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느질로 만든 그림
미국에서의 첫 번째 전시회는
뉴저지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하기로 한 날의
딱 한 달 전이었다.
이사로 인해 바쁜 일도 많았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시장에 나가 자리를 지켰었다.
이제 곧 떠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곧 떠난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갤러리 측에서는 매일 나오겠다는 내 말을 듣고
여태 그런 작가는 없었다며,
워크숍을 같이 진행할 것을 제안했고
자리를 지키면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 오셔서
아이들 다 키워서 여의셨다는
할머님 한 분이 계셨는데
바느질 좀 해 보신 솜씨셨고,
아니나 다를까
오랫동안 퀼트를 하셨다고 했다.
오랜 타국 생활에 한국 전통 비단을 보니
마음이 참 좋으시다며
전시 기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전시장엘 오셨다.
그렇게 이 주간의 전시가 끝나고 마지막 날,
하얀 종이에 둘둘 말린 꾸러미를 내미셨다.
꾸러미를 풀러 보니 정말 정말 발이 고운
하얀 모시가 들어있었다.
당신께서 시집오실 때 해 오셨던 모시 치마저고리를
아직까지 가지고 계시는데
그중 치마를 가지고 왔다시며,
'전시장에 매일 오면서 마음이 참 좋았다,
요즘은 만들지도 않는 진짜 세모시이니
이걸 갖고 예쁜 조각보를 만들라'시며
'다 줄까 하다가 그래도 혼수품이니
저고리는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라고,
'치마만 준다….' 하셨다.
몇십 년 전에 만들어져 매 해 여름에 입으셨을
그 모시 치마는,
풀을 먹여 수없이 홍두깨질로 두둘겨졌을
그 오래된 모시는,
군데군데 얼룩이 져 있었고,
그렇잖아도 고운 원단이 닳고 닳아서,
금세 ‘바스락’하고 부서져 사라질 것만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하늘하늘 비치는 모시 발을 만들어
창에 걸고 싶었지만
너무 약해진 그 모시는 바느질을 하다가,
시접을 접다가, 창에 걸었다가,
꺾이고 찢어질 것만 같아
커다란 작품을 만들 수가 없었다.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한 뒤,
작업실을 정리하고 제일 처음 꺼내 든 이 모시로
쌈솔 바느질을 해,
홑겹으로 앞뒤가 똑같은 물고기를 만들어
훤히 비치는 투명한 액자에 넣었다.
행여나 모시가 부서질까 조심스레 만든
이 물고기를 보면
할머니께서 가지고 계실
치마 잃은 모시 저고리가 생각나고
앞으로 나이 먹고 늙어갈
내 삶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