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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16. 2023

지금 이 순간 어머니께 전화해라

부산 자갈치 시장쪽에 있는 신동아횟집 1층 밀양상회에서 졸업생들을 만났습니다. 이젠 이들도 50대 초반에 막 들어섰으니 이름부르기도 어색할 법한데도 자연스럽게 이름이 나옵니다. 퇴직한 저를 초대해주는 것이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32년을 한 곳에서 근무하고 퇴직했으니 켜켜이 쌓인 우리들의 이야기가 줄줄이 나옵니다. 좋은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추억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또 함께 마실까요와 함께 건배합니다. 


오랜만에 온 신동아시장 손님들이 가게마다 가득합니다. 제 가게는 아니지만 괜히 저까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경기가 살아야 가게 주인들이 활기를 되찾을 것이고 그렇게 모여 모여 전체 경기도 좋아질 것 같습니다. 일요일 저녁에 외국 여행 단체 손님도 많이 들어오고 생선을 잡아 올리는 주인의 표정도 한결 환합니다. 코로나 이후 이렇게 활기찬 시장을 보면서 졸업생들과 저녁을 맛있게 먹습니다. 하고픈 말도 많았습니다. 저도 졸업생들의 이야기를 듣겠노라 했지만 술이 한 잔 한 잔 들어가면서 스스로 말이 많아짐을 실감합니다. 



횟집에서 즐겁게 식사하고 인근 호프집으로 옮겨 2차를 합니다. 실내가 조용하네요. 제가 평소에 자주 가는 곳입니다. 졸업생들에게 저녁을 얻어 먹고 그냥 보내가 뭣해서 이곳으로 오자고 했지요. 그렇게 맥주 몇 잔씩 들이키고 참석한 전원에게 어머니 살아 계시냐고 물었더니 모두 잘 계신다고 합니다. 언제 안부 전화했느냐고 물었더니 15분 전에 했다는 졸업생, 어제 했다는 졸업생 외엔 한 달 내에 전화를 드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버이날에도 직접 찾아뵙지 못하고 선물과 용돈만 보내드렸다고 합니다. 그것도 잘 했노라 칭찬해 주었습니다. 다들 한창 바쁘게 사는 삶이라 그런 여유가 없었겠지요. 그래서


"모두 휴대폰 꺼내. 오랜만에 내가 지시한다. 지금 이 순간 어머니께 즉시 전화해라. 스승의 날이라고 날 이렇게 챙겨주는 것은 정말 고맙다만 그래도 어머니께 전화 한 통화도 할 여유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노. 지금 전화해라. 만약 어머니가 왜 전화했냐고 물으시면 선생님께서 강제로 시켜서 했다고 해라."


밤 10시가 넘어 잠드셨을 것 같다는 졸업생도 있었지만, 강제로 전화를 걸게 했습니다. 세상에! 전원 각자의 어머니와 열심히 전화 통화를 합니다. 그 장면이 정말 아름답고 보기 좋았습니다. 진짜 선생님이 강제로 시켜서 전화했다는 눈치없는 녀석도 있네요. ㅎㅎ. 


목소리가 유난히 크고 밝은 졸업생은 통화 소리가 요란합니다. 


"엄마~ 잘 있지요? 하하하 며칠 전에 매형이 엄마 줄라꼬 해물요리 사가지고 간다 하더니 잘 먹었어요? 저도 잘 있어요. 누나 셋에 볼볼볼 하다가 스트라이크가 바로 나 엄마가 정말 잘 키워준 아들이지요. 하하하. 오늘 자갈치에 왔다가 선생님 모시고 저녁 식사하고 맥주 한 잔 하는데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하라고 시키대요. 그래서 이리 전화한 깁니다. 학창 시절에 우리 선생님 부모에게 효도 잘 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오늘은 아예 이렇게 하게 만드네요. 밤늦게 전화해서 놀랬지요. 지금 이 시간에 잠도 안 자고 계시네요. 우쨌든 건강하이소. 또 전화할게요."


또 다른 녀석은 비교적 차분합니다. 


"지금 이 시간 잠을 잘 것 같아 전화하기 좀 그랬어요. 엄마 아버지도 건강하십니까. 며철 전에 전화 드리고 지금 이렇게 전화하니 좀 쑥스럽긴 해요. 전번에 몸이 조금 아프다고 했는데, 지금 어때요. 조만간 00엄마랑 집에 들를게요. 엄마가 안 아파야 우리 아~들도 엄마 옆에 가서 재롱도 부리고 할 거니까 건강 잘 챙기세요. 참 이번 달에는 용돈을 원래 날짜보다 좀 일찍 보낼게요. 편안하게 주무세요."


또 다른 녀석의 말은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엄마 지금 이 시간 잠잘 시간 아니에요? 우리 선생님이 강제로 전화하라 카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엄마 기분 좋지요? 저도 잘 있습니다. 자주 전화 드려야 하는데, 하는 일이 바빠서 이렇게 됐네요. 이해해 주세요. 00엄마 하고 이번 주말에 같이 갈게요. 그때 뵈어요. 건강하세요. 잘 주무세요."



다른 녀석들의 통화 내용은 거의 듣지 못했지만 표정은 모두 밝고 환합니다. 이 미션 잘 시킨 것 같습니다. 다음에 졸업생들과 만나면 이 미션을 지속적으로 실행하게 하려 합니다. 잘 했지요. 어머니와 아들은 그야말로 천륜 중에 천륜이 아니던가요. 가장 가까운 사이라서 평소엔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 보내는 일이 많지요. 효도가 무슨 큰 돈이 필요한가요. 따뜻한 전화 한 통화에도 어머니는 정말 기뻐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가 아들 목소리 아닌가요. 하기야 요즘엔 딸이 더 중요하다고 하기도 해요. ㅎㅎ.



깊은 밤에 전화를 해도 어머니가 기차게 알아챕니다. 그리고 반갑게 받아줍니다. 참 신기하지요. 그리고 밤 늦게까지 아들의 음성을 다시 한번 음미하면서 괜히 미소도 지어봅니다. 자식이 보내주는 말 한 마디가 어머니의 삶의 질을 확실히 높여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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