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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09. 2023

참으로 고맙구나

멀리 집으로 돌아와 이틀 쉬고 돌아가는 막내아들과 마주 앉았습니다. 평일이라 아내 큰아들 딸 아이는 출근했고, 막내아들은 오후 기차로 올라갑니다. 월급도 박하고 용돈도 넉넉지 않을 텐데 어버이날이라고 멀리까지 와서 부모에게 얼굴이라도 한번 보여주려 일부러 찾아오니 참으로 고맙기만 합니다. 오전에 인근 '학교 밖 교실 아이' 한 명에게 수능 대비 EBS 교재를 매주 화요일마다 봉사 차원에서 2시간씩 수업하고 집에 오니 막내아들도 어디 잠깐 외출하고 돌아온 모양입니다. 


직장 근무살 만하냐고 물으니까 특유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요즘 살기 어렵지요. ㅎㅎ." 라고 하면서도 환한 미소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갑자기 맛있는 요리를 준비한다면서 드실 거냐고 물어봅니다. 막내아들이 직접 준비해 주는 점심 식사인데 뭔들 제가 거절하겠습니까. 맛있게 만들언 내놓았습니다.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집에 와서 이틀 지내며 3남매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장면도 고맙고, 가끔 아내 곁에서 셋이 번갈아 가며 재미있는 이야기들 들려주는 모습도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큰아들이 어제 많이 준 용돈 일부를 떼내어 막내아들 서울 가는 차비로 보태줄까 합니다. 막내아들이 펄쩍 뛰겠지만 그래도 주고 싶습니다. 큰아들에겐 당분간 비밀이지요. ㅎㅎ. 아침에 언뜻 들으니가 큰아들이 막내에게 돈이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걸 봐서 아마 차비 조로 얼마 건넸을 것 같아요. 


세월이 흘러가서 3남매가 각각 가정을 이루면 지금처럼 용돈을 서로에게 쉽게 전해줄 기회가 줄어들겠지요. 나중에 그럴 때는 그럴 때고 지금 저렇에 3남매가 서로 지극하게 아끼는 걸 보면 이것 또한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막내 아들이 제 카드로 어젯밤 서울가는 kTX 표를 끊었기에 제가 놀렸지요. 


"야~야, 내 카드로 표 끊었던데,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진짜 농담이었는데, 우리 막내아들이 갑자기


"안 그래도 취소하고 다시 끊었어요. 아버지께 너무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서요."


엥! 이건 아닌데, 제가 그런 의도가 아닌데 하면서 다시 대화를 이어갑니다. 더 더욱 막내아들에게 차비를 주어야 할 이유가 생겼지요. 


막내아들은 제가 근무하던 학교를 졸업했기에 3년 간 제 타를 타고 등교했습니다. 성격이 참으로 무던하면서도 예의가 발랐지요. 선생님들도 막내아들을 이뻐했습니다. 성적이야 그리 빼어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조수석에 나란히 앉은 막내아들과 함께 등교하는 날들이 좋았습니다. 가끔은 교무실에 몰래 혼자 와서 용돈을 부탁하던 때도 있었지요. 그런 일도 이제 생각하면 모두 추억이 됩니다. 

지금 이 순간 서로 마주 앉아 점심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다는 것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더욱이 오늘은 주중 평일 화요일인데 말이지요. 이틀 간 집에서 너무나 편하게 잘 잤다는 막내아들이 집에만 오면 형 누나가 그렇게 자기에게 잘 해주고, 부모님이 반겨 주셔서 저절로 힐링이 된다는 말도 고맙더군요. 


조금 있으면 부산역으로 나가 서울로 떠나겠지요. 제가 태워주려고 해도 괜찮다고 극구 사양하지만 그래도 제 가 고마운 마음에 태워주고 싶은 걸요. 


우리집 아이로 태어난 것도, 학창 시절 부모의 자존심을 세원 것도, 늘 우리 부부에게 살갑게 대해주었던 일도, 항상 예의바르게 처신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를 가득 받은 것 등등 막내아들을 보면 모든 것이 참으로 고맙지요. 흰 봉투에 막내아들 줄 용돈을 넣으며 일어섭니다. 안 받는다고 극구 사양하고 저는 주려 하고 한참이나 시루겠지요. 그래도 그냥 고마운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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