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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 Aug 30. 2016

그 여자

침선수필

처음부터 그렇게 심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답답함이 차올라 오지만 그렇다고 당장 무슨 뾰족한 수를 내지도 못하는,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만 많아지는 심란함 일뿐이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건 누구나 다 그렇고,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누가 어떻게 알겠느냐고 했다.   계란 한판을 다 채우고도 몇 개를 더 얹은 나이에 무슨 기운이 뻗쳤냐며 애나 잘 키우라고 했다.  아직도 응가를 한 뒤에 엉덩이를 닦아줘야 하는 어린것을 데리고 무슨 딴생각이냐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디든지 머리만 대면  잠들 수 있었던 그녀가 갑자기 잠도 잘 못 자고 울적해진 것은 다 그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는 평범했다.   

크게 부모님 말씀을 거스른 적도 없고  말썽거리를 만든 적도 없었다.   속 썩이지 않고 대학에 가고 대학원도 가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도 했다.  극성스럽고 야단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있는 듯 없는 듯 흐지부지하게 지내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남들 하는 만큼은 별 무리 없이 하고 살았다.  삶이 아주 힘들지도 않았지만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 다른 아무런 생각이 안 날 정도는 또 아니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석사 학위를 따느라, 또 결혼을 하고 생전 처음 해보는 집안 살림이 결코 만만하지가 않아서,  십 년 정도가 정신없이 후딱 갔다.  거기다 아기, 그 애물단지,  그녀를 꼼짝도 못 하게 했던 그 애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까지 한 오 년이 또 어떻게 갔는지도 몰랐다.   사람의 일상을 유지한다는 것이 이렇게 끝없이 많은 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놀라고,  또 익숙해지는 데에 철들고 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삶의 절반을 썼다.   그리고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그녀는 이제 무언가가 더 하고 싶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어떤 것이 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조심성도 많아져서 무턱대고 일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녀는 시행착오를 겪기 싫었다.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에 한 백 번쯤은 머리 속에서 오만가지 일들을 생각하고,  요리 대보고 조리 재보고,  이러 쿵 저러 쿵,  별 짓 별 생각을 다 해 보지만 모두 다 시원찮았다.  문제는 그것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보다는 무얼 해야 할지 모른다는데 있다.  그녀는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여태까지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나 있는가 싶었다.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 떠오른 해결책을 실천하는데,  이 정도는 해야 한다며 주어지는 일들을 해내는데,  별 이유나 반감을 가져 보지를 않았었다. 그녀는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태까지 그녀는 자신이 밥을 먹으며 살아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 떠 먹여주는 밥을 받아먹으며 연명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왔던 일들을 생각해보니  ‘그때는 그럴 수 밖에는 없었지,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나같이 했을 거야,  다들 그렇게 하라고 충고했었어…’라는 말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원하는 것을 알아낼 수가 있는지 그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어찌하여 알아낸다고 하여도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늘 그렇듯이 남편에게 물어볼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조언을 해주었던 다른 사람들의 얼굴들도 떠올려 본다.  그러자 다시 또 남에게 의존할 생각이나 하는 것에 한심해져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러다가 저녁밥을 지을 시간이 되어서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그날 밤 자리에 누울 때까지 아무 생각도 못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기로 했다. 

그다지 뒤쳐져서 살아오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열심히 살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할 때 어째서 별 의미가 없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쓸데없이 번잡스럽게 살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예전에 잘했던 것들이 지금 다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건가.  남들도 다 하는 것 들인데  잘 해냈던들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에 코를 빠뜨리고서 며칠을 또 기운 없이 지냈다.  아들의 스웨터에 일어난 보푸라기를 뜯어 내다가 그녀는 한숨이 나왔다.    잘 안 내려가는 하수도 덮개를 들어내고 머리카락 걸린 것들을 집어내다가 그녀는 신경질이 났다.   어떻게 할 줄을 모르고 푸파 거리다가  꿍짝이 맞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한 시간 여를 떠들고,  결국 너 오늘 이상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의 머리 속은 출근 시간의 만원 버스만큼 정신이 없고 명절을 앞둔 재래시장만큼 복잡했다.    그녀의 머릿속을 허공 삼아 돌아다니는 여러 갈래의 갖가지 생각들을 그녀는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할 뿐 어느 한 개도 손을 내밀어 잡지를 못하고 있다.   무엇하나 분명하게 모습이 보이지를 않으니, 느껴지지 않으니 마음만 굴뚝같을 뿐이었다.  


그녀는 망설이고 있다.   

잘못 잡았다가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더 좋은 것을 보지 못하고 성급하게 결정했다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녀가 살아갈 날들은 무엇보다도 그녀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것이길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흥미진진한 삶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다 만들어져 있는 것에 걸어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삶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미완성이 되더라도 그녀가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만들어 나가는 자체에 의미를 두자고,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는 기쁨을 누려 보자고 생각한다.  그렇게 방향만은 정해 놓았다.  


그녀는 아직도 그녀가 진짜 원하는 구체적인 일을 알지 못하고 있다.    

방향이 정해 졌으니 많이 생각하고 많이 노력해서 알아낼 생각이다.    ‘알아내기만 해봐라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리라.’  이런 생각을 하며 주먹을 불끈 쥐는 그녀의 한쪽 다리에는 그녀의 아들이 같이 놀아달라며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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