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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15. 2023

"내가 뭐 해 주꼬, 도와줄 끼 있나."

현직에서 물러나 본격적인 노후 생활에 접어든 지금 대안학교 이틀 근무, 학교 밖 아이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 학습지도 봉사활동, 액티비 시니어 네트워크 "물때 읽는 사랑방", 독서 토론모임 "老子가 옳았다.", 독서모임 "대우독서회", 남자들만의 만남"아사달" 등에 참여하면서 바쁘게 보냅니다. 아직은 건강하니 노후 생활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좀더 노쇠해지면 진짜 노후 위기를 경험하게 되겠지요. 그렇다고 미리 당겨서 걱정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훗날 그런 위기가 오면 그건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진리거니 하고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전화를 걸어 "부탁드릴 거 있는데요. 지금 통화 괜찮을까요?"라고 물어오면


제 대답은 


"그래 내가 뭐 해주꼬, 도와드릴 끼 있나."


가 주로 나옵니다. 대부분 후배들이 무슨 일을 하다가 곤란한 때 전화를 걸어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일이 있는데 제가 전화를 해주십사 하는 것부터 부탁이 참으로 다양합니다. 실제로 100%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일단은 상대방을 안심시켜야 하지요.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쌀쌀맞게 대하는 일은 결코 없지요. 대부분 제가 도와드리지만 혹 어떤 경우 도저히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사안도 있습니다. 그때는 뒤에 제가 다시 전화해서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넵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펄쩍 뛰면서 


"그래도 긴 시간 전화를 받아주고 제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시지만, 그래도 한참이나 그 일을 떠올립니다. 다른 방법으로 도와줄 수 없을까. 세상에 태어나서 나의 조그만 능력도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고맙고, 좀더 능력이 있었다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함께 생깁니다. 이런 것이 나이를 먹은 영향인 것 같습니다. 


길을 가다가 벚꽃 나무에 새롭게 돋아나오는 연초록 나뭇잎을 봅니다. 기둥은 거무튀튀하니 색깔만 보면 영낙없는 고목나무처럼 보이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아주 싱싱한 새 잎이 쏙쏙 나와 초여름 공기를 상큼하게 만들어 줍니다. 퇴직 후 고목처럼 되버린 제 인생에 저렇게 다시 새로운 잎새가 나오길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서 관심이 가는가 봅니다. ㅎㅎ. 인생에서 저런 일은 전혀 불가능하지요. 대신에 마음이라도 그렇게 새롭게 먹고 주위 사람들을 대하려 합니다. 그건 충분히 가능하겠지요.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겠다는 마음만 가지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습니다. 그리고 예전 같으면 도와줄 의지가 없어서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 일도 외면하였지요. 바쁘다는 핑계로. 이젠 그런 핑계도 의미가 없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많으니 주위에 도움줄 수 있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들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점차 소외되어 갑니다. 


<사람들이 나를 소외시킨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소외당하지 않게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면 좋겠습니다.>


좋은 친구 좋은 사람을 찾으려 하지 말고 내가 먼저 그렇게 행동하면 그 주위엔 저절로 그런 사람이 모이기 마련입니다. 이제 이 나이가 되어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뒤늦었다고 보지만 그래도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아가렵니다. 말로만 그럴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이 저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뭐 해 주꼬, 도와줄 끼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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