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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11. 2023

징징 문 여소

스무 살 우리 마을 정월 대보름날 동네 사람들 잔치에 함께 불렀던 노래

"징징 문 여소. 정월 초하루 닫은 손 정월 초하루에 열어 주자. 징!. 2월 이틀 닫은 손 2월 이틀 열어 주자. 징!. 삼월 사흘날 닫은 손~~~~~~~~"


앞에서 삼성 아재가 징을 치며 큰 소리로 메기면 따르는 동네 사람들이 합창을 하면서 5~6미터 되는 기둥을 꼿꼿이 세운 채 호흡에 맞워 한 발짝 정도 옮깁니다. 동네 형님들이 기둥을 함께 옮길 때 저는 그 안에서 형님들 호흡을 느끼며 같이 이동합니다. 형님들이 내 어깨를 잡고 조심하라고 당부합니다. 혹시라도 발이 밟힐까 신신당부합니다. 중열 형님은 내 팔을 살짝 잡으면서 기둥이 한 발짝 이동할 때마다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왜 저를 형님들 속에 굳이 넣어서 같이 가는지 모르고 그냥 따랐습니다. 상권 아재는 풍채 좋은 분이라 대감으로 분장하여 도포에 갓을 썼으니 그 또한 잘 어울립니다. 



설날이 지나고 정월 대보름 날 우리 마을 대동제 축제가 해마다 열렸지요. 지금이야 노령화되고 젊은이들이 마을에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그 아름다운 정월 대보름 대동제를 하고 싶어도 못 해 안타깝기만 합니다. 지금까지 남았다면 전국 최고의 축제 모델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오후쯤 시작된 대보름 대동제가 동네 한 바퀴 골목골목을 돌아 저녁 무렵이면 마을 사람들이 지칠 만도 한데 아직도 신이 납니다. 그러면 마을 한 가운데 태원 형님과 태말 아재 집 사이 넓은 마당에 모여 신나게 농악을 울립니다. 이곳 큰 마당은 우리 마을 놀이터였습니다. 보름달이 떠서 온 세상이 환하게 빛날 때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던 시절 우리들은 밤늦게까지 그곳에 모여 놀았습니다. 닭싸움, 비사치기, 공기놀이, 줄넘기, 동네 숨바꼭질 등등 정말 다양한 놀이를 하며 밤을 보냈습니다. 우리 마을 출신 사람들에게 넓은 백구마당은 추억의 공간이요, 그리움의 시간입니다. 그곳에서 마을 이장 직선제 선거도 하였지요. 아버지를 이기려고 김수 아재는 동네 사람들 앞에 일장연설을 하면서 아버지의 이장 역할 부족을 설파합니다. 결국은 아버지가 선거에서 이기셔셔 10여 년 장기집권하게 됩니다. ㅎㅎ.


정월 대보름날 마을 대동제엔 동네 사람들이 대부분 참여합니다. 지금처럼 비닐하우스 토마토 특작을 하기 전이니 가능했겠지요. 설날에 집에 다니러 간 각 집 사람들이 보름날까지 있다가 이 대동제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 넓은 마당에 사람들이 가득 모였고 마을 아재들이 만든 농악대가 마당을 돌며 신나게 징, 북, 꽹과리, 장구를 울립니다. 상권 아재는 꽹과리 고수였고, 우리 아버지는 큰 북을 하루 종일 치셨습니다. 하얀 광목띠로 그 큰 북을 온몸에 짊어 안은 채 장단에 맞춰 큰 북을 치시던 아버지 살아 생전 모습이 생생합니다. 아버지 북 장단이 세상 최고로 보였고, 저를 볼 때마다 미소 가득한 얼굴이셨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북 장단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참! 어머니가 노래를 잘 하신데 비해 아버지는 음치셨습니다. 하긴 아버지 노래를 한번도 들어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어머니는 '방랑시인 김삿갓'과 '엽전 열 닷냥'을 정말 구성지게 부르셨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렇게 알고 있답니다. 


넓은 마당에서 한 바탕 신나게 놀던 마을 사람들이 상권 아재의 꽹과리 장단에 맞춰 이번에 마을 윗쪽으로 걸어가며 노래를 부릅니다. 


