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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14. 2023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으나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평소처럼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 끓입니다. 책상에서 아주 오래 된 李元壽 編 『中国故事成辞典』 첫 내용이 눈에 들어옵니다. 文選』  <雜詩> 중 작자 미상의 古詩 18수의 제 14주 첫머리에 나오는 시가 제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고등학교로 진학하고 대학까지 그리고 35년이란 긴 세월 한우물을 파면서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특별히 아팠던 적도 별로 없고 힘든 시기도 거의 없었지요. 아내와 아이들과 오손도손 그야말로 정답게 살아왔습니다. 젊은 날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지금도 지난 세월에 후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재미나고 좋았던 날들이라 여깁니다. 



시골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추운 겨울날 기억입니다. 높다란 천장에 바람은 왜 그리 차가웠던지 이불 속에 들어가 도무지 밖으로 나오기 싫었습니다. 얼굴만 빼꼼히 이불 밖으로 내놓고 마당의 기척을 살피기도 했지요. 책상에 앉아 책이라도 보려면 너무 추워 어머니께서 특별히 달성군 논공면 돌끼장 5일장(3일과 8일) 가서 사오신 담요를 온몽에 둘렀습니다. 책을 읽으려 하면 자꾸만 담요는 흘러내리고 한손으로 담요을 잡고 또 한 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그렇게 보낸 겨울이 생각납니다. 



시골에 있을 때 너무 추운 그곳을 떠나 조금이라도 따뜻한 지역에 살고 싶었습니다. 고교 연합고사를 치르러 옆집에 살던 친구의 사촌집에 하루 묵었습니다. 그때 도시 아파트의 낮은 천장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방안은 밤새 따뜻하고 책 읽기도 좋았습니다. 입시 하루 전 날 오후는 실제 고사장 자리를 확인하고 돌아와 조용히 쉬면서 다음 날 대비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라고 당시 중학교 선생님의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난생 처음 겨울 밤에 따뜻한 방안의 경험은 정말 새로웠습니다. 밤늦게까지 책을 읽었습니다. 함께 간 친구는 사촌들과 어울려 떠들썩하니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요. 그 친구는 실업계 야간 공고에 원서를 내서 그랬는지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별로 없었던 모양입니다. 또 친구의 숙모님이 정말 친절하였습니다. 제가 혼자 있는 것을 알고 과일을 깎은 것을 쟁반에 담아 가져와서 시험 잘 치르라고 격려도 하셨습니다. 



연합고사 치르기 하루 전 날 밤에 어머니는 쌀 두 되와 여러 간식거리를 보자기에 싸서 주셨습니다. 신신당부합니다. 


"야~야, 니 혼자 보낼라 카이 영 마음이 안 편하지만 우짜노. 00 친척집에 가서 하루 자고 시험 치고 온나. 그라고 이 쌀은 그집에 꼭 전해라. 그래도 공짜로 얻어무마 안 된다 아이가. 혹시라도 그집 아~들하고 친하게 잘 지내고 시험 잘 치고 온나. 있제 돈은 단다이 잊아뿔지 말고 어~이. 배 곯으면 절대 안 되이 돈 아끼지 말고 사묵고 옆에 친구들도 같이 사주고 그래라. 오가는데 정신없이 다니다가 차사고 나면 절대 안 된다 알았제."


무슨 과거 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왜 그렇게 요란하게 하시는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지요. 그냥 가서 하루 자고 시험치고 오면 되는 것 아닌가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을 뿐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남의 집에 하루 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아오면서 느끼게 됩니다. 어머니가 옆집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을 것이고 그집 아지매는 대구 동서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을 터. 그리고 친구 숙모께선 조카만 와도 불편한데 조카 친구까지 따라오면 또 얼마나 성가신 일이었겠습니까. 아마도 마지못해 동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오는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얼마나 신경이 쓰였을까요. 


