되니 그것만으로도 어버이날 큰 선물입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언젠가 아이들이 각자 혼인하고 집을 떠나가면 넓은 이 집에 아내와 둘이서만 남아 적적할 것입니다. 그때가 오기 전에는 우리 다섯이 자주 보았으면 하는 것이 저의 희망입니다. 



카네이션을 보니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절로 납니다. 어머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제대로 달아드린 기억이 별로 없어서 죄스럽기만 합니다. 아버지께도 마찬가지입니다. 조만간 시간을 내어 두 분 묘소라도 찾아 카네이션을 올려야 하겠습니다. 살아 생전에 제대로 효도를 하지도 못하고 돌아가셔도 자주 찾아뵙지 못하니 진짜 불효이지요. 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어머니 아버지 살아 생전 짦은 삶을 사시고 세상을 버리셨지만 그래도 우리 형제 3남매에겐 지극 정성이셨습니다. 풍족하지 못한 농가에서 우리를 아니, 저를 대학까지 공부시킨다고 정말 고생 많으셨지요. 제대로 보답도 못 해드리고 그렇게 가셔서 늘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살아 계실 때 저와 유난히 사연이 많습니다. 농사를 도울 때도 어머니 곁에서 이야기를 많이 해드렸고, 역사에 관한 것도 재미있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드리려 노력했습니다. 




달성군 논공면 금포 돌끼장 5일장날 아침 일찍 어머니와 둘이서 손수레에 아버지가 새벽부터 솎아 짚으로 살짝 예쁘게 묶은 열무나 배추 단들을 가득 싣고 고개 마루를 넘어가던 일이 꽤 많았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함께 밀고 끌고 갔기에 시장터까지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장터에 도착하자마자 부리나케 학교까지 달려갔지만 저는 어머니 혼자 남겨두고 가는 것이 영 불편하여 열무 단이나 배추를 내려서 차곡차곡 놓았습니다. 제가 지각할까 걱정하신 어머니는 빨리 학교로 가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끝까지 다 내려놓고 학교로 갔습니다. 학교에선 이미 동네 아이들이 그 사정을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린 상태이지요. 




그 당시 담임 선생님은 논공면 삼리2동 씩실마을 광산이씨 집성촌에 사시던 이원진 선생님이셨는데, 정말 인자하셨습니다. 우리 학생들을 너무나 사랑해 주셨고 정성으로 지도해 주셨지요. 지금도 제 책상 바로 앞에서 지켜보는 듯합니다. 지각한 저를 불러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다음부터는 지각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저보다 먼저 학교에 와도 지각이라 벌을 주었는데, 저는 예외로 두면 곤란하다고 하시면서. 




하루 종일 수업을 하지만 그날은 선생님 말씀이 귀에 거의 들어오지 않습니다. 수업 마치면 오늘은 친구들과 축구할 시간도 없다. 빨리 장터에 가서 어머니를 도와드려야 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 옷 입성이 별로였어도 전  한번도 어머니를 소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주황색 한복이 다 떨어져 소매나 목 부분에 색깔이 바래진 것을 보아도 어머니 손을 꼭 잡고 교무실 전 선생님께 



"선생님 우리 엄맙니더. 엄마 000 선생님."


 

그렇게 인사를 나누면 어머니는 쑥스러워하시면서도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지인들도 신기해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들께서도 제가 지각해도 많이 봐주신 것 같습니다. 당시 벌을 받은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요. 




수업을 마치고 축구하자는 친구들을 뿌리치고 장터까지 단숨에 달립니다. 오후 중반이 되었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열무 단을 다 못 판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 책보자기를 리어카에 던져놓고 큰소리로 열심히 팔았습니다. 열무 단도 오전까지만 싱싱하여 금을 부를 수 있지 오후가 되면 시들어서 짐승들 사료밖에 되지 않지요. 그렇지 않으면 거름으로 쓸 수밖에요. 그런데 제가 너무 열심히 파니까 이웃 마을 아저씨 한 분이 와서 나머지 다 사주셨습니다. 어머니와 먼 친척되시는 분이시고 어머니와 종씨로 '창원황씨'였습니다. 




이런 사연이 꽤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학교에서 받은 상장을 장터에 가서 어머니께 전해드리면 어머니는 그 상장을 열무 단 사이에 끼워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게끔 하시며 자랑하려 하셨지요. 채소가 다 팔리고 나서 집에 가려 하면 상장에 채소 물이 가득 배어 있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미안해 하면서 앞 치맛자락으로 열심히 닦았습니다. 




그런 추억이 떠오릅니다. 제 딴에는 어머니께 잘 해드린다고 했지만, 역시나 일찍 세상을 버리신 어머니 아버지께 불효자란 생각만 가득 드는 밤입니다. 살아 생전에 카네이션 하나 제대로 달아드리지 못한 기억이 저를 가슴 아프게 합니다. 우리집 아이들 3남매는 저보다 훨씬 멋진 자식입니다.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우리집 아이들 3남매 언제까지나 건강하고 행복하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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