"징징 문 여소. 정월 초하루 닫은 손 정월 초하루에 열어 주자. 징!. 2월 이틀 닫은 손 2월 이틀 열어 주자. 징!. 삼월 사흘날 닫은 손~~~~~~~~"


노래는 아주 간결합니다. 그래도 이 노래가 우리 마을 전체 사람들이 함께 부르니 정말 신기하게도 장단이 잘 맞습니다. 노래 내용은 잘 모르지만 이렇게 기억하지요. 마을 위쪽은 이장을 오래 하시던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몇 번 가보았지만, 평소엔 출입을 잘 하지 않았습니다. 대나무 숲이 왕성하게 서 있던 곳에 몇 몇 집들이 있었지만, 그 집 안에는 좀처럼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정월 대보름 대동제엔 마을 사람들 전체가 그 집들을 돌면서 복(福)을 빌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마을 전체를 다 돌고 마지막으로 우리집에 들어섭니다. 웬일로 어머니께서 한복을 입으시고 우리를 반겨주십니다. 두 팔을 크게 펼 친 채 마을 사람들을 들어오라고 하시면 정말 환한 미소로 반겨주십니다. 



대문이 없던 우리집은 마을 아래 쪽에 위치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시로 들렀습니다. 면사무소 직원들이 오기도 하고, 동냥을 얻으로 온 걸인들이 대문 없는 집을 무시로 드나들었습니다. 어떨 때는 스님이 한참이나 염불을 하고 계시면 어머니가 부리나케 달려 나가 바가지에 가득 담긴 쌀을 드립니다. 그리고 두 손으로 합장하면서 스님과 마주보며 고개를 숙입니다. '라면'이 먹고 싶다며 우리집 저녁 밥상머리에 앉았던 걸인처녀의 정신나간 모습도 기억이 나네요. 아버지가 감기에 걸려 입맛이 안 돌아 어머니께서 라면을 끓였는데, 그만 실성한 그 처녀가 다 먹고 달아났습니다. 마을 이장은 월급이 안 나오고, 마을 사람들이 봄 가을에 두 번 보리와 쌀 곡식으로 추렴하여 우리집 마당에 가득 가득 내려놓았습니다. 낙동강변 홍수로 마을 전체 전답이 잠겨 곡식을 구경도 못하게 되었을 때, 이장이 우리집 마당엔 면사무소에서 트럭으로 보낸 구호양곡 밀가루포대가 가득 가득 쌓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엄명으로 새벽 일찍부터 형과 제가 지게로 집집마다 지고 배달하느라 고생도 좀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줄지어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마당엔 호마이 판이 두 줄로 세 판씩 총 6개가 놓였습니다. 그 위엔 제가 평소에 좀처럼 구경 못한 음식들이 그야말로 진수성찬, 산해진미로 가득가득 쌓였습니다. 오후 내내 형수님들이 정성껏 마련한 음식입니다. 당장이라도 달려 들어 먹고 싶지만 참았습니다. 마루에도 막걸리를 비롯한 각종 음식들이 쌓여 있습니다.  마을 농악대가 대문쪽에서 각종 악기를 크게 크게 울리고, 우린 또 크게 불렀습니다. 아버지 큰북 소리가 유난히 큽니다. 어머니가 마루 쪽에 서서 간단한 춤을 큰 동작으로 추시고, 형수님들이 박수로 화답을 합니다. 저도 크게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왜 우리집에서 마을 사람들의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머니만 유독 한복을 입으시고 우리를 환영하며 큰 동작으로 춤을 추셨는지, 아버지의 큰북 소리는 왜 그리 컸는지 다음 날 알았습니다. 그해 제가 대학에 합격하고 우리집에서 낙동강변 수박밭을 샀다고 마을 대동제 유사가 되었습니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대동제 축제 유사는 그해 가장 잘 된 집에서 맡도록 묵시적으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먹을 음식은 오롯이 우리집 부담이었습니다. 마당에 있던 호마이판 음식은 아재들이 대부분 드셨고, 아지매와 형수님들은 마루에 둘러 앉아 담소와 함께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지매들이 저에게


"야~야, 니 느그 엄마, 아버지 은공 잊아뿌마 안 된데이. 대학 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와서 우리 마을 키아조야 한데이. 니 덕분에 우리가 아지매 음식 맛나게 묵는다. 고맙데이."


형수님들도

"디럼(도련님)! 덕분에 우리 잘 묵겠심더. 시집 올 때 요만하이 해가 쫴맨하더이 벌써 스물 살이나 묵었능교. 어려븐 대학도 합격하고 키도 이렇게나 쑥 컸뿠네요 그지요. 아지매 보람 있겠심더. 알라 때부터 공부를 그렇게나 쎄게 하더이 오늘 이렇게 됐네요. 디럼도 마이 묵으소. 우리도 잘 묵겠심더."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크게 빌어준 덕분에 우리 집안에 복이 많이 많이 들어왔겠지요. 우리집 3남매를 비롯한 조카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는 것 또한 그 옛날 어머니 아버지가 정월 대보름날 마을 축제에서 해주셨던 은혜 덕분이 아닐런지요. 



참,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 합격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좀 쑥스럽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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