친구 숙모님께 어머니가 주신 쌀 두 되를 전했을 때 그분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무슨 이런 일에 쌀까지 가져오다니 하는 표정이었지요. 그냥 도로 가져가라고 하셨지만 어머니의 엄명이 있었기에 절대 그럴 수는 없었지요. 그래도 숙모님은 안 받는다고 하셨지만 결국 전해드렸습니다. 그 덕분인지 시험은 무사히 잘 치르고 그렇게 고교생활을 시작으로 도시에서 40년 가까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교직을 시작한 뒤 긴 세월 평탄하게 살았습니다. 어쩌면 정해진 길을 쉽게 살아온 듯하고 어찌 생각하면 그 가운데서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매사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 가짐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추운 겨울>이미지가 강했던 시골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소년 시기를 보내고 고교시절부터 도시에서 생활하며 바쁘게 살면서 그 삶의 영역에 정신없이 보낸 세월 뒤안길에 이젠 다시 고향에 돌아가 은거하면서 독서와 글쓰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고향 마을 우리집 그곳이 너무나 가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춥고 고달픈 농촌 시골 삶이 이젠 그리움의 대상이 될 줄은. 나이가 들어도 그곳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살고 있으리라고 믿었지요. 제가 언제든 도시 생활에 지쳐 낙향하면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 배인 시간과 공간은 여전히 저를 반겨주리라 생각했습니다. 



누가 그랬던가요. 인생은 눈깜짝할 사이에 다 흘러가버린 것 같다고. 눈 한번 감았다가 떠 보니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지요. 수십 년 긴 세월 오래된 것은 분명한데 어떻게 이렇게 눈깜짝할 사이라고 여겨지는 것일까요. 인생무상 참 많이 들은 말이지만 지금 이렇게 되고 보니 그 말이 바로 제 신세가 되었네요. 시골 마을에 그 많던 어른들은 다 사라지고, 장대한 청년이던 형님들이 벌써 70이니 80이니 하고 쇠약한 몸으로 하루 하루 지는 해가 되어 가고 있네요. 가끔 시골 마을에 들러 그래도 낯이 익은 얼굴을 보면 너무나 반갑지만, 휠체어에 앉아 저를 반겨주긴 하지만 몸을 제대로 운신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장면이 눈물납니다. 반갑긴 한데,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그냥 두 손만 꼭 잡고 얼굴에 미소만 가득한 장면 말이지요. 


참으로 꽃같이 이쁘던 형수님들도 유모차에 기대어 동네 골목을 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출입하지 않았던 시골 마을에 오랜만에 들어섰다가 지나가는 할머니 두 분께 말을 걸었는데, 세상에~ 집안 형수님이라니. 그것도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얼굴을 보던 착한 형수님 얼굴이 낯설게 보여 말을 걸기가 좀 그랬다니 참으로 세월이 야속합니다. 아무리 마스크를 해도 그렇지 눈만 봐도 알 수 있을 텐데. 옆으로 스쳐 지나가도 모르고, 저만치 지나가다 다시 돌아와 


"아이고, 디럼 아인교. 덩치를 봐도 디럼 같더라만 혹시나 실수할까 말 못 했네. 디럼도 그렇지 형수 얼굴도 모르겠던교. 동서는  잘 있고, 아~들도 잘 있지요. 인자 아~들도 치울 때가 됐을 낀데."


이제 시골 고향 마을로 돌아가고 싶으나 문패만 대문에 붙어 있고 집은 날로 쓰러져 가는 고향 마을의 집들처럼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너무나 안타깝기만 합니다. 



去者日以疎   가는 자는 날로 멀어지고   

來者日以親   오는 자는 날로 친해지네.

出郭門直視   성문을 나와 바라다보니

但見丘與墳    보이는 것은 언덕과 무덤

古墓犁爲田    옛 무덤은 갈아엎어 밭이 되었고

松柏摧爲薪    소나무 측백나무 잘려 땔감이 되었구나.

白楊多悲風   백양나무에 서글픈 바람 부니

蕭蕭愁殺人   쓸쓸한 수심이 사람을 잡는구나.

思還故里閭   고향 마을로 돌아가고 싶으나

欲歸道無因    돌아가려도 갈 길이 없다. 


                                                             

 남북조 시대에 남조의 양(梁)나라 때 소통(蕭統), 심약(沈約), 유협(劉勰) 등이 등장하면서 이후의 한시 발전에 큰 업적들을 남긴다.  특히, 양나라의 태자인 소통(蕭統, AD 501~531/시호는 昭明太子) 은 진(秦) 과 한(漢) 왕조 시대를 거치며 전래되어 온 한시 8백 여편을 모아 '문선(文選)' 이라는 시집(詩集)을 편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왕조 성종(成宗) 시대 (AD 1478년)에 서거정(徐居正) 선생과 여러 선현(先賢)들에 의해서 '동문선(東文選)' 이라는 한시집을 발간하였는데, 문선(文選)이 등장한 이후 1천 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후였다.



 


















 


 


《고시19수》 중 14수.《문선<잡시>》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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