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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16. 2023

그집 누나는 어때

오늘 오후 거리를 걸었습니다. 포근한 햇살에 바람도 참으로 청량했습니다. 어쩌다 낯익은 얼굴이 지나가면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모르는 사람도 길가다 만나면 인사를 건네봅니다. 그러면 대부분 "안녕하세요."라고응해줍니다. 초여름 기운이 완연한 길거리에 나뭇잎마다 연초록 향기가 가득 가득 들어 있습니다. 


어제 졸업생들과 오랜만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중에 어느 녀석이


"우리 이렇게 자주 만나려면 선생님께서 건강을 잘 유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학창 시절에 저희들 마음을 잘 이해해 주셨기에 이렇게 만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20년은 만났으면 좋겠는데, 어떠십니까?"


"나야 그렇게 생각해 주면 정말 고맙지. 그런데 20년이 지나도록 지금처럼 건강할지 그건 장담 못하겠네. 최선을 다해야지. 어쨌든 너희들이 날 그렇게 생각해 주니 정말 고맙다. 나도 부족한 점이 정말 많았는데도 좋게 기억해주어 부끄럽다."


지금부터 20년이라 그냥 생각만 해도 고맙지요. 어떻게 보면 지금부터 20년 세월이 지난 삶의 과정보다 훨씬 길 듯하기도 합니다. 이젠 노쇠할 일만 남았기에 좀더 건강에 유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기야 건강에 신경써야 잘 죽는다는 말을 들었지요. 약에 의존하고 병원 출입을 많이 하면 만성질병으로 두고두고 고생하다가 세상을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늘 운동하면서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다가 가급적 편하게 죽는 것이 좋지요. 



벚꽃 흔적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연초록 나뭇잎이 새롭게 자랍니다. 자연의 순환이라 정말 신기하고 아름답습니다. 봄바람에 부드럽게 날리는 나뭇잎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순환할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하겠지요. 하지만 마음만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순수하기 그지없는 그 어린 시절의 꿈많던 날들을 떠올려 봅니다. 이번에 만난 졸업생들 중의 하나가 저에게 어린 시절 추억거리가 많을 듯한데, 어떠냐고 물었지요. 긴 인생에 추억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마침 그 졸업생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까 하다가 떠올린 추억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학교 수업을 일찍 마치고 집에 오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방 한쪽에 차려놓은 점심밥을 얼른 챙겨먹고 들판으로 걸어갑니다. 녹색 기운이 들판에 가득하고 논밭에서 일을 하시던 아지매, 아재들이 반가운 미소를 띠고 반겨줍니다. 우리집 밭은 낙동강변에 있어서 2~3km 정도 걸어야 합니다. 어릴 때 그 농로는 정말 멀었습니다. 우리 밭이 저 멀리 보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형이 나란히 서서 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발 걸음이 급해집니다. 작은 둑이 두 줄로 나란히 달리고 그 가운데로는 물이 흘러갑니다. 농사짓기 용수였지요. 물이 정말 맑았습니다 


둑에 올라서기 전에 그 들판에서 가장 넓은 과수원이 있었습니다. 과수원들은 대부분 산녘에 붙어 있는데 이 집 과수원은 신기하게 들판에 있었습니다. 논을 밭으로 바꾸어 과수원으로 개간하였지요. 그집은 농사에 승부를 걸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밭을 논으로 바꾸어 쌀농사로 승부를 거는데 그집은 과수원 사과로 바꾸었지요. 그리고 과수원엔 낯선 얼굴이 많았습니다. 과수원 사과나무 곳곳에 사람들이 달려 전정 작업을 비롯한 농약치기 나무 밑 풀베기 등등에 일손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과수원집은 전답도 많아 인근에서 최고로 부잣집이었습니다. 장기간 머슴살이 하는 사람이 4~5명 있었고, 단기간 일하는 노동자도 10명 정도나 되었지요. 저녁에 그집에 심부름 가면 머슴들이 먹는 밥을 목격하게 되는데, 고봉밥이라 하여 밥그릇에 밥을 가득 쌓아 올려 정말 신기했습니다. 그릇을 나눠 담으면 될 텐데 왜 그리 위태롭게 쌓아올렸을까 하고 의아해 하기도 했습니다. 


과수원옆으로 난 농로를 따라 우리 밭을 향해 열심히 가는데, 과수원 끄트머리 나무에 매달려 뭔가 작업하는 소녀가 살짝 미소를 띠고 저를 바라봅니다. 그애와 저의 거리는 불과 3m 정도였습니다. 햇빛가리기 용 꽃무늬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 미소가 정말 포근하였습니다. 순한 얼굴에 눈망울이 왜 그리 크게 다가오는지. 둘이서 별 말은 없었고, 저도 그냥 그 자리에 서서 그애를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그애는 일하다 이쪽으로 힐끔 힐끔 보고 저는 눈치껏 눈이 마주치지 않게 살짝 보았습니다. 말 한 마디고 하지 않고 그냥 미소만 보내는 그애와 얼굴을 몰래 훔쳐본 저가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애의 인상과 미소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과수원에 일하는 다른 사람들이 오면서 저도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날 저녁 그애의 순하고 착한 얼굴이 한참 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예쁜 여자애개 학교도 가지 않고 하루 종일 그집에서 힘들게 일을 해야 하나. 그집 아버지 엄마는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그애를 힘들게 일하게 할까. 내일 다시 과수원에 가서 한번 더 볼까 등등 생각에 잠겼지요. 


그래서 궁금한 나머지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엄마 과수원 있잖아. 정원 형님네 과수원 오늘 들에 갈 때 거기를 지나가는데, 일하는 여자애가 나무에 올라 일하다가 가지끝을 죽 늘여잡고 한참이나 나를 보더라. 착하게 생기고 눈도 큰게 얼굴도 정말 이뻤어. 그집 누나는 어때?"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저만 가만히 쳐다봅니다. 그리고 사연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온 가족이 그집에 들어와 먹고 자면서 머슴살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잘못되어 오갈 데가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면서 과수원집에서 미리 돈을 지불하여 그 가족이 몇 년 일을 해야 하는 상화이라면서. 


그 말을 들으니 그애가 더욱 궁금해지고 얼굴 한번 더 봤으면 싶었지요. 어머니는 더 이상 무슨 말도 하지 않았지요. 단 그애를 만나지는 말았으면 하고 완곡하게 표현하시긴 했지만요. 소년의 가슴에 남은 그애의 그때 착한 얼굴이 지금 50년을 넘어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딱 한번 본 얼굴인데 지금도 그 모습이 얼마나 생생한지요. 저와는 불과 두세 살 차이 정도였으니 하늘 아래 어디에선가 살아 있겠지요. 갑자기 과수원집에서 기약없이 가족 전체가 머슴살이해야 하는 상황에서 학교도 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뼈빠지게 일해야 하면서도 착한 미소로 바라보던 그애 얼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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