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단 Aug 31. 2016

천기누설

침선수필

앞에 앉아서 가만히 살펴본다.   

앞 가르마에 반쯤 하얗게 센 머리를 하나로 묶어 넘겼다.    얼굴은 가무잡잡한데 입술도 좀 두툼하고 진한 것이 밥풀 깨나 붙게 생겼다.   게다가 그 눈썹이 걸작이다.  길게 자란 눈썹이 글쎄 광대뼈가 있는 곳까지 내려와 있다.  일명 호랑이 눈썹인데  그 눈썹 때문에 이 사람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도사의 얼굴로는 아주 안성맞춤이다.    

“올 가을에 이동수가 있어.  아주 보따리를 싸고 있는 형국일세.  그러니 어디서 스카우트 제의가 오거나 이직할 기회가 생길 거야.”    

“네에,  그렇군요.”  

도사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너무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도사님, 원래 그렇게 눈썹이 기세요?”   

“응, 꿈에 산신령을 만난 뒤로 이렇게 길어졌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이 돌아온다. 

‘산신령?’  


나는 점 집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음력설이 되면 용하다는 점 집에 꼭 신년 운수를 보러 간다.   ‘입춘대길’이라고 쓰여있는 노란 부적을 받아다가 현관에 붙이기도 한다.   그리고 동쪽이 길하다는 말이라도 들으면 이사할 때 가급적 동쪽으로 옮길 수 있도록 맞추는 편이다.   지나고 보면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알쏭달쏭 하지만  타고난 팔자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 자꾸만 생겨나니 어찌하겠는가.   점 집이라고는 하지만 보통 생년월일을 가지고 사주팔자를 풀어서 얘 기해 주는 곳이 대부분이다.   특히 연초에는 다달이 운세를 알려준다.  예를 들면 음력 일월에는 건강을 조심해야 하고  사오월에는 이동수가 있고 또 칠 팔월에는 교통사고 날 운세이니 멀리 여행을 가지 말라는 둥,  아주 연간 스케줄을 짜 준다.    그러면 수첩에 잘 적어와서 일 년 동안 두고 보는 것이다.   언젠가 가보았던 곳은 좀 달랐다.   생년월일도 묻지 않고 내 얼굴만 빤히 보더니  마치 연필이 저절로 움직이기라도 하듯이 이상한 그림을 마 구 그려대면서 얘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주 잘 맞추는 것이었다.   귀신이 들렸다고 했다.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의 강렬한 호기심은 그 생각을 눌렀다.   그 뒤로도 어디에 누가 잘 맞힌다는 이야기에 여전히 귀가 쫑긋하는 편이다.   


이런 독특한 취미생활(?) 때문에 주위에서 듣는 말도 많다.   

어디에 용 한 점쟁이가 있다며 같이 가보자는 말이 제일 먼저 들린다.   그다음엔 모두 다 미신이라며 쓸데없이 돈만 쓴다는 말이,  사람의 사주팔자는 있지만 다 해석하기 나름이라며,   한마디로 점쟁이 말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말도 들린다.    또, 사주니 주역이니 모두 다 통계에 의거한 학문 일 뿐이니 그저 그 보편적인 결과를 모두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여태까지 들어 본 충고 중에서 가장 으뜸은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 중에 가장 하급이 사주팔자이고 그 위에 수상(손금)이 있고 그 위에 관상이,  그리고 가장 위에 심상이 있다는 말이었다.   즉, 마음먹은 대로 하는 것, 사람의 의지,  선한 마음 뭐 이런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인데  이 말에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누군가 타고난 팔자가 더 맞느냐,  아니면 사람의 의지가 더 중요한가 하 는 질문을 한다면,  나의 대답은 ‘글쎄요’이다. 사실 팔자대로만 모든 일이 풀린다면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 력하고 고민할 필요 조차 없을 것이다.   또 반대로 세상에 인력으로 안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사주팔자를 아주 싹 무시하지도 못하겠 다.   그러니 이 두 가지 견해 사이에서 양쪽에 한쪽 발씩 담그고 서있는 셈이다.  


미래를 알아맞힌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능력이어서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자연과 더 가까웠던 옛날에는 주술사나 예언자들 이 그 사회를 통치할 정도로 그 위상이 막강했다.  사람들은 큰 일을 앞두고 신탁을 받으려 제물을 바쳤고 신의 말을 전하는 사람들을 항상 존경하고 대접했다.   비록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미신으로 여겨지고 ‘믿거나 말거나’ 정도의 이야기가 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미래란 강렬한 궁금증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의 인생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나 자신의 바람과는 상관없는 일이 너무 많이 생기다 보니 미리 알고 대책을 세우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점쟁이나 역술가, 도사, 무당 등 보통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것을 알고 있거나 보는 사람들이 요즘 세상에도 많이 존재하고 또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미래란 아무도 모르는 답이며 아무리 연구해도 답이 없는 학문이다.  아무리 예상하고 추측하고 확신한다고 해도 미래가 되어 겪어보지 않고는 확인할 수 없는 답안이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천사들의 제국’에는 사람의 삶을 도와주는 수호천사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호천사들은 자기가 맡은 사람 들의 인생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게 되어 있다.   꿈이나 동물, 식물, 자연적인 현상 등을 이용해 암시를 주는 정도이다.   하지만 천사들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의 강렬한 욕구나 터무니없는 우연에 의해 전환점을 맞이하고 진행된다.  결국 천사들의 의도에 따른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천사들도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미래이다. 

내가 만약 신이라면,  그리고 누군가 도통한 사람이 나에게 미래를 물어 온다면 난 “모른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신으로서 위신이 안 서는 대답이라고?  그렇다면 “안 가르쳐 주지.”라고 말해 주겠다.   그러면 그 도통한 사람은 답답한 마음에 사주를 풀이하거나 천기를 살피거나 귀신과 얘기를 하거나 해서 미래를 추측하겠지. 


생각은 이렇게 신통하게 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미래가 궁금하다.  그리고  점 집에 앉아서 살짝 천기누설을 맛보는 것은 질리지 않는 재미가 있다.   오늘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삼호 터널 지나서 소방서 옆에 용한 역술가가 있다고.    이번엔 어떤 도사님인지 가서 관상을 보고 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섯 개의 하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