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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09. 2023

최저(崔杼)의 군주 시해

배은망덕한 군주를 처단하다

간언에 관한 한 최고의 인물인 제나라 안영(晏嬰) 제장공에게 아래와 같이 간했다. 

       

장공(莊公)이 용력(勇力)을 자랑하며 의()를 행하려 하지 않고          


                                   古者亦有徒以勇力立于世者乎.          

옛날에도 역시 오로지 용력(勇力)만으로 세상에 우뚝 섰던 자가 있었습니까?”     



제장공은 참으로 무도하고 음탕한 임금이었다. 제장공 통치 당시 제나라에 최저가 우상(右相으)로서 정권을 잡고 있었다. 제장공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실세 최저는 동곽언의 여동생인 과부 당강(棠姜)에게 재취 장가를 들었다. 당강은 그 용모가 당대 제일 미인이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제장공이 최저의 후처 당강에게 반해 두 사람이 그만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최저의 입장에서 보면 제장공은 천하의 배은망덕한 사람이었다. 지난 날 제장공이 군주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이 그야말로 험난하였다. 그런데 최저가 적극적으로 도와서 제장공을 군주로 등극하게 했는데, 제장공이 제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둔 최저 바로 그 사람의 부인을 남몰래 사랑하다니. 제장공은 자주 최저의 집에 은밀하게 행차했다. 하지만 최저도 제장공과 당강의 관계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제장공을 없애기 위하여 때를 기다렸다. 

          

어느 날 거(莒)나라 임금이 제나라에 조공을 바치러 왔다. 제장공이나 최저 모두 거나라의 조공을 자신의 목적에 활용할 생각으로 기쁘게 받아들인다. 제장공은 거나라 임금의 방문을 핑계로 당강을 은밀히 만나려 하고, 최저는 제장공을 그 순간을 이용하여 군주를 제거하려 한 것이다. 제장공은 거나라 임금이 직접 조공을 바치러 온 것을 크게 기뻐하며 최저의 집근처인 북곽에다 잔치를 베풀고 거나라 임금 일행을 대접했다.                


제장공이 최저의 집 근처에서 연회를 베풀겠다는 의도는 뻔했다. 대신들이 그 연회에 대부분 참여하였지만, 최저는 병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다. 최저의 의도를 모르고 있던 제장공의 마음 속엔 오직 당강과의 밀회뿐이라, 거나라 임금을 대충 접견한다. 마음이 급했다. 오직 당강의 모습만 어른어른할 뿐. 제장공이 병문안을 핑계로 최저의 집에 가기로 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최저는 당강과 부하들에게 세심한 계획과 임무를 부여하고 많은 무사들을 매복시켰다. 당강에게도 이번 거사에 협조하면 지난 날의 모든 허물은 덮어주고 당강의 소생을 후사로 삼겠지만, 만약 협조하지 않으면 먼저 당강과 아들을 베어버릴 것이라고 협박하였다. 이에 당강도 최저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한다. 어디 지조나 절개니 하는 도덕적 이상이 그녀의 뇌리에 있기나 하였겠는가. 하긴 당강의 입장에서 군주 제장공과의 의리를 지켜야 할 이유도 없었을 터이니.

          


제장공은 연회가 끝나기 급하게 당강을 보려고 최저의 집으로 갔다. 최저의 측근이 제장공에게 최저가 병이 깊어 약을 먹고 안방에 누웠다는 말을 전한다. 이 모든 것이 최저의 계략의 일환이었지만, 제장공은 사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곧장 당강이 있는 내실로 들어갔다. 그 때 최저가 급하게 찾는다는 기별을 듣고 당강이 내실로 들어간 사이 최저가 미리 잠복시켜 둔 수많은 무사들이 들어와서 제장공을 쳐 죽였다. 결국 최저는 기회를 노려 장공을 살해한 기세를 타고 국정을 장악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군신관계가 엄격한 계급 사회에서 신하 최저가 임금을 시해한 쿠데타였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성공한 쿠데타는 죄를 물을 수 없다는 희대의 명언도 있긴 하지만 최저의 제장공 살해 당시 제나라의 사관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최저가 임금을 시해(弑害)했다.”

