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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14. 2023

"당신, 망고 먹어 볼래"

일요일 낮에 쓰레기 재활용 분리수거하고 가까운 마트로 걸었습니다. 햇살도 아름답게 내리고 나뭇잎 잎들이 싱싱하게 세상에 나오기 시작합니다. 지난 봄에 거리에 가득했던 벛꽃행렬이 사라져 가고 그 틈새로 여린 잎들이 묵은 나무 둥치에 새 삶을 키워냅니다. 연초록 잎새마다 햇살이 곱게 곱게 내려앉았습니다. 아름다운 날씨에 걸어가니 기분도 한결 좋아집니다. 오가다 만난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마트에 가서 생활용품을 사고 계산하려는데 계산대 옆에 망고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코로나 2차 접종 후유증으로 2년 가까이 고생하고 있는 아내가 어제 한의원에 갔더니 한의사가 음식 섭생이 매우 중요하니 가려서 먹어야 한다고 매우 강조하더랍니다. 지금껏 제가 정성들려 만들어 먹인 '해독주스'에서 토마토와 당근은 체질 상 좋지 않으니 제외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A4 한 장에 주의할 음식과 그렇지 않은 것을 빽빽하게 정리한 것을 보여 주네요. 영양제로 먹고 있는 아미플렉스 세이크도 자제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내에게 제가 그랬지요.



"무슨 한의사가 그 따위로 말 한단 말이고. 이렇게 먹지 말라는 것이 많으면 도대체 무엇을 먹으라 카더노. 그 놈 참 웃기는 놈이네. 그 한의사한테 다음에 가면 내가 그 카더라고 해도~. '한의사 니는 앞으로 밥 자체를 먹지 마라고 할 끼다고.' 당신이 지금껏 겨우 겨우 견뎌내가~ 여~까지 왔는데 한의사란 놈이 무책임하게 그 따위 말을 하다니 내가 다음에 한의원에 들르면 꼭 그럴 끼다. 쓸데없이 음식을 가리니 말니 하지 말고 니부터 아무 것도 먹지 말고 굶어 봐라라고."


아내가 빵 터집니다. 한의사는 우릴 생각해서 가릴 음식을 알려주었는데, 정작 남편이란 사람이 한의사 보고 식사 자체를 하지 말라고 말하니까 그것이 그렇게도 웃기게 들리는가 봅니다. 그렇게 옆에 없는 한의사 욕을 하면서 아내와 제가 또 그렇게 웃었습니다. 그래도 전문가인 한의사를 공격하다니.ㅎㅎ


그런데 잠깐 스쳐가다시 본 것 중의 하나가 야채나 과일은 괜찮다고 한 점입니다. 사과는 곤란하고. 특히 '망고'는 전혀 괜찮다고 한 부분이 제 뇌리를 스쳤지요. 그래서 오늘 마트에 간 김에 '망고'를 샀습니다. 




집에 돌아와 쓰레기 분리수거 가방을 걸어놓고 싱크대로 가서 두 손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아내 병간호 시기에 손씻기는 철저히 했지요. 아내에게 가서 


"당신, 망고 하나 먹어볼래. 한의사가 괜찮다고 한 것이 기억나서 한번 사와봤다. 묵을래?"

그러자 아내가


"당신 어제는 한의사를 그렇게 욕하더니 왜 망고는 사왔는데. ㅎㅎ. 좀 주세요. 한번 먹어 보께."


제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망고 껍질을 깎아냅니다. 사과 같은 과일에 비해 쉽지 않네요. 껍질이 너무 부드러우니까 칼질하면서 손에 잡는 것이 쉽지 않고요. 그리고 망고 속에 딱딱한 부분의 의외로 크더군요. 그러니 망고 중 먹을 수 있는 부분의 양이 아주 적습니다. 조금씩 잘라 접시에 올려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망고 특유의 달달한 맛이 입에 맞았는지, 아내가 순식간에 다 먹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두 손으로 접시를 머리 쯤에 들고 공손하게


"진짜 감사합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라고 합니다. 어린 아이 같이 장난스럽게 고마워합니다. 아내가 저렇게 맛있게 먹었다고 감사 표시를 하니 제 기분이 좋습니다. 장기간 병원 신세를 지거나 병원 출입을 하면 웃고 싶어도 웃음이 나오질 않습니다. 사람들은 웃으면 그냥 정신건강에 좋다고 무작정 웃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환자 입장에선 세상 만사 다 귀찮은 법입니다. 웃음이 나올 여력이 있던가요. 그냥 눈감고 누워 있고 싶을 때가 많지요. 먹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입맛이 아예 사라집니다. 그래도 아내가 망고를 맛있게 먹고 저렇게 환하게 말을 건네 주니 참으로 고맙기만 합니다. 


그래도 저만하니 다행이란 생각이 많이 듭니다. 우리집 아이들 3남매도 가끔 저에게 전화를 걸어 괜찬으시냐고 물어옵니다. 처음엔 아내 상태를 많이 물었지요. 이제 아내의 컨디션이 점차 나아지니 제가 보이는 모양입니다. ㅎㅎ. 아이들에게 전혀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길 당부했습니다. 


"아직은 내가 건강하고 우리 가족 중에 유일하게 직장 생활하지 않고 있으니 내가 엄마를 돌보겠다. 하다 하다 안 되면 너희들에게 투탁하마" 라고 했지요. 


집안에 중환자가 발생하면 환자 하나에 가족 중 한 두 사람이 묶이게 마련입니다. 결과적으로 가족 전체의 삶의 질이 엉망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환자는 놓고 건강한 사람들이 삶의 질 어떻고 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지요. 그래도 냉정하게 판단하여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제가 책임지고 엄마를 돌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로 나아진 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요새는 아내가 저에게 짓궂게 놀리기도 합니다. 처가는 시골에서도 부농이었고, 저희 집안은 그야말로 한미한 농사꾼 집안이었으니까요. 


"당신 어렸을 때 이거 안 먹어 봤제?"


이런 질문 나오면 백발백중 제가 못 먹어 본 음식입니다. 제가 답하는 것을 망설이면 아내는 그 음식을 어떻게 만들어 먹는지 상세하게 알려 줍니다. 아마도 아내가 환자가 아니었다면 그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길게 듣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아내의 설명을 다 듣고 보면 결론은 늘 저를 놀리는 것으로 맺습니다. ㅎㅎ. 그렇게라도 환자가 즐거워한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들어줄 수 있겠지요. 아내는 저와 달리 동남아 국가 여행 경험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망고를 먹어 본 기억이 많은가 봅니다. 저는 솔직히 망고 주스는 가게에서 사먹은 적이 있지만 망고 열매를 오늘처럼 직접 껍질을 벗겨서 먹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앞으로 어딜 다녀와도 망고를 많이 사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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