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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 Aug 23. 2016

오래된 물고기

손바느질로 만든 그림

미국에서의 첫 번째 전시회는

뉴저지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하기로 한 날의

딱 한 달 전이었다.

이사로 인해 바쁜 일도 많았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시장에 나가 자리를 지켰었다.

이제 곧 떠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곧 떠난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갤러리 측에서는 매일 나오겠다는 내 말을 듣고

여태 그런 작가는 없었다며,

워크숍을 같이 진행할 것을 제안했고

자리를 지키면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 오셔서

아이들 다 키워서 여의셨다는

할머님 한 분이 계셨는데

바느질 좀 해 보신 솜씨셨고,

아니나 다를까

오랫동안 퀼트를 하셨다고 했다.

오랜 타국 생활에 한국 전통 비단을 보니

마음이 참 좋으시다며

전시 기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전시장엘 오셨다.


그렇게 이 주간의 전시가 끝나고  마지막 날,

하얀 종이에 둘둘 말린 꾸러미를 내미셨다.

꾸러미를 풀러 보니 정말 정말 발이 고운

하얀 모시가 들어있었다.

당신께서 시집오실 때 해 오셨던 모시 치마저고리를

아직까지 가지고 계시는데

그중 치마를 가지고 왔다시며,

'전시장에 매일 오면서 마음이 참 좋았다,

요즘은 만들지도 않는 진짜 세모시이니

이걸 갖고 예쁜 조각보를 만들라'시며

'다 줄까 하다가 그래도 혼수품이니

저고리는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라고,

'치마만 준다….' 하셨다.


몇십 년 전에 만들어져 매 해 여름에 입으셨을

그 모시 치마는,

풀을 먹여 수없이 홍두깨질로 두둘겨졌을

그 오래된 모시는,

군데군데 얼룩이 져 있었고,

그렇잖아도 고운 원단이 닳고 닳아서,

금세 ‘바스락’하고 부서져 사라질 것만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하늘하늘 비치는 모시 발을 만들어

창에 걸고 싶었지만

너무 약해진 그 모시는 바느질을 하다가,

시접을 접다가,  창에 걸었다가,

꺾이고 찢어질 것만 같아

커다란 작품을 만들 수가 없었다.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한 뒤,

작업실을 정리하고 제일 처음 꺼내 든 이 모시로

쌈솔 바느질을 해,

홑겹으로 앞뒤가 똑같은 물고기를 만들어

훤히 비치는 투명한 액자에 넣었다.

행여나 모시가 부서질까 조심스레 만든

이 물고기를 보면

할머니께서 가지고 계실

치마 잃은 모시 저고리가 생각나고

앞으로 나이 먹고 늙어갈

내 삶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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