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선수필
앞에 앉아서 가만히 살펴본다.
앞 가르마에 반쯤 하얗게 센 머리를 하나로 묶어 넘겼다. 얼굴은 가무잡잡한데 입술도 좀 두툼하고 진한 것이 밥풀 깨나 붙게 생겼다. 게다가 그 눈썹이 걸작이다. 길게 자란 눈썹이 글쎄 광대뼈가 있는 곳까지 내려와 있다. 일명 호랑이 눈썹인데 그 눈썹 때문에 이 사람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도사의 얼굴로는 아주 안성맞춤이다.
“올 가을에 이동수가 있어. 아주 보따리를 싸고 있는 형국일세. 그러니 어디서 스카우트 제의가 오거나 이직할 기회가 생길 거야.”
“네에, 그렇군요.”
도사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너무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도사님, 원래 그렇게 눈썹이 기세요?”
“응, 꿈에 산신령을 만난 뒤로 이렇게 길어졌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이 돌아온다.
‘산신령?’
나는 점 집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음력설이 되면 용하다는 점 집에 꼭 신년 운수를 보러 간다. ‘입춘대길’이라고 쓰여있는 노란 부적을 받아다가 현관에 붙이기도 한다. 그리고 동쪽이 길하다는 말이라도 들으면 이사할 때 가급적 동쪽으로 옮길 수 있도록 맞추는 편이다. 지나고 보면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알쏭달쏭 하지만 타고난 팔자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 자꾸만 생겨나니 어찌하겠는가. 점 집이라고는 하지만 보통 생년월일을 가지고 사주팔자를 풀어서 얘 기해 주는 곳이 대부분이다. 특히 연초에는 다달이 운세를 알려준다. 예를 들면 음력 일월에는 건강을 조심해야 하고 사오월에는 이동수가 있고 또 칠 팔월에는 교통사고 날 운세이니 멀리 여행을 가지 말라는 둥, 아주 연간 스케줄을 짜 준다. 그러면 수첩에 잘 적어와서 일 년 동안 두고 보는 것이다. 언젠가 가보았던 곳은 좀 달랐다. 생년월일도 묻지 않고 내 얼굴만 빤히 보더니 마치 연필이 저절로 움직이기라도 하듯이 이상한 그림을 마 구 그려대면서 얘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주 잘 맞추는 것이었다. 귀신이 들렸다고 했다.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의 강렬한 호기심은 그 생각을 눌렀다. 그 뒤로도 어디에 누가 잘 맞힌다는 이야기에 여전히 귀가 쫑긋하는 편이다.
이런 독특한 취미생활(?) 때문에 주위에서 듣는 말도 많다.
어디에 용 한 점쟁이가 있다며 같이 가보자는 말이 제일 먼저 들린다. 그다음엔 모두 다 미신이라며 쓸데없이 돈만 쓴다는 말이, 사람의 사주팔자는 있지만 다 해석하기 나름이라며, 한마디로 점쟁이 말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말도 들린다. 또, 사주니 주역이니 모두 다 통계에 의거한 학문 일 뿐이니 그저 그 보편적인 결과를 모두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여태까지 들어 본 충고 중에서 가장 으뜸은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 중에 가장 하급이 사주팔자이고 그 위에 수상(손금)이 있고 그 위에 관상이, 그리고 가장 위에 심상이 있다는 말이었다. 즉, 마음먹은 대로 하는 것, 사람의 의지, 선한 마음 뭐 이런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인데 이 말에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누군가 타고난 팔자가 더 맞느냐, 아니면 사람의 의지가 더 중요한가 하 는 질문을 한다면, 나의 대답은 ‘글쎄요’이다. 사실 팔자대로만 모든 일이 풀린다면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 력하고 고민할 필요 조차 없을 것이다. 또 반대로 세상에 인력으로 안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사주팔자를 아주 싹 무시하지도 못하겠 다. 그러니 이 두 가지 견해 사이에서 양쪽에 한쪽 발씩 담그고 서있는 셈이다.
미래를 알아맞힌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능력이어서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자연과 더 가까웠던 옛날에는 주술사나 예언자들 이 그 사회를 통치할 정도로 그 위상이 막강했다. 사람들은 큰 일을 앞두고 신탁을 받으려 제물을 바쳤고 신의 말을 전하는 사람들을 항상 존경하고 대접했다. 비록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미신으로 여겨지고 ‘믿거나 말거나’ 정도의 이야기가 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미래란 강렬한 궁금증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의 인생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나 자신의 바람과는 상관없는 일이 너무 많이 생기다 보니 미리 알고 대책을 세우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점쟁이나 역술가, 도사, 무당 등 보통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것을 알고 있거나 보는 사람들이 요즘 세상에도 많이 존재하고 또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미래란 아무도 모르는 답이며 아무리 연구해도 답이 없는 학문이다. 아무리 예상하고 추측하고 확신한다고 해도 미래가 되어 겪어보지 않고는 확인할 수 없는 답안이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천사들의 제국’에는 사람의 삶을 도와주는 수호천사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호천사들은 자기가 맡은 사람 들의 인생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게 되어 있다. 꿈이나 동물, 식물, 자연적인 현상 등을 이용해 암시를 주는 정도이다. 하지만 천사들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의 강렬한 욕구나 터무니없는 우연에 의해 전환점을 맞이하고 진행된다. 결국 천사들의 의도에 따른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천사들도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미래이다.
내가 만약 신이라면, 그리고 누군가 도통한 사람이 나에게 미래를 물어 온다면 난 “모른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신으로서 위신이 안 서는 대답이라고? 그렇다면 “안 가르쳐 주지.”라고 말해 주겠다. 그러면 그 도통한 사람은 답답한 마음에 사주를 풀이하거나 천기를 살피거나 귀신과 얘기를 하거나 해서 미래를 추측하겠지.
생각은 이렇게 신통하게 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미래가 궁금하다. 그리고 점 집에 앉아서 살짝 천기누설을 맛보는 것은 질리지 않는 재미가 있다. 오늘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삼호 터널 지나서 소방서 옆에 용한 역술가가 있다고. 이번엔 어떤 도사님인지 가서 관상을 보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