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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12. 2023

옆 반에 가시지 마세요

대안학교 아이들의 개성은 정말 다양하고 뚜렷하다. 간섭은 절대 불가하며 일반 학교 학생들을 생각하고 대하면 큰코 다친다. 그렇다고 그들의 행동 모두를 묵인하자니 속으로 부글 부글 끓을 것 같다. 일반학교 35년 근무하고 대안학교에 시간강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 입장에서 생각을 해주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퇴직 교사에게 이런 가르칠 기회가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이라 매사 너그럽고 부드럽게 넘어가려고 한다. 그래도 가끔 도저히 내 상식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학생을 만나면 실로 난감해진다. 속으로만 불편할 뿐 뭐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래도 이곳에서 열심히 생활하는 이유는 대다수가 의외로 발랄하고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고 다가오는 대부분의 아이들을 보면 내 평생 몸담았던 교직 생활을 바탕으로 최대한 그들 편에 서서 생각을 전해 준다. 아이들이 옆에 와서 나의 실력을 과대 평가하면서 조언을 구합니라고 하면 난 절대 그 정도 실력을 갖춘 사람이 못 된다고 미리 밝힌다. 대신에 30여 년 입시 현장에서 익혔던 방법이라면 방법일 수 있는 것을 전해 주려 애쓴다. 


나를 제외한 선생님들은 젊다. 원로교사로 예우해주는 그들이 고맙다. 하지만 그들의 하루는 매우 고달프다. 아이들의 출석 시간이 하루 종일 늘어지기에 전화로 출석을 독려하는 것이 일상이다. 내가 월요일, 목요일 이틀만 출근하기에 시간적 여유가 많다. 가끔 출근하면서 젊은 선생들을 위로할 겸 커피를 몇 잔이나 사서 갖다드린다. 조그마한 선물에도 너무나 가뻐하는 그들이 오히려 고마워 점심 식사 후 시내를 걷다가 양말 가게에 들러 양말을 많이 사서 한 켤레씩 선물을 하면 여자 선생님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감사 인사를 한다. 지금 이 나이에 그들과 한 공간에서 호흡하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솔직히 내가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어떨 때는 이 아이들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상당수 학생이 긴 시간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여 잠이 매우 부족하다. 가끔은 배달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이 근무복에 헬멧까지 쓰고 등교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등교하자마자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아예 내 곁에 상주하며 자신이 하고픈 말들을 쏟아낸다. 젊은 선생님들이 부담스러워하는 학생이라 그는 늘 내 곁에 앉아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핀다. 툭툭 던지는 세상에 대한 불만이 꽤 많다. 그러면 내가 한 마디 하게 된다. 


"어제 알바한다고 고생했제. 힘들지 않더나. 어디 몸은 아픈 데 없나.  그렇게 힘들게 생활하면서도 이렇게 등교하는 00가 정말 대단하다."


그러면 이 아이 표정이 급 환해진다. 자신의 삶이 좀 힘들긴 해도 알바비를 많이 받아서 견딜 만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제가 이 학교 오기 전에도 그랬지만 세상에 저보고 생활 잘 한다고 칭찬하거나 격려해 준 선생님은 없었습니다. 여~서 처음입니다. 집에 아버지와 둘이서 지내는데 대화도 거의 없고, 아버지는 제 인생에 관심이 아예 없습니다.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몸이 아픈지 안 아픈지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아닌지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도대체 아버지는 하루를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굼하지도 않는가 봅니다. 그래도 선생님만은 이렇게 저를 이해해 주시고 칭찬하시고, 친절하게 말해주니 제가 돈을 좀 벌면 진짜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거 대접하고 싶습니다. "


그리고 자신은 나중에 학교를 졸업하여 사회에 진출하면 지금 하고 있는 배달아르바이트를 레벨 업 level-up시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어쩌면 내가 여기서 근무하면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실제적인 역할인지 모른다. 어떤 아이는 내가 고3 대학입시를 장기간 지도했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입시 기술자로 오해하여 물어오는 경우도 있다. 결코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다. 여기 오는 아이들도 대학 입시에 관심이 매우 많다. 지금부터 공부하여 수능시험에서 과목 당 2등급이 나올 수 있는가 물어오는 학생도 있다. 그런 학생은 따로 면접하여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공부해야 한다는 정신교육을 하고 매일 일과표를 어떻게 짜고 어떤 자세로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무슨 교재를 쓰는 것이 좋은가. 대부분 학생들이 사용하는 EBS 교재의 바람직한 활용도 제시한다. 그러면 아이는 지금 당장 시작하겠노라 큰소리친다. 그렇게 시작하는 아이는 드물다. 단지 나랑 상담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 목적이 있는 듯하다. 그래도 정성껏 상담에 응해야 한다. 


그리고 젊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연령 차이가 그래도 적어서 그들끼리 대화가 잘 될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선생님들의 업무가 의외로 빡빡하다. 하루가 정말 바쁘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나에게 아이들에 다가와 이것 저것 물어본다. 그들이 내게 다가와 질문하는 것 자체가 고맙기만 하다. 그들에게 난 엄청난 노인으로 여겨질 테니까. 이제 열 여덟 열 아홉 청춘들이 은퇴한 60대와 무슨 말을 섞고 싶을까. 오늘은 짤막한 한자 문장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 내용이 마음에 들었는가 보다.


"샘~, 오늘 가르쳐 주신 順之者昌 逆之者亡 순지자창 역지자망 도리에 맞게 따르면 창성하고 도리에 어긋나게 하면 망할 것이라고 하셨잖아요. 도리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해야 할 올바른 행동이나 마음 자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잘 했다고 말하려 하는데, 그 아이는 내 말은 듣지 않고 여러 가지 질문과 대답을 쏟아냅니다. 자문자답인데도 열심히 신나게 전개한다. 저는 순간 이 아이가 내게 뭔가 말하고 싶기는 했던 걸까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아이 말에 맞장구만 쳤고, "맞아", "그렇지", "그랬구나", "아이고 네가 그런 생각까지" 등을 연발한다. 여기 대안학교 학생 중에 이렇게 질문 공새를 많이하는 경우가 드물어 열심히 응해 줍니다. 30분 정도 듣고 나니까 이제 그만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아이가 잠깐 말을 멈추는 틈을 타서 내가 


"야~야, 옆 반에 잠깐 다녀올게. 아이들에게 뭔가 말해야 할 거 잊어버렸네."


그러자 아이가


"옆 반에 가지 마세요. 할 말이 진짜 많이 남았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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