                                                                                  崔杼弒其君          


후에 사관의 기록을 알게 된 권력자 최저가 사관에게 정정을 명령했다. 신하가 군주를 살해한 것을 의미하는 ‘시해(弑害)’에 부담을 느낀 것이다. 제장공은 임금이 아닌 일개 간통한 사내일 뿐임으로 하극상에 해당하는 시해(弑害)라는 용어 대신 주살(誅殺) 혹은 극(殛)이라는 말로 바꿀 것을 강요하였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다. 최저 자신이야 제장공에 대한 분노로 쿠데타를 시도하여 제장공을 살해하는 데 성공했지만, 역사서에 신하가 군주를 시해했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남는다는 점이 꺼림칙하여 수정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사관은 단칼에 최저의 명령을 거부했고, 최저는 그 자리에서 사관을 살해했다. 그런데 새로 선임된 사관은 앞서 살해된 사관의 동생이었다. 그 역시 똑같이 ‘최저가 장공을 시해했다’라고 썼다. 사관의 양심으로 쿠데타와 시해 사건을 사실대로 적은 것이다. 군주를 살해한 쿠데타 세력의 주모자라면 그 위세는 하늘을 찔렀을 터.       


         

하지만 당시 사관 형제는 그런 위세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의 기록을 남겼다. 극도로 분노한 최저는 다시 두 번째 사관을 위협하며 고칠 것을 명령했지만, 이번에도 신임 사관이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다며 맞섰다. 최저는 두 번째 사관까지 살해했다. 이어 부임한 사관도 이전 그 동생이었고, 그 또한 최저의 명령을 거부한다. 군사 쿠데타 세력의 핵심인 최저의 명령을 거부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쿠데타를 벌인 박정희나 전두환 세력에게 맞선 군인들의 비참한 희생을 생각해 보라. 그런데도 최저의 쿠데타를 사실 그대로 기록한 형제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역사를 한 자도 수정하지 않았다. 세 번째 사관까지 죽일 수는 없었다. 결국 이 기록은 역사에 남았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관 형제들의 자세는 훗날 역사가가 사실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가에 대한 커다란 교훈을 주었다.    


               

제장공의 무도한 행위와 그 비참한 결말을 보면 그는 분명 용력만 믿는 우매한 군주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명재상 안영이 제장공의 용력 자랑에 논리정연하게 간언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제장공과 그 측근 세력이 용력만 믿고 설치면서 정작 인의를 행하지 않으려 하니, 이 나라가 어찌될 것이며, 측근들의 횡포 또한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를 지적했다. 안영의 논리정연한 주장에 제장공이 할 말을 잃었다. 다혈질의 강성황제 한 무제에게 이릉을 옹호하는 간언 때문에 사마천은 너무나도 수치스럽고 끔찍한 궁형을 당했다. 반면에 용력을 자랑하는 군주에게 역사적 사실을 들어 조금은 우회적인 방법을 써서 간언을 한 안영은 군주를 설득하여 국정을 현명하게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사실상 직언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그는 목숨을 유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강포한 군주를 충분히 설득하고 국정을 주도해나갔다.      

          

사마천이나 안영 모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군주에게 간언하였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직간은 간결하고 선명하다.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직간은 군주를 최종 설득하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고 간언하는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영이 행한 간언은 직언에 가깝지만, 군주를 충분히 설득하고 국정을 훌륭하게 끌어갔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물론 안영이 사적인 이익을 전혀 추구하지 않고 오직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면서, 평소 절제와 검소로 일관한 삶을 살았던 점도 소홀히 여길 수 없다. 게다가 안영이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 겸손한 자세까지 견지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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