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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21. 2023

"몇 시에 드시러 오실 거예요?"

대안학교 선생님들이 점심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 제가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하루 전 날 참석하겠다고 약속한 터라 미안했지요. 저는 상근직도 아니고 담임 선생님도 아닌 그저 시간강사에 불과한데 굳이 포함시켜야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그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에게 보통 분이 아니신데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꼭 오세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젊은 선생님들께도 큰 영향을 끼치는데 오셔서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야 해요."

라고 어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네요. 


그렇다고 밥 한 그릇 얻어 먹겠다고 쭐레 쭐레 가서 옹색하게 앉아 궁색한 모습 보이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말이 그렇지 나이 먹은 사람이 '좋은 말씀' 한다고 뭐 그리 대단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나이 든 사람이 그런 자리에 앉으면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법입니다. 옆에서 뭐라고 한 말씀 하시라고 권하면 정말 마지못해 겨우 말을 해야 합니다. 그것도 2분을 넘기기 않도록 애를 씁니다. 언젠가 어느 모임에서 저를 비롯한 몇 사람이 인사말을 하는데 제가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짤막하개 끝내고 다음 사람이 비교적 길게 말하는데, 그 내용이 제가 들어봐도 괜찮더군요. 아하! 나도 저렇게 말할 걸 하는 후회가 잠시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이 그 다음에 만나 담소를 나눌 때 해준 말입니다. 


"지난 번에 간단하게 인사하시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 뒤에 그분 뭐 그리 씰데없이 길게 줄줄 하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영 기억이 안 나던데요."


저에 대한 칭찬과 제 뒤에 말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함께 나오니 제가 마음이 좀 그랬지요. 저를 좀 띄어주려 남을 제 면전에서 그렇게 비난하면 오히려 불편해집니다. 이런 사람은 또 다른 자리에 가면 필시 딴 말을 할 것이거든요. 


'지난 번에 인사한 그 사람 00씨는 뭐 그래. 아무 내용도 없는 말을 그냥 하고 앉아버리는데 그럴려면 뭐 인사를 하는 건지.'  등등



언젠가 졸업생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데, 그중 한 아이가 어디 SNS에서 보았다면서 자신의 인생의 교훈으로 삶는 표현을 들려주더군요. 맹자孟子의 말이라면서 '지도자가 큰 인물이 되게 하기 위해 시련을 준다. 그 시련을 이겨야 리더가 된다.'라면서 말이지요. 같이 자리한 아이들이 박수 치면서 동의하였습니다. 저도 박수를 치긴 했습니다만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맹자의 이 말을 인용한 이유는 자신의 친구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면서 맹자의 말을 생각하며 전했다기에. 


제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맹자의 말씀의 취지는 동의한다. 그런데 내가 살아보니까. '좋은 충고는 귀에 거슬리는 법이다.' 라고 해서 충고를 하는 것을 아주 좋게 여기지만 내 경험 상 충고는 안 하는 것이 좋더라. 충고하려면 다시는 안 볼 각오하고 해라. 그리고 상대방에게 잘못을 충고해서 바뀌는 사람이 별로 없다. 감정만 상하지. 오히려 그 사람의 특정 행동을 칭찬해라. 그러면 대부분 사람들이 칭찬도 좋아하지만 스스로 뭔가 잘못이 있지 않을까 스스로 판단하더라. 스스로 판단하고 시정하는 것에는 남의 충고보다 타격이 별로 없지. 그래서 충고로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말고 오히려 칭찬으로 통해 의사를 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굳이 충고하려면 특히 자식들에게 뭐라고 하고 싶으면 미리 칭찬할 거 많이 찾아 해주고 다음에 '딱 하나 이것만 바꾸면 얼마나 좋을까' 정도로 해라."


지금 대안학교 선생님들이 저를 좋아하고 따르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 앞에서 제가 뭐 잘난 것이 있다고 '좋은 말씀'한다니 좀 어색합니다. 오히려 가끔 그들이 좋아하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단체로 사가지고 가서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지요. 그렇게 출근길에 커피를 사서 주면 하루가 기분이 좋아진다니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다음에 전체 식사 모임이 있을 때 전화가 와서 


"몇 시에 드시러 오실 거예요?"

라고 한다면 얼른 달려가서 그들이 좋아하는 커피를 테이크아웃하여 사다 주려 합니다. 우리 같은 노후 세대가 할 일은 그들에게 어쭙잖은 충고나 좋은 말씀이 아니고 격려와 칭찬뿐이니까요. 그리고 환한 웃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유머와 재치가 곁들여지면 더욱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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